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대한민국에 스며든 '백신찬반' 논란

 

일부에서 백신접종을 거부하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이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백신은 인류의 삶을 변화시킨 가장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다. 최초의 백신으로서 1796년 영국의 의학자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가 개발한 우두접종법은 세계 인류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천연두를 박멸시킴으로써 수많은 생명을 살려냈다.

콜레라, 결핵, 소아마비 등 이렇다 할 치료법이 없었던 여러 종류의 감염병 발생을 현저히 감소시킨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통해 예방접종 대상 감염병 17종과 그에 대한 실시기준 및 방법을 정해 권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의학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에이즈나 암 같은 질환으로까지 활용 범위가 확장되는 추세. 

하지만 모든 약이 그렇듯 백신도 부작용 논란으로부터 자유롭진 못한데, 서구에선 1800년대 백신접종반대운동에 기원하는 찬반논란이 지난한 싸움을 이어오는 중이다. 근래 와선 백신접종이 자폐증, 아토피, 경련 등을 유발한다는 구체적인 주장도 제기된다.

비교적 무풍지대였던 우리나라도 최근에는 메르스(MERS), C형간염 집단발병 사태의 여파로 병원을 기피하는 경향이 짙어지면서 일부 부모들을 중심으로 '무접종', '지연접종'이 확산되는 중이다.

에볼라, 메르스 같은 신종감염병이 기승을 부리는 요즘 안전한 예방접종을 위한 현명한 조언은 무엇일까


도입부터 시끄러웠던 '백신논란' 미국서 격돌

백신 찬반논란은 생각보다 역사가 길다. 지금이야 '세기의 발명품', '인류를 진화시킨 발명품'으로 추대받지만 우두접종이 도입되던 1700년대 당시에는 논란 덩어리였다.

 

백신 개념이 일반화 되지 않았던 시절, 천연두를 앓은 사람이나 우두를 앓은 소의 고름에서 얻은 물질을 처리해 건강한 사람에게 투약하는행위가 쉽사리 받아들여지긴 힘들었을 터. 천연두 접종을 의무화 한다는 유럽 일부 국가들의 정책 결정이 도리어 국민들의 반발을 산 것이다.

백신접종의 득과 실에 관한 세기의 싸움이 계속되던 중,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영국의 대장외과 전문의 Andrew Wakefield의 논문(Lancet 1998;351:637-41)은 논란을 재점화 시켰다.

홍역, 볼거리, 풍진을 복합한 MMR 백신을 투여 받은 소아 12명에게서 자폐증 관련 증상과 염증성 대장염이 발병했다는 논문은 10여 년만에 조작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막을 내렸지만, 일각에서는 여전히 MMR 백신 제조사의 이권개입 여부를 둘러싸고 의혹이 제기된다.

백신접종이 많아질수록 자폐증과 언어장애가 증가한다거나(J Toxicol Environ Health A 2011;74:903-16) 1890년 대 후반 전 세계적으로 자폐증이 크게 증가한 원인이 백신 대량접종 때문이라는 지적(Am J Psychiatry 2011;168:904-12)도 나오는데, 그 외 다발경화증 등 자가면역질환이나 경련유발, 밝혀지지 않은 유전자조작 백신의 위험성도 문제시 되고 있다.

이러한 대립구도가 가장 첨예하게 나타나는 지역은 미국이다. 지난해 말 디즈니랜드에서 발생한 홍역 집단감염은 미국의 낮은 백신접종률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일명 디즈니랜드발(發) 홍역이 14개주로 확산되며 전국 단위로 기승을 부리자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나서 "홍역 백신 주사를 맞지 않으면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건강도 위험에 빠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주의를 주기도 했다.

몇달 전 캘리포니아주에서 학교백신법을 강화하고 백신접종을 의무화 한 것도 그러한 논란의 산물인 셈이다.


국내선 '병원불신' 타고 안티백신 세력 확대

우리나라에도 물론 백신접종을 반대하는 이들이 있다. 문제는 전문가에 의한 의학적인 근거보다는 교양서적이나 인터넷 커뮤니티에 의존하는 사례가 많다는 점.

일례로 2006년 창립한 시민단체 '안전한 예방접종을 위한 모임'은 백신에 관한 정보와 의료소비자의 접종선택권을 알린다는 취지로 설립됐지만, 취학아동의 필수예방접종을 피하는 방법이 공유되는 등 홈페이지가 일부 안티백신 세력의 활동공간으로 악용돼 논란이 일었다.

전문가들은 "백신의 부작용을 알린다는 명목 아래 백신이 마치 모든 사람에게 장애를 유발하는 것 같은 인식을 제공함으로써, 지나친 공포감이 조성되는 것도 큰 일"이라고 지적한다.

'자연출산 가족모임', '약 안쓰고 우리 아이 키우기' 등 육아관련 인터넷 까페에서는 접종지연 소견서를 써준다는 병원이나 예방접종을 권유 받았을 때 대응하는 법 등의 정보가 오가는데, 심지어는 '수두파티', '수두분양'이라고 해서 '수두 면역력'을 길러주기 위해 일부러 수두에 걸린 아이들과 어울려 놀게 한다는 부모들도 있다.

이미 수년 전 미국에서 사회적 문제로 떠올라 질병통제예방센터(CDC)로부터 공식적인 경고조치까지 받았던 내용이 뒤늦게 국내에 돌고 있는 것이다.


"백신 효과·안전성 이미 충분해"

▲ 황희진 교수

가톨릭관동의대 황희진 교수(국제성모병원 가정의학과)는 "일부 환자에게 백신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부작용 때문에 백신을 접종하지 말자는 것은 말도 안되는 논리"라고 잘라 말한다.

백신접종으로 인해 개인에게 부작용이 생길 확률과 무접종으로 발생할 수 있는 국가적 손해를 따져봤을 때, 이는 비교할 가치조차 없다는 얘기다. 백신의 효용성 및 안전성 역시 기존 수많은 연구들을 통해 증명된 만큼 더이상의 논란은 불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황 교수는 "스스로 의사를 결정할 수 있는 지적수준이나 경제력이 없는 18세 미만의 아이에게 부모라는 이유로 국가가 보장한 권리를 박탈해도 되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인터넷상의 잘못된 정보에 현혹되지 말고 반드시 전문의와 상의할 것"을 권했다.

대한소아감염학회 김기환 홍보이사(연세의대 소아청소년과)는 "병원체에 취약한 소아 연령에서 감염성 질환을 예방하고, 면역력을 획득할 수 있는 실질적인 수단은 예방접종이 유일하다"고 강조했다.

▲ 김기환 교수

감염원의 차단이나 살균소독 같이 일차적인 위생개선도 감염관리에 필요하지만, 이같은 방식으로 거대한 사회구조를 개선하기에는 오랜 시간과 막대한 경제적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예방접종의 효과를 극대화 하려면 백신접종률을 95% 이상 유지시켜 사람과 사람간의 자연감염을 차단하고, 각 질환별로 역학연구에 근거한 적절한 예방접종 정책을 활용해야만 한다.

김 이사는 "국내 환자들에 맞는 안전한 접종법을 정립하고, 예방백신이 없었던 감염질환에 대해서도 새로운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 학회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며, "예방접종의 효과, 안정성 등에 관한 정책적 연구와 감염병 관련 역학연구 결과를 토대로 소아청소년뿐 아니라 전 국민을 감염병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내는 데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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