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테스트기로 고환암 진단한다는 소문의 진실

 

임신테스트기로 고환암을 진단한다?

여성의 전유물이었던 임신진단 테스트기를 구매하는 남성들이 있다. 그것도 애인이나 배우자의 임신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용도가 아니라, 본인이 직접 사용하기 위해서다.

몇년 전 미국의 소셜 뉴스 사이트 '레딧(Reddit)'에는 장난삼아 전 여자친구가 남기고 간 임신진단테스트기를 사용했다가 '두 줄(양성반응)'이 나왔다는 익명 사례가 올라왔다.

만화 형식으로 그려진 이 사례에는 3일동안 무려 1300여 개의 댓글이 달리며 화제를 모았는데, 그 중에 '고환암일 수도 있으니 정식으로 검사를 받아보라'는 진지한 내용도 포함됐던 것.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병원을 찾은 사연의 주인공은 실제 오른쪽 고환에서 종양이 발견돼 고환적출술을 받았다. 무사히 치료를 받게 되어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만화 형식의 후기 사연을 올리면서 한번 더 화제몰이를 했고, 일부 남성들이 고환암 진단을 위해 임신진단테스트기를 구매하는 기현상을 낳았다.


소변 속 hCG 상승에 반응하는 원리 덕분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걸까? 그에 관한 답변은 임신진단 테스트기의 원리를 알고 나면 어렵지 않다.

임신진단 테스트기란 수정된지 약 7~10일 후부터 분비되는 사람 융모성 성선자극호르몬(hCG)을 소변에서 확인해 임신 여부를 알려주는 체외진단용 의료기기이다. 대부분 소변 내 hCG 농도 25mlU/mL를 양성 판단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hCG는 임신한 여성들에게서 상승되는 소견을 보이지만, 드물게 남성들 중에서도 hCG가 상승되는 병리적 상황이 존재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다름아닌 고환암이다. 전문가들은 "고환암 말고도 대장, 간, 폐, 위, 뼈 등의 장기에 종양이 생겼다던지 성선자극호르몬 과형성 성선부전증(primary hypergonadotrophic hypogonadism) 같은 질환이 있을 때, 혹은 마리화나 등 마약류를 사용한 경우에도 비정상적으로 hCG가 상승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다만 인터넷 공간에서 떠도는 소문을 따라 고환암 진단 목적으로 굳이 임신진단 테스트기를 사용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모든 고환암이 hCG를 분비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남성의 임신 테스트기 사용, 권고되지 않아"

고환암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제정한 분류체계에 따라 1977년 이후부터 종자세포종양과 비종자세포종양으로 분류된다<표>.

 

종자세포종양은 크게 정상피종(seminoma)과 비정상피종(non-seminoma)으로 나뉘며, 비정상피종을 다시 배아암(embryonal carcinoma), 난황주머니종양(yolk sac tumor), 융모막암종(choriocarcinoma), 기형종(teratoma)으로 세분화 하고 있다.

이들 중 hCG를 분비하는 유형은 정상피종의 15~20%뿐. 그 외 배아암이나 융모막암종도 hCG를 분비할 수 있지만 난황주머니종양, 기형종 등은 상당히 진행된 후라도 hCG를 분비하지 않는다.

지나치게 낮은 고환암 발생률도 문제인데, 2014년 발표된 중앙암등록본부 자료에 따르면 2012년 국내 암 발생건수 22만 4177건 중 고환암은 243건으로 전체 암 발생의 0.1%를 차지했다. 인구 10만 명당 조(粗)발생률은 0.5건으로 미국(인구 10만명당 5건) 등 서구국가들과 비교해도 현저히 낮았다.

이를 종합해 볼 때, 남성이 고환암을 조기진단하기 위해 임신진단테스트기를 사용하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다는 결론.

건국의대 최우석 교수(건국대병원 비뇨기과)는 "hCG 양성반응이 나왔다고 해서 반드시 고환암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고환암의 유병률이 매우 낮고 고환암이 있어도 hCG가 상승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에 남성들의 임신진단테스트기 사용을 권고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고위험군이라면 월1회 자가검진이 유용

▲ 건국의대 최우석 교수

그럼에도 고환암 발생이 염려된다면 고환암의 위험요인과 자가검진법을 숙지하는 편이 낫다.

아직까지 고환암은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진 않은 상태. 선천적인 요인 중 가장 흔한 위험인자로는 잠복고환(cryptorchidism)이 거론된다.

잠복고환은 종자세포종양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정상피종과 관련이 깊으며, 고환암 발생 위험을 4~6배 정도 증가시킨다고 알려졌다.

이유는 명확치 않지만 생식세포의 형태 변화와 온도상승, 혈류장애, 내분비장애 및 생식선 이상발육 등의 영향으로 음낭으로 내려오지 않은 고환이 점차 퇴축, 변성되어 종양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잠복고환교정술을 받으면 위험도가 2~3 배 정도로 내려오지만 여전히 일반인보다는 높다.

또한 고환암의 과거력이 있거나 아버지 또는 형제 중 고환암 가족력이 있는 경우에도 고환암 발생 위험이 증가하며, 외상, 임신기간 중 여성호르몬 투여, 고환 위축이 올 수 있는 화학 물질에 노출되거나 볼거리 바이러스 감염도 후천적인 요인으로서 영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선천적으로 위험요인을 가진 고위험군이라면 고환암의 조기발견을 위해 사춘기 이상부터 매달 고환자가검진 시행을 고려해 봐도 좋다. 음낭이 커졌거나 내부에 딱딱한 종물이 만져진다면 즉시 병원을 방문해 영상검사 및 혈청 종양표지자검사 등을 받아야만 한다.

후천적 요인과 관련해서는 생후 15개월에 볼거리 예방접종을 하고 4~6세 사이에 추가 접종을 시행함으로써 고환암 발생 요인 중 하나인 볼거리에 의한 고환염을 예방할 수 있다.

최 교수는 "다행스럽게도 고환암은 치료에 관한 결정을 내리는 데 유용한 종양표지자가 밝혀졌고, 항암화학요법의 효과도 높아 완치율이 높은 종양으로 인식되는 추세"라면서 "가끔 자신의 고환을 만져보고 커지거나 딱딱해지는지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조기검진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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