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장관서 시골의사로
`병 말고 사람 고쳐라` 이제야 깨달은 진리

경기도립 이천병원으로 금빛 나들이




"의료를 위해 이 한몸 바치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시작한 건 절대 아냐, 이 나이에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걸 뭐, 국회의원 시절의 박윤형 원장과의 인연에다 손학규 경기자사 까지…."
 주양자 전 복지부장관은 박윤형 경기도립의료원장의 제안으로 1년 반째 공석이었던 도립의료원 이천병원 이비인후과에서 제2의 의사 인생을 살고 있다.
 간호사 한명과 단 둘이서 이비인후과 전체를 책임지고 있는 주 전장관은 대한민국 보건의료행정의 총수에서 한적한 지방의료원에서 굳은살 박힌 농촌환자를 돌보는 시골의사로 보람있는 하루하루를 눈코뜰 새 없이 음미하고 있다.
 "고마운 마음에 단감 몇개, 쌍화탕 한 통 들고와서는 쑥쓰러워 전해주지도 못하고 간호사에게 맡기고 도망치듯 돌아가는 환자들을 볼때면 가슴 한구석이 따뜻해져요. 30년 넘게 진료하면서 환자들에게 이것저것 많이 받아봤지만 요즘처럼 감동적일 때는 없었다니까, 왜 고생을 사서하냐고 지금까지도 말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뭘 모르고 하는 소리들이지."
 풍부한 지원이 이뤄지지 못하는 병원 사정상 사비 털 일도 가끔 있다며 싫은 내색이 아닌 불평(?)을 하면서도 외국인노동자 무료진료에까지 손을 뻗쳤다. "장관시절에도 못느꼈던 감동을 이제야 느낍니다. 학창시절 `병`이 아니라 `사람`을 치료해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었는데, 그 말의 의미를 이제 알겠어요. 가운안에 `로봇`이 아니라 `사람`이 들어가야 한다고 배우고 가르쳤는데 정작 나 스스로가 그러지 못했던 것 같네요."
 국립의료원장과 보험공단 이사장, 14·15대 국회의원, 복지부장관 등등을 역임, 언제나 여의사로 첫번째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던 주 전장관. 그의 오늘은 소박한 시골병원 이비인후과 의사, 20년만에 다시 환자와 마주 앉은 의사로서의 새 삶을 대하는 감회도 남다를 것 같은데. "의사라고 하면 흔히 돈과 연관짓는 경향이 너무 강해. 실제는 전혀 안그렇거든. 자신의 일에만 몰두하는 경향 때문 아닐까? 이제는 바꿔야 합니다. 사회 속의 의사로, 국민과 함께 할 수 있는 의사가 돼야 해요. 그래야 의사로서의 정체성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해."
 의약분업이나 약대 6년제, 의학전문대학원 등 의료계 관련 사안에 있어서도 융통성을 갖고 `약게` 굴자고 강조한다.
 특히 양·한방 협진 문제를 대하는 태도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무조건 반대할 일만은 아닙니다. 한방에도 보험이 적용되고 있지 않습니까? 국가와 국민이 인정하는 것은 분명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양·한방이 협진하면 국내 의료가 세계 최고 수준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좋은 것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그 안에서 우리 의사와 의료의 입지를 제대로 세우려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또한, 주 전장관은 넓은 시야와 함께 약간은 정치적이어야 한다고 덧붙인다. "국민이 정책을 리드하는 세상에서 진료에만 몰두해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어요. 의사가 주체가 되어 청원도 하고 모르면 묻기도 하면서 주도해 나가야 합니다"라고 강조하며 경험많은 `원로`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을 주문했다. 의료계는 물론이고 정·재계 등 다양한 경력을 가진 원로들의 연륜은 큰 힘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의료계 안팎이 이렇게 시끄러운데 뭘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묻는 이가 하나도 없어, 나한테만 그런건가 해서 다른 선생님들께 여쭤봐도 없다고 하네. 그러니 맨날 지는거지." 아쉬움이 배어있었다.
 "요즘의 화·목요일은 행복해. 박사님 보러 택시타고 왔다며 멀리서들 찾아와. 어제는 50명을 봤어. 병원 환자도 늘고 택시 기사도 병원 오는 환자가 많다며 좋아들 해."
 방을 나서며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는 어떤 광고의 멘트가 문득 떠올랐다.
최은미 기자 emchoi@kimsonline.co.kr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