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수 교수팀 “베타세포 기능저하가 당뇨병 주원인”

 

서울의대 박경수(서울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팀이 Lancet Diabetes & Endocrinology 2015년 11월 11일자 온라인판에 보고한 연구논문이 국내외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인슐린 분비능과 저항성이 모두 용의자로 지목되는 한국인, 더 나아가 아시아인의 당뇨병 유병특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박 교수팀은 10년 추적·관찰연구를 통해 한국인에서 인슐린이 기능을 못해 고혈당이 지속되고 있음(인슐린 저항성)에도 인슐린을 계속 공급해야 할 췌장 베타세포 기능 또한 제 역할을 하지 못함(인슐린 분비능 저하)에 따라 제2형 당뇨병이 발생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궁극적으로는 인슐린 민감도 감소에 대한 보상작용으로 베타세포 기능이 증대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 기전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결론이다. 베타세포 기능부전(인슐린 분비능 저하)을 우리나라 당뇨병 발생의 주된 원인으로 꼽은 것이다.

당뇨병 12%, 당뇨병 전단계 27%
연구팀은 우리나라 안성과 안산에 거주하는 성인 중 정상혈당을 보이는 4106명을 2001부터 2012년까지 추적·관찰했다. 당뇨병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두 인자들의 동태(動態)를 관찰하기 위해 2년마다 경구당부하검사를 실시, 인슐린 분비능과 저항성의 변화를 분석했다. 두 인자가 한국인 당뇨병 발생에 미치는 영향력을 파악해 서양인과의 차이를 규명하기 위함이었다.

관찰결과 지난 10년 동안 당뇨병은 12%(498명), 당뇨병 전단계는 27%(1093명)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인 대상의 빅데이터가 제시하는 유병률과 거의 일치하는 수준이다. 정상혈당을 유지한 사람들과 비교해 당뇨병, 당뇨병 전단계 환자들은 체질량지수(BMI), 허리둘레, 혈압, 중성지방 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제2형 당뇨병의 전형적인 위험인자들이다.

인슐린 분비능과 민감도
연구팀은 기저시점의 검사수치에 따라 참여자들을 인슐린 ‘분비능↑·민감도↑’, ‘분비능 ↑·민감도↓’, ‘분비능↓·민감도↑’, ‘분비능↓·민감도↓’ 그룹으로 분류했다. 이들 그룹 간에 당뇨병 발생위험을 비교한 결과, 두 인자 모두 낮은 군의 위험도가 모두 높은 군과 비교해 6.08배 높았다.

인슐린 민감도만 낮은 군과 인슐린 분비능만 낮은 군의 당뇨병 위험도는 두 인자 모두 높은 군에 비해 각각 2.62배와 3.35배씩 증가했다. 연구팀은 이에 근거해 “베타세포 기능장애가 당뇨병 발생에 미치는 영향력이 인슐린 민감도보다 컸다”고 밝혔다.

정상혈당과 당뇨병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정상혈당을 유지한 경우와 당뇨병으로 진행된 환자들에서 인슐린 분비능과 저항성의 변화를 비교·분석한 대목이다. 우선 당뇨병 발생 그룹은 정상혈당 그룹과 비교해 처음부터 인슐린 분비능과 민감도가 각각 38%와 17%씩 낮았다. 특히 10년 동안 인슐린 민감도는 64%나 감소한 반면 인슐린 분비능은 전혀 증가하지 않았다.

인슐린이 제기능을 못해 당을 흡수하지 못할 경우 이에 대한 보상작용으로 인슐린 분비능이 계속 증가돼야 하는데, 베타세포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다시 말해 인슐린 저항성 증가에도 불구하고 이를 상쇄할 만큼의 인슐린 분비를 늘리지 못해 제2형 당뇨병이 발생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반해 정상혈당 그룹에서는 10년 동안 인슐린 민감도가 27% 감소했지만, 인슐린 분비능은 70%나 증가했다.

향후 과제는…
연구팀은 “베타세포 기능이 제한적인 경우에는 인슐린 민감도 감소를 보상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당뇨병 발생위험이 높다”는 말로 결론을 갈음했다. 또 “이 연구결과를 통해 당뇨병 발생위험이 높은 고위험군 환자를 가려낼 수 있을 것이며, 베타세포 기능장애에 기여하는 인자들을 찾아내 당뇨병의 예방과 치료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의미를 전했다. 특히 “이번 결과에 기반해 베타세포 기능저하를 극복하고 당뇨병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물론 장기적으로 베타세포 기능을 개선할 수 있는 다양한 항당뇨병제에 대한 연구도 진행돼야 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박 교수팀은 “단독으로 감소된 인슐린 분비능을 높이면 당뇨병 발병위험을 줄일 수 있고, 더 나아가 효율적인 고혈당 치료를 담보할 수 있다”며 “혈당이 정상이나 인슐린 분비능이 떨어지는 사람들을 선별하고, 인슐린 분비능 저하의 원인과 이를 높이는 방법을 찾는 것이 한국인 당뇨병의 예방과 치료에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마무리 했다.

대한당뇨병학회 가이드라인

대한당뇨병학회는 지난해 발표된 당뇨병 진료지침 개정판을 통해 한국인 유병특성을 반영한 약물치료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학회는 환자의 임상특성, 극내 임상근거, 약제 처방빈도, 약제 특성 등을 고려해 “단독요법 시 메트포르민을 초치료로 사용하도록 권고했으며, 다만 환자의 상태에 따라 메트포르민 이외의 경구혈당강하제도 초기 단독요법으로 시작할 수 있도록 했다”고 다약제 1차선택의 배경을 설명했다.

제2형 당뇨병 환자의 초치료 전략에 대한 다기관 무작위·대조군 임상연구로 UKPDS가 있다면, 국내에는 PEAM 연구(Diabetes & Metabolism Journal 2011;35:26-33)가 있다. 비비만형과 비만형 당뇨병 환자가 절반씩 포함된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설폰요소제, 메트포르민, 티아졸리딘디온계의 혈당조절 효과를 비교한 결과 세 약제 모두 유의한 혈당조절 효과가 확인됐다.

한국인의 당뇨병 유병특성을 고려해 국내 환자들을 대상으로 국내 연구진이 진행한 최초의 다기관·이중맹검·무작위 임상연구로, 우리나라 당뇨병 환자들의 초기선택에 어떤 약제가 적합한지를 비교·검증하고자 했다. 국내 15개 대학병원에서 경구 혈당강하제 치료경험이 없는 당뇨병 환자들을 1년간(2007~2008년) 세 가지 계열의 약제군으로 무작위 배정해 치료·관찰했다. 만 30세 이상 65세 미만으로 당화혈색소(A1C)가 6.5%를 초과하고 9.5% 이하인 신규 제2형 당뇨병 환자들에게 설폰요소제(118명), 메트포르민(114명), 티아졸리딘디온계(117명)를 각각 투여했다. 연구종료 시점에서 A1C는 설폰요소제(-0.89±0.76%), 메트포르민(-0.92±0.96%), 티아졸리딘디온계(-0.82±0.79%) 그룹 모두에서 기저시점 대비 유의한 감소효과를 나타냈다.

 

한국인 당뇨병의 임상적 특성이 서구인과 다르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인식돼 왔다. 서구인에 비해 비만한 당뇨병 환자가 많지 않으며, 서구인 당뇨병 환자들보다 인슐린 저항성이 심하지 않다. 또 혈중 인슐린 농도가, 특히 식후 최고 인슐린 농도가 서구인 당뇨병 환자들보다 현저히 낮다. 이런 특징을 토대로 한국인 당뇨병에서는 인슐린 저항성보다 인슐린 분비장애가 더 주된 문제일 것이라는 주장들이 계속 제기돼 왔다. 최근 서울의대 박경수 교수팀과 아주의대 조남한 교수팀이 공동으로 지역사회 코호트의 10년 추적관찰 연구를 통해 한국인에서 당뇨병 발병기전이 서구인과 확실하게 다르다는 것을 명확하게 제시해 Lancet Diabetes & Endocrinology에 논문을 발표했다.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은 이 연구의 임상적 의의에 대해 박교수를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들어봤다.

- 한·중·일 동아시아인의 전통적인 당뇨병의 특성에 대한 주장이 있지 않았나?
동아시아인에서는  한국인 당뇨병과 마찬가지로, 인슐린 감수성의 감소는 상대적으로 작고, 베타세포의 기능(인슐린 분비능)이 서구인에 비해 더 감소되어 있다는 보고들이 있어 왔다. 하지만 대부분의 연구들은 단면적인 분석을 통해 정상혈당군, 전당뇨군과 당뇨군의 인슐린 감수성과 인슐린 분비능을 비교한 연구들이다.

- 과거 주장과 비교해 이번 연구의 차이와 의미는 무엇인가?
이번 연구는 4106명의 정상 내당능을 보인 사람들을 10년간 2년마다 경구당부하검사를 시행해, 혈당은 물론 인슐린 분비능과 인슐린 감수성의 변화에 대해 세밀한 분석을 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단면적 분석에서 제기된대로 한국인 당뇨병의 임상적 특성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장기간 추척조사를 통해서 어떤 이상이 선행하는지, 당뇨병으로 이행하는 사람들은 10년 동안 인슐린 분비능과 인슐린 감수성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또한 기존의 연구들이 하지 못했던 유전적인 원인에 대한 분석을 통해 한국인 당뇨병의 발병과 진행에 관여하는 유전적 원인의 일부를 규명할 수 있었다.

- 연구의 결론은?
당뇨병이 발병하는 사람들은 정상 내당능을 보이는 시기부터, 당뇨병이 발병하지 않는 사람들에 비해 인슐린 분비능이 이미 현저히 저하돼 있다. 물론 인슐린 감수성도 조금 감소돼 있기는 하다.  또한 10년의 추적기간 중 당뇨병이 발병하는 사람들은 인슐린 감수성이 크게 나빠지는데, 인슐린 분비능이 보상적으로 증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는 서구인과 전혀 다른 자연경과이다. 서구인에서는 인슐린 저항성이 먼저 발생하고, 췌장 베타세포의 기능이 보상적으로 증가하다가 어느 시점부터 더 이상 베타세포의 기능이 따라가지 못할 때 당뇨병이 발병한다는 것이 전형적인 제2형 당뇨병의 발병과정이다. 한국인 당뇨병은 인슐린 분비능 저하 - 인슐린 저항성 증가 - 인슐린 분비능의 보상적 증가 없음 - 당뇨병 발병의 경과를 보여 서구인과 전혀 다른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 구체적인 결과를 통해 발병기전을 설명해 줄 수 있나?
‘정상 내당능을 보이는’ 성인 4106명을 추적·관찰했다. 이 가운데 10년 기간에 당뇨병이 발생한 사람들을 보면, 정상 내당능을 보이는 시기부터 10년 내내 정상 내당능을 보이는 사람들에 비해 인슐린 분비능이 3분의 1(38%) 정도 떨어져 있다. 주목할 대목은 10년 동안 인슐린 저항성이 64%로 악화되는데도 불구하고 인슐린 분비능은 보상적인 증가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반면 10년 내내 정상혈당을 유지한 사람들은 10년간 인슐린 저항성이 27% 증가했지만, 이를 상쇄할 인슐린 분비능도 70%나 증가한다<그림>.

 

- 이제 이 연구결과를 임상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이번 연구에서는 정상 내당능을 보이는 사람들 중 인슐린 저항성은 정상이고 인슐린 분비능이 떨어져 있는  경우가 전체 대상의 절반이 넘었다. 이들에서 인슐린 분비능의 감소를  교정할 수 있다면 당뇨병 발생위험을 38%까지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당연히 인슐린 분비능 저하의 원인을 찾는 연구가 시급하다.  유전적 원인, 환경인자, 환경과 유전의 상호작용 등 베타세포 기능이 저하돼 있고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원인을 찾으면 근본적인 당뇨병 예방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이번 연구에서 찾은 glucokinase의 유전자 변이를 포함해 일부 아시아인에 특이적인 인슐린 분비능 관련 유전자 변이가 발견되고 있지만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 인슐린 분비능 감소를 교정할 수 있는 방법이 있나?
인슐린 분비능 저하의 원인을 찾아 원인에 맞는 치료를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직은 극히 제한된 예에서만 적용이 가능하다. 아니면  인슐린 분비능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당뇨병 예방·치료전략에 적용하는 것이다. DPP-4 억제제가 그 중 한 후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혈당 의존적으로 인슐린 분비를 증가시킬 뿐 아니라  동물실험에서 이 약제가 베타세포의 양을 늘린다는 보고가 있다. DPP-4 억제제의 혈당강하 효과가 아시아인에서 더 우수하다는 보고도 있다. 이런 점에서 올해부터 시작될 한국인의 당뇨병 예방연구의 결과가 기대된다.

- 한국인 당뇨병의 맞춤치료를 위한 서막을 열었다고 볼 수 있을지?
실제 임상현장에서 당뇨병 환자 개개인의 특성에 적합한 맞춤치료는 아직은 멀었다. 다만 우리나라 당뇨병 발병기전이 서구인과 현저히 다른 것을 확인했으므로,  이에 따라 생활습관 교정이나 약물치료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비만한 제2형 당뇨병 환자가 많은 서구인에서는 1차선택 약제로  메트포르민을 사용하는데, 인슐린 분비능 감소가 주된 이상인 비만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1차약제로 메트포르민이 적합할지는 의문이다. 당뇨병의 맞춤치료를 위해서는 단순히 인슐린 감수성, 인슐린 분비능 뿐이 아니라 유전적인 변이에 대한 분석, 노출된 환경인자들에 대한 분석 등 보다 포괄적인 데이터에 대한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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