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월 이상 장기입원시 수가 오히려 깎여...의료계 "개선 아닌 개악"

정부가 정신과 환자 장기입원 관리를 위해, 입원기간에 따른 수가 차등을 강화키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수가를 인상한다는 정부의 설명과는 달리, 장기입원 환자가 많은 정신과 특성상 장기적으로는 되레 수가 인하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지적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 15일 관련 단체와의 간담회를 통해 의료급여 정신수가 개선안을 공개했다.

이날 복지부는 의료급여 정신수가를 인상하되, 입원기간에 따라 최대 30%까지 수가를 차등지급하며, 초발환자 기준을 기존 30일에서 60일로 연장하는 내용의 제도개선 방안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급여 정신수가 인상이 이뤄지는 것은 2008년 10월 이후 8년만에 처음이다.

일단 기준수가는 4만 9350원으로 지금(4만 7000원)보다 5% 정도 올리기로 했다. 다만 수가의 지급은 입원 기간에 따라 ▲1~3개월은 기준 수가의 115%(5만 6750원) ▲3~6개월은 100% ▲7~9개월은 90%(4만 4420원) ▲10월~12월은 수가의 85%(4만 1950원) 등 4단계로 차등 지급한다.

현재에는 △1~6개월 100%(4만 7000원) △7~12개월 95%(4만 4650원) △1년 이상 90%(4만 2300원)의 3단계로 수가가 차등 지급되고 있다. 

복지부는 지속적인 장기입원 문제가 부각되는 만큼 발병 초기 집중치료를 통해 조기퇴원을 유도하려는 것이라고 제도개선 배경을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의료급여 정신수가 개선안 주요 내용

환자 75%, 9개월 이상 장기입원자...수가인하 대상

의료계는 강력 반발하고 있다.

장기입원환자가 많은 정신과의 특성상, 장기적으로는 수가가 인상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하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지적이다.

실제 복지부 안에 따르면 입원기간이 6개월 미만인 경우에는 현재보다 수가가 각각 9750원(3개월 미만)~2350원(3~6개월) 오르지만, 입원기간이 6개월을 넘어서면 지금보다 오히려 230원(6~9개월), 2700원(10~12개월), 350원(1년 이상)이 낮아진다.

문제는 정신과의 경우, 입원환자의 대부분이 9개월 이상 장기입원 환자에 해당한다는 것. 대한정신의료기관협회에 따르면 의료급여 정신과 입원환자는 4만 6000명 정도로, 이 가운데 73% 이상이 9개월 이상 장기입원 환자로 추산되고 있다.

새 제도 시행시 단발적인 수가인상 효과를 기대할 수는 있겠으나, 장기적으로는 수가를 더 받는 기관보다 덜 받는 기관들이 더 많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의료급여 정신수가 인상률과 주요 물가인상률 비교. 의료급여 정신수가는 2008년 10월부터 현재까지 8년째 동결상태다.(대한정신의료기관협회 제공)

대한정신의료기관협회는 의료급여 정신과 정액수가 개선안에 반발, 24일 복지부 세종청사 앞에서 1인 시위를 열고 "이번 개선안은 개선이 아닌 개악"이라고 비판했다.

협회 곽성주 회장은 "정신질환은 투약과 진료에 오랜기간이 필요하다"며 "이런 환자들을 대상으로 입원기간이 길다고 해 수가를 삭감한다는 것은, 가뜩이나 생황이 어려운 환자들의 진료를 포기하는 나쁜 행위이자 정신질환자 관리에 대한 책임과 비용을 전부 의료기관에 떠 넘기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입원 후 7개월이 지나면 그때부터 수가가 깎이는 구조인데, 의료기관의 입장에서는 환자의 입원기간이 길던 짧던 그에 제공되는 서비스를 줄일 수는 없다"며 "수가가 줄어든다고 해 아픈 환자를 강제로 퇴원시킬 수는 없지 않나. 결국 수가 삭감으로 인한 손해는 고스란히 의료기관이 떠안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초발환자 기준 강화, 불법 브로커만 양산"

▲복지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대한정신의료기관협회 곽성주 회장

초발환자 기준을 기존 30일에서 60일로 강화한 것을 두고도 논란이 있다.

'회전문' 현상 해소를 위한 대책 없이 휴지기간만 늘릴 경우, 환자가 한 병원에서 또 다른 병원으로 이동하는 사이 일종의 '임시거처'를 마련해주는 불법 브로커만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지적이다.

업계에 따르면 정신과 입원환자는 관련 기준에 따라 6개월마다 입원계속심사를 받으며, 여기서 강제퇴원이 결정될 경우 통상적으로 '30일'의 휴지기를 거쳐 다시 초발환자 기준을 획득한 뒤 또 다른 병원으로 입원하는 순환을 반복한다.

가족의 부양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보니 이 과정에 불법 브로커가 개입해 환자를 '병원'에서 '기도원이나 요양시설' 등 제3의 기관으로, 그리고 다시 또 다른 '병원'으로 알선하는 사례가 빈번하다는 전언이다. 이런 상황에서 환자의 휴지기가 지금의 2배로 길어질 경우 브로커들의 불법행위가 더욱 만연해 질 것이라는 것이 의료계 안팎의 우려다.

곽 회장은 "회전문 현상 해소를 위한 대책 없이 초발환자 기준만 30일에서 60일로 늘릴 경우, 떠돌이 환자들이 늘어날 것"이라며 "결국 환자의 이동을 알선하는 불법 브로커만 양산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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