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적 성장에 못 미치는 질적 수준…실제 임상 활용도 떨어져

임상진료지침이 2009년 이후 꾸준한 양적 팽창을 보이고 있지만, 질적 향상에 대해서는 아직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근거를 검색하고 가공하는 국제화된 방법론을 적용하는 데 있어서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지만 이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요소는 결국 지침이 나왔을 때 임상의들이 잘 활용하지 않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적극적인 배포와 홍보부족도 활용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본지는 신년기획으로 최근 늘어나고 있는 임상지침 현황을 살펴보고 활용 측면에서의 문제점과 대안을 짚어봤다.

국내 지침 161개…2009년 이후 ‘봇물’

국내 임상진료지침은 몇 개나 될까? 대한의학회 산하 임상진료지침 정보센터(KoMGI)가 홈페이지에 게시한 현황에 따르면, 2013년 11월 기준 45개 학회에서 115개의 지침을 개발했다.

이와 별개로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이 조사한 기준(2000~2014년 7월)으로는 모두 161개이다. 이는 대한의학회 인증 진료지침 41건과 추가 검색한 120건으로 구성돼 있다.

이를 기준으로 최근 5년 내(2009~2014년)개발된 지침이 115건으로 전체 71.4%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외에 46건이 2000~2008년 개발된 것이다.

지침을 개발하는 주체는 크게 정부와 학계로 나뉘는데 학계가 자체적으로 만드는 지침이 68.9%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정부주도 지침은 24.2%다. 공동으로 만드는 지침은 6.8%에 불과하다.

특히 이러한 비율은 2000~2008년 사이에 나온 지침과 2009년 이후로 나온 지침 간 큰 변화가 없다. 따라서 국내 지침 중 10개 중 7개는 학계 주도인 것이다.

여기에 2015년 한 해 동안 발표된 10여 개의 지침을 더하면 대략 170개가 넘고, 개정판과 신규 제정판 지침도 잇따라 완성될 것으로 알려져 당분간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이처럼 많은 지침이 나왔고 또 나올 예정이지만 그 활용도에 대해서는 아직 높다고 볼 수 없다.

얼마나 활용하는지 구체적인 조사도 없어

NECA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소아천식 임상진료지침 교육과정에 참석한 의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실제 진료에 적용한다고 답한 사람은 20% 미만으로 나타났다.

2013년 위식도 역류질환 및 심장CT 진료지침에 대한의학회 의사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도 자주 활용한다는 응답은 각각 50%와 38%에 불과했다.

지침은 임상의들의 임상현장에 사용할 목적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활용도가 매우 중요함에도 실제 활용도가 높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지침 활용도에 대한 신뢰도 높은 조사는 거의 없기 때문에 함부로 평가할 수는 없지만, 가이드라인 다운로드수(인용횟수), 학회 관심도, 소규모 설문 조사 등을 종합해 보면 활용도가 그리 높지 않은 게 사실이다.

대한의학회 김재규 정책이사는 "어렵게 만들어진 지침이 잘 활용되지 못하는 것은 대한의학회도 인정하고 있는 부분"이라며 "그 이유로는 지침의 질적 신뢰성, 국내 진료 환경 불일치, 알고리듬 개선 등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렵게 개발한 지침에 대한 신뢰도 줘야

국내에서 만든 지침의 활용도가 떨어지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체계적인 방법론의 적용이다. 이는 지침 신뢰성을 평가할 수 있는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지침의 방법론은 최근 급격하게 변했다.

진료지침 개발의 국제적인 추세는 2011년 미국의학한림원(IOM)이 Clinical Practice Guideline(CPG)을 만들 때 '체계적 문헌 고찰'과 '이득 및 위해 평가'에 대한 내용을 반드시 포함하도록 정의하면서 변화의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최소한 이 두 가지의 기준을 반드시 포함한 것만 지침으로 인정한 것이다.

여기에는 조건을 체계적으로 문헌검색 해야 하고, 문헌의 질 평가를 해야 하며 문헌자료합성이라든지 근거수준에 대해 명시를 해야 한다는 조건까지 들어 있다. 비슷한 시기 우리나라도 임상진료지침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는데 근거 합성 방법론을 기술하지 않은 지침이 많았다.

이러한 한계에다 다학제적 그룹의 구성이나, 방법론 전문가 및 학회 간 협력 등의 부족이 많았는데 결국 이런 부분이 의사들로부터 외면받은 이유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지침은 다학제 간 합의가 매우 중요한데 국내에서 나온 지침 중 10개 이상의 학과가 참여한 지침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요성은 끊임없이 주장되고 있지만 의사들 간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해결점도 찾지 못해 말로만 되풀이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NECA 진료지침협력연구팀 최미영 부연구위원은 "진료 질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신뢰도 높은 임상진료지침의 개발을 위해서는 다학제적 개발그룹의 구성, 체계적 문헌고찰 등 근거평가 방법론 부분 지원 그리고 향후 개발 지원이 필요한 임상영역의 발굴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적 방법론에 한국실정에 맞는 내용도 포함해야

국내 임상진료지침이 널리 활용되기 위해서는 약간의 변형도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최근 나온 몇몇 지침이 한국형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이 그러한 대표적인 예다. 이는 방법론적으로 잘 개발된 지침이라도 임상현장에서 수용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영국의 NICE, SIGN, WHO 가이드라인의 경우 개발 못지 않게 적용도 중요한 요소로 꼽고 있는데 국내에서도 지침을 개발할 때 참고해야 하는 부분이다. 지침의 활용도를 떨어뜨리는 두 번째 이유는 국내 환경에 맞지 않는 시스템을 들 수 있다.

현재 국내 지침은 몇몇을 제외하곤 모두 학회가 진료지침위원회를 꾸려 자체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지침 개발 방법론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인력 투입이 불가피한데 모두 하나같이 임상의들이 진료시간을 쪼개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다 보니 수천편에 이르는 논문을 검색하고, 또 신뢰성을 얻기 위한 방법론에 따라 그 과정과 근거를 모두 일일이 기록해야 한다. 이러한 시스템은 진료뿐만 아니라 지침의 질적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국내 임상의들이 해외 임상의들과 달리 하루에 수많은 환자를 봐야 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국내 보험 체계에 맞는 내용도 넣어줘야

따라서 전문가들은 임상의들이 지침을 개발하는 것은 맞지만 질적 향상을 위해서는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게다가 단일보험체계에 맞는 지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끊임없이 나온다.

지침은 근거중심으로 개발하는 것이지, 보험이 되는지 여부에 대한 것이 아니기는 하지만 1차 임상의들의 관심과 적용 확대를 위해서는 필요하다.

우리나라 1차 임상의들이 학회가 만든 지침에 관심이 없는 대표적인 이유는 급여와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당뇨병 환자를 치료하는 데 지침에서는 3개월에 한 번씩 당화혈색소를 측정하라고 권고하는데 보험은 그보다 더 긴 6개월을 인정하고 있다면 현실적으로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이다.

김 정책이사는 "지침을 개발하는 사람들은 이론적 근거중심으로 방법론에 따라 제정하지만 막상 실제 쓰는 사람은 보험이 되는지 여부를 보니까 현실적인 적용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국내 지침의 활용도를 높이려면 국제적 지침 기준에 부합하면서도 국내 보험급여 실정에 맞는 내용도 포함돼야 한다는 것이다.

잘 만들었다면 교육과 홍보에도 힘써야

잘 만들어진 가이드라인에 따라서 보험정책도 움직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기껏 만들고 알리지 못하니 답답 학회 예산 여력 없어 홍보 부족 지침 포털 정보센터기관 필요 마지막으로는 교육과 보급의 문제다.

잘 만들어진 지침이라면 널리 사용돼야 마땅하지만 아직 활용도가 높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이 부분에서 가장 큰 문제는 교육과 보급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 주도 지침의 경우는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이다.

많은 정부예산이 들어간 만큼 활용도가 높아야 하므로 이에 대한 예산도 마련돼 있는 반면, 학회 주도 지침은 이 부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학계주도 지침의 경우 홍보가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개발단계에서 인력, 비용, 시간을 모두 소비했기 때문에 최종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시행, 보급, 확산에 집중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때문에 대부분 홈페이지나 이메일을 통해 알려주고 있으며, 적극적인 홍보활동은 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 학회는 지침을 책자로 만들어 판매하면서 학회 수익을 충당하고 있다.

김 정책이사는 “지침을 만든 주체가 홍보와 보급을 해야 하는 것이 맞다”면서도 “하지만 제정하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평가 홍보 보급 등 정보센터의 역할까지 하라고 하면 정말 쉽지 않다. 이런 부분에서 제도적 뒷받침이 절실하다.

독립된 시스템이 마련돼야 할 때가 됐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학계가 지침을 만들었다면 이를 적극적으로 홍보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줄 필요도 있다. 결국은 여러 요소가 체인처럼 연결돼야 지침의 활용도가 높고, 갈수록 더 업그레이드된 지침이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지침정보 한곳에 모은 포털 필요 정부지원 필요 

여기에는 정부 지원도 포함돼야 한다. 이를 위해 선행작업도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지침이 얼마나 되는지는 대한의학회도, 정부도 모른다. 지침포털사이트가 구축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정보센터를 통해 지침포털이 있다. 지원도 가능하다. 

우리나라도 정보센터 같은 기관을 두면 질적 향상을 도모할 수 있을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질병관리본부와 대한의학회가 일차 의료용 임상지침을 개발하고 있다.

지금까지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등 세 가지가 나와 있으며, 외국처럼 의료인, 환자용이 모두 따로 구별돼 있다. 요약정보도 각각 따로 제작해 현실적인 적용에 중점을 맞췄다. 전문가들은 완벽하다고는 볼 수 없지만 가장 활용도가 높은 지침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대한의학회 이윤성 회장은 “국내 지침이 양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질적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국내 지침도 세계적인 지침이 사용하고 있는 방법론적 기술을 따르고, 아울러 다학제적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대한의학회도 인증에 대한 기준을 강화하는 한편 제정에 대한 정기적인 교육도 강화할 예정이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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