정부 정책기조로 親여당서 벗어나…“의사도 정치 알게 됐다” 평가도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선거 때만 반짝하는 정치권의 본격적인 구애가 시작됐다. 의료계 역시 이런 정치권의 구애에서 예외일 수 없는데 이전까지와는 다르게 반응이 ‘시큰둥’하다는 게 특이할만한 점이다.

지난 19일부터 26일까지 서울시 각 구의사회는 정기총회를 개최했다. 지난 1년간을 되돌아보는 각 구의사회 정기총회에는 여느 선거철과 마찬가지로 4월 총선을 앞둔 정치인들의 본격적인 유세활동이 있었다.

▲ 강서구의사회 정기총회에 참석한 총선 예비후보들.

선거철마다 찾아오는 정치권의 표심 다지기

지난 19일 열린 서초구의사회 정기총회에는 새누리당 강헉훈 의원이 참석해 서비스발전기본법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하는 모습을 보였다.

서비스산업발전법 제3조1항과2항을 언급했는데 서비스산업발전법 제3조2항은 ‘정부는 다른 법령에 따라 수립하는 서비스산업 관련 계획과 정책이 서비스산업발전기본계획 및 연도별 서비스산업발전 시행계획과 조화를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야당과 시민사회가 꼽은 대표적인 독소조항이다.

같은 법 제3조 1항은 ‘서비스산업에 관해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 외에는 이 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른다’고 명시, 서비스발전법이 통과된다 하더라도 의료법이나 국민건강보험법 등 기존 법이 ‘상위법’이 되지만, 뒤따라오는 2항 규정이 이를 뒤짚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 새누리당 김정록 의원이 강서구의사회 정기총회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강 의원은 “많은 의사가 서비스산업발전법에 나와 있는 내용이 의료분야의 본질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를 갖고 있는 것 같다”며 “3조 2항을 근거로 여당이 의료법, 약사법, 건보법 본질 헤치려는 우려 있었고, 하도 답답한 심경에 3조 2항이 문제라면 삭제를 하면 되지 않느냐고 제안을 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아직은 커뮤니케이션 필요한 상황이지만 의사에게 약속할 수 있는 것은 의료의 공공성을 우리가 해치겠냐라는 것”이라며 “정부는 우리나라 의료산업 규모가 4%대 되는데 OECD평균보다 1.5%정도 떨어지고, 보건의료 종사자 수도 OECD 평균보다 낮아서 보건의료산업이 커져야 한다는 의미에서 지원하겠다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지난 22일에 열린 송파구의사회 정기총회에는 새누리당 박인숙 의원도 참석해 지지를 호소했다. 박 의원은 “송파갑 새누리당 경선 여론조사에서 저를 지지해달라고 부탁드리고 싶다”며 “저에게 힘을 주는 것이 곧 의료계에 힘을 싣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의원은 “당선되면 다음 국회에서는 보건복지위원회에 가려고 한다”며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쌓은 경험이 도움이 돼 일을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독립한의약법’을 발의한 새누리당 김정록 의원도 24일 열린 강서구의사회 정기총회에서 의료계의 아픔을 잘 알고 있다는 발언을 했다.

김 의원은 “모든 의료인들에 대해 참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보험수가에 대한 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음에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있다”며 “남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최대한 공평하고 불리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하겠다”고 말했다.

정치권 구애에도 의료계는 ‘시큰둥’

총선을 앞두고 표밭 다지기에 나선 정치권이지만 정작 의료계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특히 강남구의사회는 내빈을 최소화 하고 외빈은 아예 초청도 하지 않아 국회의원들의 축사 없이 정기총회가 진행되는 보기 드문 광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강남구의사회 최덕주 회장은 “정기총회를 앞두고 참석하겠다는 국회의원이나 예비후보들의 연락을 많이 받았는데 모두 정중히 사절했다”며 "정기총회는 회원들만으로 진행해도 족하다“고 밝혔다.

▲ 강남구의사회 정기총회에는 정치권 인사가 한 명도 초청되지 않았다.

이러한 바탕에는 원격의료를 위시해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 실손보험 청구대행 등 정부가 추진하는 각종 의료정책들로 인해 원래 ‘보수’ 성향이 강했던 의사들의 마음이 야당 쪽으로 돌아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같은 의료계의 정치 성향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의협 강청희 상근부회장의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후보 출마선언이다.보수성향이 강한 의료계 인사가 여당인 새누리당이 아닌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를 우선적으로 고려를 하고 있다는 것부터 기존 정치 성향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

강청희 상근부회장은 “의사들의 보수적인 정치성향이 변했다라기 보다는 정책 방향이 의료계와 야당이 맞기 때문에 공조할 수 있는 부분이 생긴 것”이라며 “예를 들어 정부 여당은 원격의료를 하고 의료영리화를 하려고 하지만 야당은 이를 저지하려는 입장 아닌가. 그래서 같이 갈 수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 최근 비례대표출마 선언을 한 의협 강청희 상근부회장.

또 “야당 쪽으로 보건의료에 대해 고민하고 정책을 만드는 틀이 있는 반면에 여당은 그게 없다”며 “예전과는 정치권을 보는 의료계의 온도가 많이 달라졌다. 협회 일을 하다보니까 많이 깨닫게 됐다”고 전했다.

또 다른 의료계 관계자는 의사들이 정치를 알게 됐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이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의사들은 보수적인 성향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게 의대에서 공부할 때 원칙이 가장 중요하다고 배우기 때문”이라며 “지금 돌아가는 판세를 보면 여당이건, 야당이건 다 별로이긴 하지만 정부 기조가 너무 경제적 논리로 가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기본적으로 건강보험정책이 규제로 묶여 있는데 이에 대한 근본적 원인을 제거하지 않은 채 또 다시 의료계를 공격할만한 정책들을 내놓다보니 여당 보다 야당을 지지하는 게 이런 정책들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등장하게 됐다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는 “지금 의료계와 야당의 정책 공조를 보면 ‘오월동주(吳越同舟)’라는 표현이 가장 알맞을 것 같다”며 “지금 의사들의 정치성향이 바뀐 것이 아니라 정부기조가 의료계를 너무 옭죄는 구조로 가기 때문에 그나마 숨통을 틔워줄 수 있는 야당을 지지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의료계 관계자도 “정치나 국제 정세만 봐도 영원한 아군도, 적군도 없다”며 “원래 정치 속성이 내게 필요한 것을 취하는 것으로 의리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전했다.

이어 “기본적으로 의료계는 보수성향이 짙지만 그럼에도 의사들이 정부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기 시작한 것은 의사들도 이제 정치를 알게 된 것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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