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형 + 한국형 혼합형 당뇨병의 시대
서구형 + 한국형 혼합형 당뇨병의 시대
  • 이상돈 기자
  • 승인 2016.02.21 22: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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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당뇨병은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까? 아직 “인류의 당뇨병은 이것이다”라고 정의할 수 있는 광의의 병태생리는 명시하기 어렵다. 당뇨병, 아니 당뇨병에 대한 인간의 이해가 계속 진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뇨병은 알아 가면 알아 갈수록 더 이해하기 힘들어지는 역설적인 복잡성을 갖고 있다. 지역과 인종에 따른 당뇨병 유병특성이 다르고, 지금 이 순간에도 당뇨병 발생의 새로운 기전이 탐구되고 있다.

인슐린 저항성이 지배하는 서양의 당뇨병
유럽과 북미의 서구형 당뇨병은 전통적으로 인슐린 저항성이 지배적이다. 성인 당뇨병 발생의 병태생리에서 비만에 의한 인슐린 저항성이 핵심역할을 하고 있다. 서양의 당뇨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비만과 인슐린 저항성에 의한 발병루트를 짚어봐야 한다.

비만, 특히 복부비만(내장비만)은 인슐린 저항성을 유발하고 베타세포 기능을 저하시킨다. 인슐린이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저항성이 오면 인체는 고혈당을 극복하거나 보상하기 위해 인슐린 분비를 정상보다 늘리게 되고, 이로 인해 일시적으로 고인슐린혈증이 동반된다. 인슐린은 비만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고인슐린혈증으로 인해 비만이 악화되고 연이어 인슐린 저항성은 더 심해지는 악순환이 진행된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최종적으로 췌장 베타세포가 지쳐 기능이 방전된다. 고혈당 상태를 극복(보상)하지 못하고 체내 균형이 무너지며 결국 제2형 당뇨병으로 이환되는 것이다. 비만 - 인슐린 저항성 - 고인슐린혈증 - 베타세포 기능부전 - 당뇨병의 연결고리인데, 최종적으로 심혈관 합병증으로 인한 장애나 사망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결국 서양의 제2형 당뇨병은 비만에 의한 인슐린 저항성이 앞에서 끌고 최후에 인슐린 분비능이 결정타를 가하는 순서로 진행된다.

 

인슐린 분비능 저하 선행하는 한국형 당뇨병
이에 반해 전통적인 한국인의 당뇨병은 인슐린 분비능 저하, 즉 베타세포 기능부전이 선행하는 특성을 보인다. 사실은 저하된 인슐린 분비능이 제2형 당뇨병 발생의 시작과 끝을 모두 장식한다. 비만하지 않은데도, 즉 인슐린 저항성이 심각하지 않은데도 제2형 당뇨병이 자주 발생하는 특성이 이를 대변한다.

베타세포 기능이 떨어지거나 전혀 가동하지 못하면 제1형 당뇨병이 발생한다. 하지만 인슐린 분비능 자체가 저하돼 있는 경우에는 경증의 인슐린 저항성만으로도, 약골이었던 베타세포가 부담을 받아 고혈당이 유지되는 제2형 당뇨병 위험도 간과할 수 없다. 이러한 유병패턴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 준 사례가 최근 Lancet Diabetes & Endocrinology에 발표된 서울의대 박경수 교수팀의 연구결과다.

박 교수는 국내 대규모 코호트를 대상으로 10년 추적·관찰조사를 통해 한국인에서 인슐린이 제 기능을 못해 고혈당이 지속되고 있음(인슐린 저항성)에도 불구하고 인슐린을 계속 공급해야 할 췌장 베타세포 기능 또한 제 역할을 하지 못함(인슐린 분비저하)에 따라 당뇨병이 발생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인슐린 민감도(감수성) 감소에 대한 보상작용으로 베타세포 기능이 증대돼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기전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최종적으로 베타세포 기능부전(인슐린 분비저하)을 우리나라 당뇨병 환자 발생의 주된 원인으로 꼽은 것이다.

분비능과 저항성 공존하는 복합형 당뇨병
이상이 지금까지 알려져 있는 서양과 동양의 전통적인 당뇨병 병태생리다. 그런데 최근 아시아 지역·인종은 당뇨병 병태생리의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질병에 있어서도 전통을 고수하는 동시에 서구화를 적극 받아들이고 있는 모양새다. 인슐린 저항성과 함께 비만형 당뇨병이 크게 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과거 서양인에 비해 떨어지는 췌장 베타세포 기능이 당뇨병의 주원인으로 작용했던 우리나라 환자들에서 최근 비만과 인슐린 기능장애가 새롭고 주된 인자로 병태생리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전통적인 인슐린 분비능 저하와 서구화의 산물인 인슐린 저항성 증가를 비롯해 비비만형과 비만형 당뇨병이 뒤엉켜 있다.
인슐린 저항성과 분비능이 상호 보완하며 균형을 이루는 상태가 깨지면 당뇨병으로 발전한다. 인슐린 저항성이 오면 이에 대한 보상작용으로서 인슐린 분비능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해지는데, 유전적으로 베타세포의 기능이 서양인에 비해 떨어지는 한국인은 인슐린 저항성에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다.

박경수 교수팀의 연구에서 보듯이 인슐린 저항성은 증가하는데 인슐린 분비능은 본래부터 낮았던 상태에서 전혀 변화가 없기 때문에 종국에는 고혈당이 지속되는 당뇨병으로 발전하기 쉽다. 베타세포의 능력으로 보면 서양인이 세 발을 뛸 때 한국인은 한 발밖에 뛰지 못하는 양상이기 때문에 인슐린 저항성에 의한 고혈당에 대해 베타세포가 제대로 보상을 하지 못하고 조금의 저항성만 있어도 당뇨병 발생위험이 급격히 증가한다.

가뜩이나 인슐린 분비능이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인슐린 저항성의 공격까지 받다 보니 베타세포 기능부전에 의한 당뇨병 위험에 더욱 더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다. “어느 한 쪽이 선택된 안정된 상태가 아닌 불안정한 과도기 단계이기 때문에 위험인자들의 공격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관된 견해다.

고혈압·이상지질혈증 동반하는 대사증후군 당뇨병
전 세계 현대사회의 당뇨병 유병특성이기는 하지만 한국인의 당뇨병도 여타 심혈관 위험인자를 동반하면서 대사증후군 위험이 높고, 이에 따라 심혈관 합병증 위험도 급격히 증가한다는 특징을 안고 있다. 대한당뇨병학회의 ‘Korean Diabetes Fact Sheet 2015’에 따르면, 2013년 현재 우리나라 당뇨병 환자의 62.5%가 고혈압 치료를 받고 있다. 비당뇨병 환자의 16.9%와 비교해 보면, 당뇨병 환자에서 고혈압이 동반된 가능성이 월등히 높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때문에 당뇨병 환자의 심혈관질환 예방을 위해서는 혈당과 함께 혈압도 동시에 공략해야 한다. 미국당뇨병학회(ADA)도 이를 고려해 가이드라인에 당뇨병 환자에서 고혈압 관리전략에 대한 권고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상지질혈증 역시 당뇨병 환자의 심혈관질환 예방을 위해 필수적인 치료타깃이다. ‘Korean Diabetes Fact Sheet 2015’를 보면, 우리나라 당뇨병 환자의 절반(49.5%)이 이상지질혈증을 동반하고 있다. 비당뇨병 환자에서 이상지질혈증의 동반율은 9.7%에 그친다. ADA 가이드라인도 당뇨병 환자에서 이상지질혈증 관리를 주요 치료타깃으로 간주하고 있다.

당뇨병 특성에 맞는 치료전략 준비해야
당뇨병은 비만, 인슐린 저항성, 베타세포 기능부전과 더불어 고혈압, 지질이상, 대사증후군 등 다양한 공격루트를 통해 허를 찌른다. 이 루트들을 모두 막아내지 못한다면 언제 어디서든 벽이 허물릴 수 있다.
하지만 현대의학은 이제 당뇨병의 공격루트를 미리 짚어내고 이에 대처할 수 있는 다양한 전략과 기술을 갖추고 있다. 과거 메트포르민(포도당 생성·흡수↓, 인슐린 감수성↑)이나 설폰요소제(인슐린 분비↑), 인슐린 정도로 약제의 선택이 제한적이었다면 이제는 TZD(인슐린 민감도↑), 알파글루코시다제 억제제(탄수화물 소화·흡수 지연), 인크레틴 요법(GLP-1 수용체 작용제 & DPP-4 억제제 인슐린 분비 ↑, 글루카곤 분비↓), SGLT-2 억제제(신장 당 재흡수↓) 등이 무기고를 가득 채우고 있다. 당뇨병 환자의 임상특성(중증도, 연령, 체중, 저혈당증 위험, 인슐린 분비능, 인슐린 저항성, 심혈관 위험인자 등)을 고려해 적합한 약제를 골라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듯 위험인자와 공격루트가 다양하게 혼재돼 있다 보니, 더 이상 어느 한 쪽에 치우친 전략만을 고집하기도 어려워졌다. 이에 따라 진료현장에서 심혈관 위험인자는 물론 인슐린 분비능과 저항성을 측정해 환자의 임상특성을 파악하고, 이에 적합한 약제를 선택해 치료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항당뇨병제에 심혈관 보호효과도 요구
당뇨병 환자에게 가장 절실한 치료는 혈당조절이다. 하지만 혈당조절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면, 치료 또한 좀 더 종합적인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당뇨병 환자의 80%가량은 대혈관합병증, 즉 심혈관질환에 의해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Korean Diabetes Fact Sheet 2015’에 따르면, 당뇨병 환자의 허혈성 심장질환 발생률이 인구 1만명당 248명으로 비당뇨병 환자(59명)에 비해 월등히 높다. 허혈성 뇌졸중과 뇌출혈 역시 인구 1만명당 295명(비당뇨병 62명)과 41명(비당뇨병 17명)이다.

고혈당의 병태가 고혈압이나 이상지질혈증을 비롯한 심혈관 위험인자와 동반·상호작용을 통해 혈관의 구조·기능적 변화에 영향을 미치며,  죽상동맥경화증을 거쳐 최종적으로 허혈성 뇌졸중이나 허혈성 관상동맥질환을 야기한다. 때문에 대한당뇨병학회의 가이드라인(2015 당뇨병 진료지침)에서도 “미세혈관합병증 및 대혈관합병증의 발생 위험을 감소시키기 위해, 궁극적으로 혈관합병증 예방을 목적으로 적극적인 혈당조절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혈관합병증의 예방이 고혈당 치료의 목적으로 자리하고 있다.

혈당조절을 통해 심혈관질환을 예방할 수 있느냐의 대명제는 이미 DCCT, UKPDS 등의 대규모·장기간 임상연구를 통해 잘 입증돼 있다. 조기의 적극적인 혈당조절을 통해 단기적으로 미세혈관합병증 위험은 물론 장기적으로 대혈관합병증 위험까지 줄일 수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개별 혈당강하제들이 혈당조절 효과에 더해 부가적으로 나타내는 심혈관 보호효과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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