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부 강현구 기자

조선시대에 ‘격쟁(擊錚)’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당한 사람이 궁궐에 난입하거나 국왕이 거동하는 때를 노려 징이나 꽹과리·북을 친 뒤, 자신의 사연을 국왕에게 직접 호소하는 행위를 말한다.

구두로 억울한 일을 진술하고 이 내용이 여과 없이 국왕에게 전달될 수 있었기 때문에 조선의 백성들에게 격쟁은 선호할 수밖에 없는 소중한 ‘소통’의 창구였다.

그로부터 수백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소통’은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화두다. 지난달 30일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열린 ‘사건’도 이 소통의 부재가 주 원인으로 꼽혀왔다.

이에 의협 집행부와 비대위는 지난 13일 앞으로의 대정부투쟁 방식에 대해 회원들의 의견을 경청하겠다는 의미로 범의료계 토론회를 개최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연 토론회는 ‘범의료계'라는 단어를 붙이기에도 민망한 수준의 참석률을 보였다.

토론회에 참석할 수 있는 대상은 의사 면허를 가진 의협의 모든 회원이었지만 이날 참석자는 40여명에 불과했다. 이 중에서 의협 임원과 시·도의사회장 등을 제외하면 의협이 의견을 듣겠다고 한 일반회원의 숫자는 20여명도 되지 않은 수준이다.

참석한 20여명의 회원 중에서 마이크를 잡고 의견을 개진한 회원은 7~8명, 그나마도 2~3명이 마이크를 독점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온라인과 SNS를 통해 의협 집행부의 회무를 규탄하고, 투쟁방향을 바로 잡아야한다고 비판했던 이들은 모두 어디로 숨었는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이에 토론회에 참석한 했던 한 의협 임원은 그동안 의협이 회원들의 말을 듣지 않았나는 생각에서 범의료계 토론회 개최를 강력히 주장했고, 회원들이 벌떼처럼 몰려올 줄 알았는데 참석인원이 적어서 실망했다는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회원들의 이야기도 투쟁의 방향을 제시하기 보다는 추무진 집행부를 비판하는데 집중됐다. 의협 집행부에 대한 회원들의 '답답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지만, 또 한편 추무진 회장이 의료일원화·대정부투쟁에 대한 의지를 밝히지 않았다는 점이 ‘격쟁’을 할 정도로 긴박한 일이었는지를 되묻고 싶어졌다.

범의료계 토론회에 참석하지 않은 수많은 회원 모두에겐 참석을 하지 않은 스스로를 정당화할 이유들이 있었을 것이다. 다만 모처럼 열린 대회의 장이었던 만큼 말그대로 '범의료계'가 한자리 모여 그간 묵혀왔던 내부의 문제를 수습하고, 이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투쟁의 방향을 논의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행동하지 않는 리더는 미래가 없다. 덧붙여 현실에 대한 비판과 행동은 비단 리더의 덕목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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