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형 당뇨병에는 낮은 인슐린 분비능과 높은 인슐린 저항성이 모두 원인으로 작용한다. 특히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의 경우 전통적으로 취약한 인슐린 분비능의 조류에, 최근 생활습관 서구화에 따른 인슐린 저항성의 조류까지 겹치면서 제2형 당뇨병 대란의 유속이 더욱 빠르고 거세지고 있다.

인슐린 저항성
서양의 경우 비만 - 인슐린 저항성 - 고혈당으로 이어지는 인과관계가 제2형 당뇨병의 유병특성을 지배하고 있다. 비만인 성인에서 인슐린 민감도(감수성)가 감소해 저항성이 발생하고, 제 기능을 못하는 인슐린을 보충하느라 더 많이 일해야 하는 췌장 베타세포마저 기능을 상실하게 되면 고혈당이 지속된다.

인슐린 분비능
반면 우리나라는 서양과 비교해 비비만형 당뇨병이 많은데, 낮은 인슐린 분비능이 원인 중 하나로 지적돼 왔다. 아시아 지역·인종의 경우 인슐린 분비능이 서구와 비교해 근본적으로 저하돼 있는 것으로 보고돼 왔다. 농경사회가 수천 년 지속되는 과정에서 인슐린 저항성이 크게 문제되지 않았고, 이에 따라 인슐린 분비능 증대에 대한 요구가 상대적으로 미미했다는 가설이 있다.

한국인의 당뇨병
베타세포 기능이 떨어지거나 전혀 가동되지 못하면 제1형 당뇨병이 발생한다. 하지만 인슐린 분비능 자체가 저하돼 있는 경우에는 조금의 인슐린 저항성만으로도 베타세포가 부담을 받아 고혈당이 유지되는 제2형 당뇨병 위험도 간과할 수 없다.

본래 인슐린 분비능이 약한데다가 인슐린 민감도마저 떨어지는 변화를 겪다 보니 혈당량 유지를 위해 췌장이 더 많은 부담을 안게 되고, 결국에는 지쳐버린 베타세포가 기능을 상실하며 파국을 맞는 형국이다.

 

서울의대 박경수(서울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팀이 Lancet Diabetes & Endocrinology 2015년 11월 11일자 온라인판에 보고한 연구논문이 국내외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인슐린 분비능과 저항성이 모두 용의자로 지목되는 한국인, 더 나아가 아시아인의 당뇨병 유병특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박 교수팀은 10년 추적·관찰연구를 통해 한국인에서 인슐린이 기능을 못해 고혈당이 지속되고 있음(인슐린 저항성)에도 인슐린을 계속 공급해야 할 췌장 베타세포 기능 또한 제 역할을 하지 못함(인슐린 분비능 저하)에 따라 제2형 당뇨병이 발생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궁극적으로는 인슐린 민감도 감소에 대한 보상작용으로 베타세포 기능이 증대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 기전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결론이다. 베타세포 기능부전(인슐린 분비능 저하)을 우리나라 당뇨병 발생의 주된 원인으로 꼽은 것이다.

당뇨병 12%, 당뇨병 전단계 27%
연구팀은 우리나라 안성과 안산에 거주하는 성인 중 정상혈당을 보이는 4106명을 2001부터 2012년까지 추적·관찰했다. 당뇨병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두 인자들의 동태(動態)를 관찰하기 위해 2년마다 경구당부하검사를 실시, 인슐린 분비능과 저항성의 변화를 분석했다. 두 인자가 한국인 당뇨병 발생에 미치는 영향력을 파악해 서양인과의 차이를 규명하기 위함이었다.

관찰결과 지난 10년 동안 당뇨병은 12%(498명), 당뇨병 전단계는 27%(1093명)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인 대상의 빅데이터가 제시하는 유병률과 거의 일치하는 수준이다. 정상혈당을 유지한 사람들과 비교해 당뇨병, 당뇨병 전단계 환자들은 체질량지수(BMI), 허리둘레, 혈압, 중성지방 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제2형 당뇨병의 전형적인 위험인자들이다.

인슐린 분비능과 민감도
연구팀은 기저시점의 검사수치에 따라 참여자들을 인슐린 ‘분비능↑·민감도↑’, ‘분비능 ↑·민감도↓’, ‘분비능↓·민감도↑’, ‘분비능↓·민감도↓’ 그룹으로 분류했다. 이들 그룹 간에 당뇨병 발생위험을 비교한 결과, 두 인자 모두 낮은 군의 위험도가 모두 높은 군과 비교해 6.08배 높았다.

인슐린 민감도만 낮은 군과 인슐린 분비능만 낮은 군의 당뇨병 위험도는 두 인자 모두 높은 군에 비해 각각 2.62배와 3.35배씩 증가했다. 연구팀은 이에 근거해 “베타세포 기능장애가 당뇨병 발생에 미치는 영향력이 인슐린 민감도보다 컸다”고 밝혔다.

정상혈당과 당뇨병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정상혈당을 유지한 경우와 당뇨병으로 진행된 환자들에서 인슐린 분비능과 저항성의 변화를 비교·분석한 대목이다. 우선 당뇨병 발생 그룹은 정상혈당 그룹과 비교해 처음부터 인슐린 분비능과 민감도가 각각 38%와 17%씩 낮았다. 특히 10년 동안 인슐린 민감도는 64%나 감소한 반면 인슐린 분비능은 전혀 증가하지 않았다.

인슐린이 제기능을 못해 당을 흡수하지 못할 경우 이에 대한 보상작용으로 인슐린 분비능이 계속 증가돼야 하는데, 베타세포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다시 말해 인슐린 저항성 증가에도 불구하고 이를 상쇄할 만큼의 인슐린 분비를 늘리지 못해 제2형 당뇨병이 발생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반해 정상혈당 그룹에서는 10년 동안 인슐린 민감도가 27% 감소했지만, 인슐린 분비능은 70%나 증가했다.

향후 과제는…
연구팀은 “베타세포 기능이 제한적인 경우에는 인슐린 민감도 감소를 보상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당뇨병 발생위험이 높다”는 말로 결론을 갈음했다. 또 “이 연구결과를 통해 당뇨병 발생위험이 높은 고위험군 환자를 가려낼 수 있을 것이며, 베타세포 기능장애에 기여하는 인자들을 찾아내 당뇨병의 예방과 치료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의미를 전했다. 특히 “이번 결과에 기반해 베타세포 기능저하를 극복하고 당뇨병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물론 장기적으로 베타세포 기능을 개선할 수 있는 다양한 항당뇨병제에 대한 연구도 진행돼야 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박 교수팀은 “단독으로 감소된 인슐린 분비능을 높이면 당뇨병 발병위험을 줄일 수 있고, 더 나아가 효율적인 고혈당 치료를 담보할 수 있다”며 “혈당이 정상이나 인슐린 분비능이 떨어지는 사람들을 선별하고, 인슐린 분비능 저하의 원인과 이를 높이는 방법을 찾는 것이 한국인 당뇨병의 예방과 치료에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마무리 했다.

대한당뇨병학회 가이드라인

대한당뇨병학회는 지난해 발표된 당뇨병 진료지침 개정판을 통해 한국인 유병특성을 반영한 약물치료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학회는 환자의 임상특성, 극내 임상근거, 약제 처방빈도, 약제 특성 등을 고려해 “단독요법 시 메트포르민을 초치료로 사용하도록 권고했으며, 다만 환자의 상태에 따라 메트포르민 이외의 경구혈당강하제도 초기 단독요법으로 시작할 수 있도록 했다”고 다약제 1차선택의 배경을 설명했다.

제2형 당뇨병 환자의 초치료 전략에 대한 다기관 무작위·대조군 임상연구로 UKPDS가 있다면, 국내에는 PEAM 연구(Diabetes & Metabolism Journal 2011;35:26-33)가 있다. 비비만형과 비만형 당뇨병 환자가 절반씩 포함된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설폰요소제, 메트포르민, 티아졸리딘디온계의 혈당조절 효과를 비교한 결과 세 약제 모두 유의한 혈당조절 효과가 확인됐다.

한국인의 당뇨병 유병특성을 고려해 국내 환자들을 대상으로 국내 연구진이 진행한 최초의 다기관·이중맹검·무작위 임상연구로, 우리나라 당뇨병 환자들의 초기선택에 어떤 약제가 적합한지를 비교·검증하고자 했다. 국내 15개 대학병원에서 경구 혈당강하제 치료경험이 없는 당뇨병 환자들을 1년간(2007~2008년) 세 가지 계열의 약제군으로 무작위 배정해 치료·관찰했다. 만 30세 이상 65세 미만으로 당화혈색소(A1C)가 6.5%를 초과하고 9.5% 이하인 신규 제2형 당뇨병 환자들에게 설폰요소제(118명), 메트포르민(114명), 티아졸리딘디온계(117명)를 각각 투여했다. 연구종료 시점에서 A1C는 설폰요소제(-0.89±0.76%), 메트포르민(-0.92±0.96%), 티아졸리딘디온계(-0.82±0.79%) 그룹 모두에서 기저시점 대비 유의한 감소효과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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