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토론회 개최…패널들, 한목소리로 ‘개정안’ 비판

일명 ‘신해철법’이라고 불리는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으로 인해 발등에 불이 떨어진 의료계가 개정안이 의료분쟁조정법 본 취지에 역행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 의협 강청희 상근부회장이 의료분쟁조정 강제개시 토론회에서 발제를 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는 20일 의협회관 3층 대회의실에서 ‘의료분쟁조정 강제개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의협 강청희 상근부회장은 발제를 통해 개정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동시에 개선방안에 대해 발표했다.

앞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고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분쟁조정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은 의료분쟁조정 신청이 제기된 경우 피신청인의 동의여부와 관계없이 즉각 조정절차를 개시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복지위는 분쟁조정신청의 난립 등 그 파급효과를 고려해 사망과 중상해 사건에 한해서만 강제조정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한정하며, 구체적인 중상해 사건의 기준은 대통령령으로 위임해 정부가 정하도록 했다.

강 부회장에 따르면 현재 의료분쟁 조정참여는 증가 추세이고, 높은 조정 성립률(88.9%)을 보이고 있다. 즉 낮은 의료분쟁 조정참여율 때문에 강제개시 하겠다는 개정안의 취지도 설득력이 없다는 설명이다.

특히 의료계가 관련 개정안 중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환자의 ‘사망’ 또는 ‘중상해’의 경우 의료인의 분쟁조정 참여해 의사와 무관하게 자동으로 조정 절차가 개시되도록 명시한 부분이다.

이어 그는 “소송 과정 이전에 반드시 조정‧중재를 거치도록 하는 것은 이해당사자들의 소송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근본적으로 조정의사가 없는 사항을 강제하는 것은 조정을 거부할 수 있는 당사자의 권리를 국가가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결국 의료분쟁의 가능성이 높은 외과, 산부인과 등 전공과목 기피는 물론 진료과정에서 의료인들이 중환자들을 기피하는 등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고, 의사들의 소신진료 위축과 방어진료를 조장해 결국 국민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조정 강제개시는 목적과 취지에 부합하지 않은 접근방식이기 때문에 이해당사자의 동의가 있는 경우에만 조정하는 현행 절차를 유지하는 것이 타당하며 의료분재조정법상 독소조항을 개선해 의료인의 신뢰회복과 자발적 참여를 유도해야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감정위원 5인 중 보건의료인은 2명에 불과한데 비율을 높여 감정 및 조정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할 수 있어야한다”며 “자율적 해결이라는 분쟁조정제도 취지에 맞지 않는 조사 불응에 대한 과태료도 삭제해야한다”고 밝혔다.

또 “감정절차에 대한 악용을 방지하기 위해 당사자 또는 이해관계인의 질술, 감정서 등 조정절차에서 생성된 자료는 소송에서 원용하지 못하도록 규정이 필요하다”며 “무과실 분만의료사고에 대한 보상비용과 손해배상금 대불 비용도 보건의료인에만 지우고 있는 부분도 전액 국가가 부담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올바르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조정을 강제하는 것은 조정제도 및 의료분쟁조정법의 제정 취지에 역행하는 것으로서 조정을 강제 개시할 경우, 성공적인 조정결과를 얻을 수 없다”며 “의료분쟁조정법상 독소조항 개선을 통해 의료인의 신뢰회복 및 자발적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조정개시 참여율을 제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패널들 모두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이 문제가 많다는 의견에 공감했다. 개정안이 의료분쟁조정법 본 취지에 역행하고 있다는 것에도 뜻을 함께했다.

▲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마련한 의료분쟁조정 강제개시 토론회에 참석한 패널들.

법무법인 여명 유화진 변호사(의협 전 법제이사)는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이 만들어진 배경을 살펴보면 낮은 조정참여율에 있는데 신청건수를 살펴보면 1, 2년전 데이터를 보면 전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며 “병·의원급에 있어서는 조정참여율이 50%가 넘는 등 전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인데도 자동개시를 추진하는 것에는 의문이 있다”고 꼬집었다.

유 변호사는 “사망과 중상해가 명확하게 규정될 것인가에 대한 의문에 있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라며 “의료중재조정법이 자발적인 의사에 의해 진행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조정을 강제하는 것은 조정의 원칙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대한의학회 박형욱 법제이사도 “조정은 재판과 완전히 다른 제도로 상호양해가 필수적이고, 양 당사자의 자발성과 신뢰를 전제로 한다”며 “현재 중재원을 보면 진료기록에 대해 강제조사권을 가지고 있는데 법원의 경우에는 모든 의료기록을 환자가 열람 복사할 권리가 있어서 따로 강제조사권을 가지고 있지 않고 거의 모든 재판도 잘 진행된다”고 지적했다.

박 이사는 “중재원이 가지고 있는 강제조사권으로 인해 의사들이 조정 참여에 기피하는 이상을 초래하고 있다”며 “감정부 또한 의료전문가보다 이외의 사람들이 많아 의료인 입장에서는 중재원의 조정이 재판보다 더 불리한 모습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불합리한 점을 지적하기 위해 소비자보호원을 예로 들었는데 지난 국정감사에서 중재원과 소비자보호원의 접수처리건을 조사했는데 중재원이 소비자보호원보다 예산을 13배 가까이 더 쓰면서도 처리건수는 더 적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또 “조정이라는 자발적 제도에서는 상호신뢰적인 모습이 필요한데 중재원의 모습은 직권적, 권력적이고, 감정부마저도 의료전문가가 아닌 비전문가가 다수를 차지하는 기형적 모습을 갖고 있다”며 “이마저도 조정에 반대되는 모습”이라고 강조했다.

“자동개시가 필요하다면 중재원이 갖고 있는 권력적 기능을 삭제하고 감정부 또한 양 당사자가 추천한 의료전문가로 구성돼야한다”며 “사망이나 중상해에 있어 의료과실이 차지하는 것은 극소수인데, 이런 극소수 때문에 선량한 대부분의 의사들에게 의료인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주는 것이 말이 되는가”라고 일갈했다.

이어진 청중질의에서는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의견과 함께 이번 개정안에 대한 헌법소원 가능성에 대한 목소리가 있었다.

자신을 병협 부회장이라고 소개한 인사는 “오늘 토론회를 보니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에 대해 무조건 반대한다는 입장이 많은데, 강제 개시안을 잘 살펴서 의료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만드는 쪽이 더 낫다는 생각”이라며 “무조건 반대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 의협 추무진 회장이 의료분쟁조정 강제개시 토론회에서 질의를 하고 있다.

여기에 의협 추무진 회장은 “이번 개정안이 직업수행의 자유 등에 비춰볼 때 위헌 요소가 있는지 여부를 묻고 싶다”며 간접적으로 헌법소원의 가능성을 내비췄다.

그러나 추 회장의 질의에 유화진 변호사는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이번 개정안에 불합리한 측면이 있지만 위헌으로 나올 가능성이 적다”고 답변했다.

이와 함께 토론회 발제를 맡은 강청희 상근부회장은 “이번 개정안이 법사위까지 갔다는 건 무조건 통과되는 뜻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며 “과거 많은 의료악법들이 법사위에서 통과되지 않았는데 이런 부분에 있어 희망을 갖고, 토론회를 통해 회원들의 목소리를 취합해 법사위에 전달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이어 “의료현장의 목소리를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의사로, 의사들이 환자의 목소리도 함께 전달한다는 것을 정부와 국회가 알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이를 위해 협회는 반성하고 더욱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약속드린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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