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트레이닝 시간 턱없이 부족" vs 전공의 "병원 근본적 인식 바꿔야"

▲ 전공의 수련환경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된 주당 80시간 근무 수련규칙이 시행되면서 '출퇴근 하는 전공의' 시대가 현실화되고 있다. 일선 병원계에서는 인력 부족으로 인한 고충을 호소하지만 전공의들의 반응은 일단 합격점이다.

서울 K대병원 내과 1년차 김 아무개 전공의의 정규 근무시간은 평일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다. 30분에서 1시간 정도 일찍 나와 환자 인수인계 정보를 받는다. 야간당직을 서는 날은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일하고 집에 돌아가 휴식을 취한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이 병원 내과의국에 '출퇴근'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상황이 달라진 것은 병원이 수련근무 지침 매뉴얼을 본격 적용한 올해 3월부터다.

이는 지난해 4월 보건복지부가 '전문의 수련 및 자격 인정 등에 관한 개정령'에 따라 6월 1일부터 각 수련병원이 개선조치 항목과 수련시간 계층방법을 제출하도록 의무화한 데 따른 것이다.

당시 복지부는 △주당 수련시간 80시간 초과 금지 △연속 수련시간 36시간 초과 금지(응급상황 시 40시간까지 가능) △응급실 수련 시 최대 12시간 근무 후 12시간 휴식 △당직일수 최대 주 3일 △수련 휴식시간 최소 10시간 △휴일 주당 최소 1일(24시간) △연간 14일 휴일 보장 등의 조치항목을 제시했다.

수련규칙이 시행된지 1년 6개월여가 지난 현재, 병원 분위기와 과 특성에 따라 개선 속도는 다르지만 곳곳에서 변화는 감지되고 있다. 본지는 최근 위기가 심화된 내과를 중심으로 전공의 수련규칙 시행 이후 달라진 풍속도를 조명했다. 교수진과 전공의들의 온도차는 확연했다. 

"무리하게 규칙 적용하다 환자•보호자 혼선”

"정부 가이드라인대로 하니 문제가 너무 많아요. 트레이닝이 제대로 될지 걱정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전공의들이 환자 파악도 안 되는 상태로 오후면 퇴근하니… 정작 교수들은 병원에 있는데 말이죠."

K대병원 내과과장 A교수의 말이다. 이 병원에서는 자체 근무 지침 매뉴얼에 따라 1~2년차 전공의는 병실환자를 위주로 보고 3년차가 중환자, 4년차가 응급실을 맡는다. 상급자의 휴가 등 사정에 따라 1~2년차가 중환자실이나 응급실 근무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던 중 지난 7월초 1년차 전공의 세 명이 한꺼번에 사직을 통보했다. 개인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응급실 당직을 서기 부담된다는 게 주된 사유였다.

해당 전공의들은 "전공의 모집 공고를 낼 때만 해도 응급실 당직근무가 없다고 했는데 실제 근무환경은 달랐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선배 전공의와 교수들의 설득으로 한 명은 병원에 남기로 했지만, 갑작스런 두 명의 공백에 지도전문의와 남은 전공의들의 부담이 더해졌다. 교수들은 충격에 빠졌다.

본지가 입수한 K대병원 내과의국의 '당직제 개선방안'을 보면 이러한 고민이 그대로 묻어있다.

자료에서 과장은 '전공의가 업무 시간내에 입원환자 관련 업무를 모두 마무리할 수 있도록 회진시간을 조정'하고, '응급 시술시 당직 전공의 외에 간호사와 기사를 항상 참여시켜 전공의가 환자 관리에 집중할 수 있도록' 거듭 주지시키고 있다[아래 표 참조].

주당 80시간 근무라는 상한선을 지키기 위해 병원 차원에서도 시스템상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한계가 분명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교수는 "내과가 없으면 병원이 돌아가지 않는데, 무리하게 규칙을 적용하다보니 환자를 돌보는데 혼선이 생기고 있다. 환자 보호자들이 퇴근하고 병원에 와서 설명 듣고 싶어하면 낮에 근무하던 전공의는 퇴근한 상태"라며 "제한된 전공의수로 당직표를 짜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K대병원 내과 교수회의에 배포된 '신 당직제 개선방안' 일부 발췌 내용

1. 전공의 업무시간 내 입원환자 관련 업무를 모두 마무리 할 수 있도록 모든 교수에게 다시 한 번 주지시키고 동의를 구해야 함.

2. 평일 근무시간을 축소하고 대신 토요일 정규 근무시간을 편성해 회진을 포함한 입원환자 관리 충실도를 높이도록 함.

3. 응급시술 시 당직 전공의 외에 당직 간호사와 기사가 항상 참여할 수 있게 해 응급시술의 질을 향상시키고 당직 전공의가 환자 관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함.

…(후략)
 

지방병원 내과 전공의 응급실 철수 사태까지

상황이 이렇다보니 응급의료센터에 내과의사를 배치하지 않는 병원도 생기고 있다.

모 병원 전공의 B씨는 "80시간 근무제가 적용되고 나서 응급실에 상주하던 내과 담당 전공의는 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지난해 11월 내과 전공의 1년차들이 병원 측에 수련환경 개선을 대대적으로 요구해 화제가 된 지방 소재 S대학병원이 대표적인 예다.

본지 확인결과 S대학병원은 전공의들이 시스템 개편을 요구한 직후인 그해 12월부터 주중 응급실 당직명단에서 내과 전공의를 뺀 것으로 전해졌다. 추가 채용한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그 자리를 대신하면서 올해 1월부터는 응급실에 상주하는 내과의사가 없게 됐다.

S병원 관계자는 "환자는 많고, 주당 80시간 전공의를 근무시키면 전문의를 채용해야 하는데, 뽑으려고 해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면서 "어차피 한정된 인력에서 법으로 이런 규칙을 강제해야만 하느냐고 울분을 토하는 교수들도 많다"고 말했다.

수련과정이 고되기로 소문난 외과계열의 사정은 더욱 좋지 않다.

J대병원 성형외과는 이행이 강제된 수련규칙을 무시하고 연차별 업무분담에 극심한 차등을 고수하고 있다. 이 병원 전공의는 "1년차의 경우 주 6일 당직을 서서 집에 못가지만 큰 불만은 없다"면서 "2년차부터는 숨통이 트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C대학병원 외과와 신경외과에서는 수련규칙이 나오고 나서 연속당직을 서고도 당직표에 이름을 올리지 못해 속앓이를 하는 경우가 다반사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일선 대학병원 응급의학과들은 온•오프 구분이 명확한 과 특성상 수련규칙이 비교적 순조롭게 지켜지는 분위기다.

서울 모대학병원 4년차 전공의 C씨는 "3, 4년차가 조금만 고생하면 규칙은 충분히 지킬 수 있다. 모든 연차가 동일하게 여름휴가 1주, 겨울휴가 2주를 가도록 하고 있다"며 "12시간 일하면 24시간을 쉴 수 있어 낮은 연차 전공의나 인턴들이 많이 편해졌다"고 말했다.

Y대학병원 2년차 전공의 D씨 또한 "80시간에 거의 맞춘다. 응급의학과는 다른 과와는 다르게 밤 근무 위주로 80시간을 채우는 특수성이 있다"고 설명하면서 "밤에 힘들게 일하고 낮 휴식시간을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방식으로 원만하게 지켜지고 있는 편"이라고 전했다.

대전협 “주당 80시간 부족하다고?…말도 안돼”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전공의들이 주당 80시간 안에 제대로 된 수련을 받기 위해서는 병원들의 인식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장기적으로는 수련 프로그램을 내실 있게 표준화해 전공의들이 소속 병원에 따라 상이한 교육을 받거나, 가혹한 수련환경에 노출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전협 조영대 정책이사(경찰병원 가정의학과3)는 "주당 평균 80시간이라고 하면 2~3일 당직을 포함하는 것인데 이것도 부족하다면 근본적인 인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면서 "대전협은 80시간 근무가 최대치라고 본다"고 못 박았다.

조 이사는 "수련 프로그램 자체가 표준화 돼있지 않아 병원이나 과마다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각 학회별 지침이 있긴 하지만 그것을 실제 집행하는 병원이나 교실 입장에서는 사실상 지도전문의 진료 위주로 돌아가는 측면이 크다"면서 표준화 필요성을 언급했다.

보건복지부는 주당 80시간 근무로 대표되는 전공의 수련지침이 이미 법령으로 규정돼 있는 만큼 일선 의료기관들의 철저한 준수를 당부하고 나섰다.

임을기 의료자원과장은 "일부 병원에서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을 고려하고 있지만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되는 사항이 아니다. 병원신임평가에 반영한다고 최근에도 공고했고 꾸준히 결과를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가장 안 좋은 게 허위로 당직표를 작성한다든지 꾸며내는 것"이라며 "그런 병원 한 곳 때문에 병원계 전체가 신뢰를 잃을 수 있다. 적발되면 분명한 패널티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