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대한민국 천식관리 실태 진단<下>

Solution # 1
근본 문제는 환자교육…국가가 나서면 된다

▲ 조상헌 교수가 환자교육 중인 모습

천식 진료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전문가들이 꼽는 가장 시급한 과제는 교육 프로그램 도입이다.

흡입기는 경구약물과는 달리 사용법이 까다롭기 때문에 진료시간 동안 짧게 알려주는 것만으로는 환자들이 정확한 방법을 숙지하기 힘들다는 것. 

한 번 알려줬더라도 다음 진료 시 제대로 사용하고 있는지, 정량분사흡입기(MDI)와 분말흡입기(DPI) 중 어떤 형태가 더 맞을지, 흡입제 사용 후 가글링까지 하고 있는지 개별적인 평가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만 한다. 약물사용 말고도 악화요인 관리, 식이요법 등 전반적인 생활요법에 관한 내용을 아우를 수 있는 교육 관리프로그램이 국가 차원에서 운영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대한천식알레르기학회 조상헌 이사장(서울대병원 알레르기내과)은 "흡입기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환자들은 효과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져 안 쓰게 되고, 반대로 효과를 본 환자들은 임의로 중단하는 바람에 순응도가 낮은 경우가 많다"며 "고혈압이나 당뇨병 약물처럼 흡입제도 평생 사용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인식시키기 위해선 반복적인 교육만이 답"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천식 교육프로그램이 안착하려면 갖춰져야 할 선행조건이 있다. 천식·알레르기 환자에 대한 교육수가 같이 의료진들에게 동기부여할 수 있는 보상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핀란드·호주는 대표적인 성공사례

 

이 같은 주장의 근거는 해외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니, 대표적인 사례가 핀란드의 국가천식관리 프로그램이다.

천식을 중대한 공중보건학적 문제로 인식한 핀란드 정부는 1994년부터 2004년까지 10여 년에 걸친 장기 프로젝트를 기획한다(Thorax 2001;56:806-14). 천식의 조기발견율을 높여 중증 천식을 감소시키고, 삶의 질을 향상시켜 궁극적으로는 의료비 지출을 줄인다는 게 최종 목표였다.

환자들의 접근성이 높은 1차 진료의와 간호사, 약사들 사이에 유기적인 협력체계를 갖추고 의료진에게 먼저 ICS의 중요성을 교육시켰으며, 지역별로 지정된 21개 중심병원에서는 환자들과 관련 NGO 대상으로 천식 치료 및 예방에 대한 학습을 주도했다. 또한 환자들에게는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병가 또는 휴무 혜택을 받도록 허용함으로써 의료진과의 접촉 빈도를 높였다.

그 결과 천식 환자수는 여전히 증가세지만 천식으로 인한 질병 부담은 오히려 감소됐다는 결론을 얻었다. 

천식으로 인한 입원일수가 절반 이상 줄었으며, 1993년 2억 1800만 유로에 달했던 사회적 비용이 2003년 2억 1350만 유로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환자 1인당 진료비도 1611유로에서 1031유로로 36% 감소한 것으로 분석되며 핀란드는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천식프로그램을 시행한 국가로 등장한다.

▲ 핀란드에서는 1994년부터 10여 년에 걸친 국가천식관리 프로그램을 진행한 결과, 천식환자 수가 증가했음에도 의료비 지출을 줄일 수 있었다.

한편 호주에서는 일명 3+ Visit Plan이라고 해서 한 환자를 1년에 3회 이상 지속적으로 교육·관리하는 1차 진료의에게 1인당 호주달러로 100불을 지불한다(Intern Med J 2005;35:457-62). 환자 입장에서는 주치의처럼 본인이 원하는 병원의 의사에게 꾸준히 진료를 받을 수 있고, 의사 입장에서는 추가수당이 지불되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호주 정부는 진료의 연속성이 유지될 경우 궁극적으로 국가관리 비용이 줄기 때문에 오히려 이득이라고 판단해 이런 조치를 마련했다.

조 이사장은 "천식 환자들에게는 약물치료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일상생활 중 자가관리가 중요한데, 우리나라는 시스템상 환자들에게 상세히 교육할 만한 여지가 전혀 없다"며 "국가 간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정부의 도움 없이는 성공적인 천식교육이 이뤄지기 힘들다. 고혈압, 당뇨병 환자에 적용되는 만성질환관리료가 천식이나 아토피질환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Solution # 2
한국천식알레르기협회 ‘EAM’ 개발…전자청구 프로그램 연계로 활용도 UP

천식진료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표준화된 진료지침을 보급하는 것이다. 천식, 고혈압, 당뇨병 같은 만성질환부터 감염병, 암에 이르기까지 숱한 가이드라인이 쏟아져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다만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진료지침을 개발, 보급하더라도 진료의가 지침을 따라 진료하는 것까지 보장할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진료의가 지침서를 정확히 이해하고 실제 진료에 적용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특히 우리나라처럼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수의 환자를 봐야 하는 환경에서는 가이드라인에서 권고하는 진료를 제공하는 데 더욱 제한점이 많기 때문이다.

이에 한국천식알레르기협회는 1차 진료의들이 알고리듬이나 흐름도처럼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있으면서도 플라스틱 시트나 포켓카드 또는 환자의 전자의무기록에 내장되는 형태를 선호한다는 조사 결과(Allergy Asthma Immunol Res 2010;2:247-53)에 착안, 컴퓨터용 천식 진료지침인 EAM(Easy Asthma Management)을 개발했다.

3차 대학병원에서 천식으로 확진받은 환자들이 호소했던 다양한 호흡기 증상을 조합해 천식가능성을 산출하도록 만든 것이다. 진료의는 천식이 의심되는 환자가 내원했을 때 EAM 화면에서 제시하는 증상 문진표에 따라 질문하고 천식 가능성을 확인하기만 하면 된다.

▲ EAM 화면구성의 예. 측정된 천식조절점수(ACT)에 따라 변경 가능한 약물 투여 단계와 지침에서 권고하는 약물을 제시해준다.

5개의 질문 항목으로 구성된 천식조절점수(Asthma Control Test)를 추가함으로써 환자의 조절정도를 평가하기 쉽게 도왔고, 조절점수에 따라 변경 가능한 약물 투여 단계와 지침에서 권고하는 약물을 제시해준다.

또한 천식협회가 운영하는 홈페이지와 연결시켜 각각의 흡입기구에 대한 사용법 동영상과 함께 생활 환경관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환자교육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실제 EAM을 진료에 적용했을 때, 환자의 주간 및 야간 증상이 신속하게 개선됐으며 약물의 처방 패턴 또한 지침에서 제시하는 대로 흡입제 위주로 변화됐다는 근거들도 확보된 상태다(Cho SH et al. J Asthma 2010).

▲ 조상헌 이사장

조상헌 이사장은 "EAM을 사용하기 전과 후의 처방 약물 변화를 EAM 활용군과 비노출군으로 나눠 비교한 결과, EAM 활용군에서 ICS 처방이 증가하고 경구용 약물의 처방량은 감소했음을 확인했다"며 "이용자들의 편의를 높이고자 협회 차원에서 '의사랑'이라는 의원급 전자청구 프로그램과 무상으로 연동시켜 제작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역시 EAM을 적극적으로 보급하고 1차 의료기관의 활용도를 높이려면 정부의 개입과 보상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조 이사장은 "천식협회가 EAM 프로그램의 성과를 분석하기 위해 2014년부터 질병관리본부의 정책연구용역사업을 진행 중"이라며 "향후 긍정적인 결과가 도출되어 국가 차원에서 보급·확산된다면 우리나라의 천식치료 수준이 획기적으로 바뀔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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