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벤조디아제핀 '문제없다'-PPI 장기간 복용 '적신호' 새국면

▲ 최근 대표적 위산분비억제제인 PPI를 고령에서 장기간 복용할 경우 치매 발생 위험이 늘어난다는 연구결과가 공개됐다.

고령인구가 늘면서 사회적 문제로까지 급부상한 질환이 치매다. 다양한 원인이 손에 꼽히지만, 최근 발표된 두 편의 대규모 연구에서는 환자가 복용하던 약물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결론은 간단하다. 노인들에서 이들 약물을 장기간 복용할 경우 치매의 발생이 늘어난다는 것. 그런데 주목할 점은 평가된 두 약물이 현재 널리 처방되는 치료제라는 점이다.

위산분비 억제제인 프로톤 펌프 저해제(Proton Pump Inhibitors, PPI)와 항불안제인 벤조디아제핀(benzodiazepine)이 이번 이슈의 중심에 선 가운데 한 약물은 새롭게 치매 위험이 대두됐고, 장기간 복용시 치매 발생 논란에 휩싸였던 나머지 약물은 결국 '근거없다'는 데에 의견이 모아졌다.

논란을 끝맺듯 최근 연구를 통해 노인의 치매 발생 위험을 무마시킨 쪽은 벤조디아제핀이었다. 연구에 참여한 65세 이상 3400여 명의 노인이 고용량 벤조디아제핀을 장기간 복용했으나 치매가 늘지 않았다는 게 이유다.

반면 PPI는 치매 발생과 관련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이미 여성 환자에 골밀도를 감소시킨다거나 노인에서 클로스트리듐 디피실균(clostridium difficile) 감염 위험을 높이고, 위산이 분비되지 않는 무산증 발생까지 경고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연구는 치매와의 연관성을 밝히는 데에 시선을 돌려, 고령 환자가 PPI를 장기간 복용할 시 치매 위험이 44%까지 높아진다는 화두를 던졌다. 앞선 연구와도 일치하는 결과였다.

벤조디아제핀 10년 추적관찰 결과, 치매 위험 논란 반박

지난 2일, BMJ 온라인판에는 미국 워싱턴의대 Shelly L Gray 교수팀의 연구결과가 게재됐다. 65세 이상의 노인 3434명을 대상으로 10여 년간을 추적관찰한 결과, 치매 발생과 관련해 벤조디아제핀이 더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결론이었다.

이는 지난 2014년에 발표된 프랑스·미국 연구진의 공동연구결과에 배치되는 주장이었다. 앞선 연구는 6개월에서 5년까지 벤조디아제핀을 복용한 노인환자에서는 치매 발병률이 최대 51% 이상 더 높았다는 게 요지였다. 벤조디아제핀 성분이 함유된 수면·진정제를 장기간 복용할 때 위험도가 더 올라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논문의 주저자인 Gray 교수는 "벤조디아제핀 복용군을 비복용군과 비교했을 때, 30일 복용시 치매 발병위험도는 1.25배, 31~120일 1.31배, 131일 이상 복용했을 경우는 1.07배로 다시 줄었다"면서 "벤조디아제핀 복용으로 인해 치매 발병 위험이 증가한 환자들은 이미 이전에 인지저하가 발생했거나, 치매 진단을 받은 것이 결과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PPI 장기간 투약한 75세 이상 고령, 치매 위험 44% 증가

뒤이어 JAMA Neurology 2월 15일자 온라인판에도 치매의 발생을 놓고 PPI와의 상관관계를 밝혀낸 논문 한 편이 게재됐다(doi:10.1001/jamaneurol.2015.4791). 상부위장관에서 위산 분비 장애, 위궤양, 위·식도역류질환 등의 치료에 주로 처방되는 PPI를 정기적으로 투약할 경우 75세 이상의 고령 환자에서 치매의 발생을 증가시킨다는 결론이다.

결국 벤조디아제핀과 마찬가지로 노인에서의 투약이 문제였다.

일단 연구에 사용된 PPI 계통 약물은 5개다. 오메프라졸, 판토프라졸, 란소프라졸, 에소메프라졸, 라베프라졸 가운데 최소 한 개 이상의 PPI를 18개월간  규칙적으로 복용한 환자가 타깃이 됐다. 그 결과, 2004년부터 2011년까지의 연구기간동안 총 2만 9510명이 치매를 진단받았고 절반이 넘는 59.0%가 기타 치매 증상으로 진단받았다.

연구를 주도한 독일 퇴행성 신경질환연구센터(German Center for Neurodegenerative Diseases)의 Willy Gomm 박사팀은 이미 PPI와 치매의 연관성을 밝혀낸 바 있는데, 'the German Study on Aging, Cognition and Dementia in Primary Care Patients (AgeCoDe)'로 명명된 이전 연구결과에서도 같은 결론을 내렸다. 독일에 거주하는 3327명의 75세 이상 노인에서 정기적으로 PPI를 복용한 경우 치매 위험은 38%가 증가했던 것.

이와 비교해 이번 확장 연구에서는 독일 국민건강보험 청구자료(Pharmacoepidemiological Claims Data)를 토대로 전체  7만 3679명의 7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했다. 결과는 PPI를 정기적으로 투약한 2950명에선 치매의 발생 위험이 44%까지 올라갔다.
 

▲ PPI와 치매 발생의 상관성을 밝힌 연구결과가 나왔다. 향방은?
다약제복용 환자서도 치매 16% 늘어

PPI의 투약 빈도를 줄여 필요한 경우에만 해당 약물을 복용(occasional use)한 환자에서는 정기적 PPI 복용군(44%)보다 낮은 16%의 위험도를 나타냈다.

이외에도 연구에서는 일부 교란인자 또한 치매 위험을 가중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테면 우울증과 뇌졸중은 치매 발생 위험을 각각 28%, 37%까지 높였다.

게다가 당뇨병 환자거나 5개 이상의 치료제를 한번에 투약하는 다약제복용(polypharmacy) 환자에서도 같은 양상을 보였다. 연구의 공동저자인 동 연구센터 Britta Haenisch 박사는 "다약제복용 환자에서는 치매의 발생이 약 16%까지 늘어났다"고 지적하면서, "PPI 가운데서도 처방이 가장 많은 오메프라졸, 판토프라졸, 에소메프라졸만을 대상으로 한 하위분석 연구결과 또한 이와 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연령에 따른 치매의 위험도는 다소 상이한 경향이 관찰되기도 했다. PPI 복용에 따른 치매 발생의 위험도는 연령이 증가함에 따라 서서히 감소했고, 교란인자로 작용했던 우울증과 뇌졸중 역시 환자가 고령이 될 수록 그 영향력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다만, 75세에서 79세까지는 치매 발생 위험 자체가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연구팀은 "연령이 늘수록 치매에 대한 내·외부적 요인들의 영향력이 줄어든다고 추정할 수 있고, 이전부터 치매가 시작됐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히스타민 H2 수용체 길항제·프로스타글란딘 등 대체 가능

그럼에도 이번 결과만 놓고, 증상조절이 시급한 해당 환자에 무작정 PPI의 처방을 중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Haenisch 박사는 일부 약물이 노인의 위장관장애 치료제로 PPI를 대체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현재 처방되는 PPI 가운데 최대 70% 정도가 투약이 적절치 못한 과잉처방의 사례들"이라고 꼬집으며, "히스타민 H2 수용체 길항제를 비롯해 프로스타글란딘, 제산제 등이 PPI를 대체할 수 있다"고 밝혔다.

PPI, 비타민B12 결핍 유도…인지기능 감소와 연관

해결 과제도 남았다. 알츠하이머병의 주요 원인이 되는 ApoE 4 유전자의 영향이 배제됐고, PPI가 원인이 된 치매 발생기전과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명확히 밝혀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선 동물실험 결과, 일부 PPI는 혈액뇌장벽(blood brain barrier)을 통과해 뇌의 효소들과 상호작용을 하며, 치매를 유발하는 물질인 베타 아밀로이드(beta-amyloid)의 수치를 증가시킬 수 있다는 실마리는 제시된 상황.

Haenisch 박사는 "이번 연구엔 비타민B12 수치의 변화가 포함되지 않았지만, 이미 다른 연구에서 PPI의 사용이 비타민B12의 결핍을 유도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바 있다"며 "이러한 비타민B12의 결핍이 결국 인지기능의 감소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음이 조금씩 증명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에는 단서가 붙었다. "PPI와 치매 발생에서 통계학적인 연관성을 찾아낸 것일뿐, PPI가 치매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은 아니"라며, "보다 확실한 인과관계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무작위 전향적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는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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