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케로민 투여로 뇌출혈 악화됐다고 인정 어렵다” 판결

뇌출혈 환자에게 케로민을 투여하는 것이 환자 상태를 악화시키는 것일까? 이에 대해 법원은 케로민 투여가 뇌출혈을 악화시키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서울고등법원 제9민사부는 최근 환자 A씨가 B학교법인을 상대로 제기산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패소를 선고함과 동시에 피고가 원고를 상대로 제기한 진료비 반소까지도 모두 기각했다.

A씨는 지난 2012년 1월 경 어지러움, 두통, 실신 증상이 발생해 B학교법인이 운영하는 B대학병원에 응급실에 도착했다. B병원 의료진은 A씨에게 뇌졸중이나 지주막하출혈이 발생한 것으로 의심하고 뇌 CT검사를 시행했는데, 검사 결과 좌측 소뇌 실질내 및 지주막하출혈 소견이 관찰됐다.

A씨는 의료진에게 심한 두통을 호소하며 구토를 했고, 의료진은 A씨에게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인 케로민을 근육주사했다.

이후 A씨는 급격히 의식이 저하돼 반혼수 상태에 이르렀고, 의료진은 즉시 A씨에게 산소를 공급하면서 심전도와 산소포화도 모니터링을 실시하는 한편, 기관내 삽관을 시행하고 인공호흡기를 적용했다.

의료진은 A씨의 활력징후가 어느 정도 안정되자 다시 뇌 CT검사를 시행했는데 검사 결과 뇌출혈이 악화된 소견이 관찰됐다. 이에 의료진은 응급수술이 필요하다고 판단, A씨에 대해 후두골절개술 및 혈종제거술, 경막성형술을 시행했다.

수술 이후에도 A씨는 한 달 동안 지속적인 고열증상에 시달렸고, 의료진은 균 배영 검사를 통해 아시네토박토 바우마니균과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상구균에 감염된 것을 확인, 고열증상과 감염에 대해 치료를 진행했다.

이후 A씨는 일반병실로 전실된 후, 반년 후 퇴원하게 됐다.

A씨는 “국내외 케로민에 관한 의약품 정보에 따르면 뇌출혈 환자에게 케로민을 투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료진은 권고용량의 3배가 넘는 30mg의 케로민을 투여해 뇌출혈을 악화시켰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B대병원 측은 “A씨가 두통을 호소해 뇌압상승 등 부작용 발생을 방지하기 위해 케로민을 투여했고, 의학적으로 케로민 투여에 대해 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A씨의 뇌출혈 상태가 악화된 것은 케로민 투여가 아닌 뇌출혈 진행으로 인해 나타난 결과”라고 반박했다.

1심 재판부는 A씨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뇌출혈이 의심되는 경우 두통 등 통증으로 환자가 불안정하게 되면 혈압 및 맥박의 변화로 뇌출혈이 악화되는 경우가 많고, 이러한 경우 환자를 안정시키기 위해 진통제를 투여하게 되는데 통증의 정도에 따라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나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한다”며 “케로민은 급성의 중증도 및 중증의 통증 조절을 위해 사용되는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라고 밝혔다.

케로민을 대체할 약물로는 트라마돌염산염, 디클로페낙나트륨, 케토프로펜이 있으나 트라마돌염산염은 마약성 진통제로 투여 시 의식 저하 및 호흡 부전 등이 발생할 수 있고 디클로페낙나트륨·케토프로펜은 케로민과 같은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로 케로민과 동일하게 혈소판 기능 억제 작용을 한다는 게 재판부의 설명이다.

이어 “케로민을 수차례 투여해 출혈이 증가했다는 보고는 있지만 1차례 투여로 출혈이 증가했다거나 30mg을 투여해 출혈이 증가했다는 보고는 현재까지 없다”며 “미국 식품의약국은 통증의 단기요법으로 케로민 투여를 승인하고 있고, 케로민을 근육주사로 투여할 때 승인용량은 60mg을 1회 또는 30mg을 6시간 마다 투여하는 것인 점 등에 비춰보면 의료진의 케로민 투여에 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에 불복한 A씨는 권고용량의 3배인 30mg의 케로민을 투여해 아낙필락시스 쇼크가 발생했다면서 항소했지만 2심 재판부의 판단도 1심과 같았다.

2심 재판부는 “대부분의 환자에서 아나필락시스 증상 발현은 노출 후 60분 이내에 발생하는데 A씨에게 발진 등이 발생한 시기는 케로민이 투약받은 시점으로부터 8시간이 경과했다”며 “아낙필락시스의 경우 80~90%에서 가려움 등 피부증상, 70%에서 호흡곤란, 천명음 등이 발생하는데 A씨에겐 발진 외에는 아나필락시스의 증상이 관찰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또, “A씨가 반혼수 상태가 되자 의료진은 즉시 산소를 공급하면서 산소포화도 모니터링을 실시했고 CT검사를 통해 A씨의 상태를 진단한 뒤, 수술을 진행했다”며 “이 같은 사실을 볼 때 의료진이 A씨에게 케로민을 투여한 데에 어떤 과실이 있다거나 처치를 지연한 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렵고, 아나필락시스가 발생하거나 뇌출혈이 악화됐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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