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환경호르몬과의 키스... 홍윤철 서울의대 환경보건센터장

영하의 날씨, 얼어붙은 몸을 녹여주는 편의점 온장고의 따끈한 커피 한잔. 그런데 카페인(caffeine)이나 폴리페놀(polyphenol) 같은 성분 외에 환경호르몬도 함께 마시고 있다면? 캔 커피 내부의 코팅제로 쓰이는 에폭시수지의 원재료는 대중에게 환경호르몬으로 잘 알려진 비스페놀 A이다. 모든 플라스틱 용기가 유해하다고 치부할 수 없지만 상당수 통조림과 캔음료, 커피전문점의 일회용 컵 심지어는 종이 영수증에도 비스페놀 A가 들어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겨울철 불티나게 팔리는 고가의 아웃도어 제품의 방수 가공에도 환경호르몬의 일종인 과불화화합물(PFCs)이 사용된다는 사실. 일회용 커피 컵, 샌드위치 포장지, 배달 피자 박스, 후라이팬과 같이 일상생활 중 흔히 접하는 소비재 역시 PFC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1> 당신은 매일 환경호르몬을 마시고 있다 <2> 환경호르몬 '먹고 만지고 입고' <3> 환경호르몬 관리, 개인에 맡겨선 안돼 식품용기는 1회용품보다 유리나 스테인리스 제품 사용하기, 화려하거나 강한 향이 나는 폴리염화비닐(PVC) 제품 피하기, 캔류 제품은 직접 데워서 사용하지 않기.서울특별시가 제품 회피를 통한 환경호르몬 안전수칙으로 제시한 조항이다. 서울시는 지난해 제작한 '우리 아이를 위한 생활 속 환경호르몬 예방 관리' 매뉴얼에서 제품 회피, 먼지제거, 생리적 배출의 3단계로 나눠 일상생활 중 실천 가능한 수칙을 알기 쉽게 정리했다.그런데 환경호르몬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개인의 선택에 맡기는 게 과연 최선일까?서울의대 홍윤철 환경보건센터장은 환경호르몬에 관한 대처방식에 이 같은 의문을 던진다.서울시 제공자료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서 유통되는 화학물질은 4만 3000종 이상. 매년 400여 종의 신규 화학물질이 새롭게 나타나며, 생활 속 사용량 역시 증가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환경호르몬의 유해성 논란이 시작된 지도 반세기가 넘었지만, 우리나라는 어느 제품에 어떤 환경유해인자가 얼마만큼 포함돼 있는지 실태파악조차 어렵다.홍 센터장은 "몇년 전부터 젖병이나 식품용기에 대한 사용금지 조치가 내려졌을 뿐 김장할 때 쓰이는 고무 대야나 쌀을 씻는 바가지, 통조림 캔 등에는 대안이 없다"면서 "내분비, 면역, 신경계통이 발달 단계에 있는 어린이나 신체기능 저하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노인 집단이 환경호르몬 노출에 취약하다는 점도 더욱 큰 문제"라고 짚었다.그간 수많은 연구가 유년기 지능지수(IQ), 정서장애, 학업능력 등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입증해 왔으며, 노인층에서도 폐기능 저하, 우울증, 근력약화 등에 관한 근거들이 다수 나와 있다. 노인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출산율은 한없이 낮아지는 상황 속에 실로 국가적 위기가 아닐 수 없다.
▲ 홍윤철 환경보건센터장

이에 홍 센터장은 "지난해부터 환경부 주도로 전국 단위의 '어린이 환경보건 출생코호트(Ko-CHENS)' 조사사업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2006년부터 '산모·영유아 건강영향조사'를 해 왔지만 서울 등 일부 지역에 한정돼 대표성이 부족하고 조사규모(1750명)도 적어 희귀질환 등 유병률이 낮은 질환을 연구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는 것.

이번에는 2036년까지 대규모코호트(9.5만명)와 상세코호트(5천명) 총 10만명을 대상으로 22년에 걸쳐 유해환경인자 노출이 임신·출산, 알레르기질환, 신경인지발달, 성장발육·내분비계, 사회성·정서발달의 5개 영역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다.

그는 "몰라서 혹은 편의성 때문에 무심코 써왔던 합성수지 제품이 장기적으로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누구도 답을 줄 수 없는 상태"라며 "학술적 근거마련부터 현황, 관리방안, 규제정책들이 보다 체계화 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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