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이슈 토론
반복되는 전공의 폭행 해법 없나?

 

 



메디칼업저버 기자들이 반복되는 전공의 폭행 해법을 주제로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누고 있다. 사진·고민수 기자 의료인이란 의료법 제2조 제1항에 의거 보건복지부장관의 면허를 받은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조산사, 간호사가 해당된다. 또 이들의 터전이 되는 의료기관은 공중 또는 특정 다수인을 위해 의료·조산의 업을 하는 곳으로 정의 내려진다. 하지만 국가 공중보건의 첨병 역할을 하는 이들 병원에는 오래전부터 불미스러운 사건 사고들이 빈번히 발생했다. 특히 대중매체를 간간이 달군 폭언과 폭행사건 소식은 그 사태가 심각한 수준. 조사에 따르면 국내 의료인 137만여 명 가운데 약 110만명, 즉 80%가 폭언 또는 폭행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그중 전공의 피해사례는 이미 도를 넘어선 것으로 보고됐다. 현재 우리나라 전공의 폭행 사고 실태를 들여다보고 개선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를 가졌다.
 
폭행 사건 의국원들 사이엔 '쉬쉬'
처벌도 솜방망이 징계뿐
의료계 특유의 폐쇄성도 문제

수련병원 평가체계 구축 필요
폭행 가해자 엄벌하고
윤리교육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 원종혁(사회): 병원 내 전공의 폭행 사고 실태는 이미 심각한 상황이다. 폭행도 문제지만 사건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은 반드시 짚어야 할 부분이다.

그래픽·김정은 편집기자
▶ 고신정: 일례로 지난 10월 8일 열린 복지부 종합국감에서 길병원 전공의 폭행사건 피해자 전공의가 참석하면서 대외적으로 이슈가 됐다. 사건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2012년 길병원에서 수련을 받던 여성 전공의 A씨는 일을 못한다는 이유 등으로 선배 전공의 B씨에게 10개월 여간 "XX 같은 X, 씨XX" 등의 폭언과 폭행, 무릎 꿇고 손 들기 식의 체벌, 반복적인 반성문 쓰기 등의 가혹행위에 시달렸다. 폭언 수위도 상당히 높았을 뿐더러, 체벌 역시 인격모독 수준이어서 파장이 일었다.

▶ 원종혁: 당시 병원 쪽 대응은 어땠나?

▶ 고신정: 굉장히 미흡했다는 평이다. 사건이 불거진 뒤 병원은 징계위원회를 열어 B씨를 해임했지만, B씨는 41일 만에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다. 결국 피해자 전공의는 가해자 선배 B씨가 복귀하면서 병원을 그만뒀다. 국감 이후 병원신임평과위원회가 가해자에 대한 수련을 중단시켰다. 병원도 이를 받아들여 해당 전공의는 내년 1월 시행되는 전문의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이 박탈됐다. 사건 관련 교수들도 감봉 조치됐다.

박상준: 이번 길병원 사태를 보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폭행 사건의 본질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다. 이미 고질적인 문제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길병원뿐만 아니라 수련병원 대부분이 그렇다. 앞서 언급됐듯이, 국감 이후 해당 전공의 시험 자격 박탈 등의 조치가 취해졌지만, 결국 전공의을 포함한 의료인 폭행이 생각보다 만성화됐다는게 가장 큰 문제다.

박선재: 병원 내부적인 시스템도 변화가 필요하다. 타기관 전문가들도 수련병원이 문제라는 반응이 대다수다. 전공의들에게 업무량을 편중시켜 구조적 폭력이 원인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병원 운영을 위해 전공의들에게 분배되는 과도한 업무부담 형식의 시스템 개선이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원종혁: 타과에 비해 정형외과가 폭언 및 폭행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안다.

안경진: 실제로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실시한 전공의 근무환경 및 건강 실태를 조사한 결과만 봐도 알수 있다. 교수나 선임 전공의에 의한 폭행은 주당 100시간 이상 근무하는 업무강도가 높은 과에서 주로 발생했다. 특히 정형외과가 업무량이 제일 많았는데, 올해 기준으로 1년차는 주당 평균 134시간 일한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이 역시 빙산의 일각이라는 반응이다.

김지섭: 다른 과에 비해 정형외과는 여성 인턴이 흔하지 않고, 군대식 교육으로도 유명하다. 또 인턴을 거친 후 1년차가 되면 하루에 몇 시간 못잘 정도로 엄청난 업무량을 소화해야 한다고 한다. 병원 시스템이 열악할수록 그 심각성은 더하다. 대전협에서 이야기하는 근무환경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다.

원종혁: 열악한 근무환경 이외에 전공의 폭행 사건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무엇을 꼽을 수 있나?

이은빈: 의료계 특유의 폐쇄성도 짚고 넘어갈 문제다. 의대 입학 후부터 동일한 학과 교수 및 학생들과 오랜 시간을 지내면서 관계적인 특수성이나 폐쇄성이 나타난다. 실례로 J대병원 재활의학과의 경우 굉장히 악명 높은 교수가 있었다. A 교수는 재활의학과가 생길 때부터 소위 제왕처럼 군림했다고 한다. 교묘한 방식으로 전공의를 괴롭히는 한편 회진은 연 10회 미만으로 돌고, 전공의들에게 인격적인 모독을 서슴치 않고 학술대회 대리 출석도 요구했다.

이상돈: 의대 교육과정 자체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미 의대 교육과정에서부터 폭언·폭력이 비일비재한 것으로 안다. 의대 6년 교육은 아직도 '학문의 내리배움'이라는 도제식 교육 비중이 크기 때문에 정작 선배에게 폭행을 당해도 쉬쉬하는 분위기다. 적극적인 반발이 되레 화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점차 변화하고 있다. 이제는 불합리한 상황 등이 소셜네트워크 등을 통해 공유되면서 의료계의 폭력적인 관행이 서슴없이 공개되고 있다. 이러한 추세라면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본다.

원종혁: 인식 개선을 위한 제도적인 변화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박미라: 도제식 교육이라는 명분 아래 인턴, 전공의, 레지던트들에게 행해지는 폭력이 당연시되고 있다. 의료진을 대상으로 한 윤리 및 도덕 교육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시간을 담보로 해야겠지만 교육이 폭력을 방지할 수 있는 최선책이라고 생각한다. 교육이 바탕이 돼야 제도적 개선에 효율적인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박상준: 폭행 가해자에 대한 법적 조치 역시 명확하게 이뤄져야 한다. 그동안 병협을 비롯한 각 유관단체가 방관적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면 이제는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고신정: 복지부를 비롯한 외부 기관들의 개입도 필요해 보인다. 이번 길병원 사태도 문제가 심각해지자 결국 복지부가 직접 나섰다. 복지부는 이번 사태 이후 수련병원의 폭력예방과 폭력방지위원회 등 대체시스템 대한 평가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특히 전공의 관리 시스템을 정비하겠다고 밝혔는데, 중도퇴직자 발생 시 그 사유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원종혁: 전공의 폭행 사건이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해외의 경우 어떻게 문제를 풀어가나?

임세형: 가장 모범적인 의료시스템을 갖춘 것으로 알려진 미국도 의료진의 폭언·폭행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실제로 미국 내 전공의들은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 위험도가 다른 전문직보다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은 이 같은 문제를 병원 내부에서 찾았다. 폭력 사건이 발생하게 된 원인을 면밀히 찾고 가해자를 엄벌하는 등의 형식으로 과정이 진행된다. 우리나라도 궁극적인 해결방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은빈: 현재 대전협에서도 자체적인 수련병원 온라인 평가를 구축하고 있다. 물론 익명은 보장된다. 수련과정과 병원 분위기가 가혹하다고 소문난 병원을 공개해 인턴 지원에도 영향을 주는 등 다각적인 방법을 모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기적인 관점에선 앞서 언급된 윤리 교육의 강화도 필수다. 서울의대와 고려의대가 의료인문학 커리큘럼을 늘려 의료인의 윤리의식 강화을 제고하는 데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박상준: 첨언을 하자면 병원 내 반복되는 폭력사태로 인해 전공의 수가 줄어들면, 결과적으로 의료의 질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당연히 병원을 찾는 환자 역시 감소해 병원 수익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다. 병원이 이 같은 심각성을 알아야 한다. 때문에 각기 병원마다 사정에 맞는 매뉴얼 등을 개발해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길만이 폭력을 예방하는 길이 될 수 있다.

이현주: 이와 관련 대전협에서 병원 내 폭력에 대처하는 일명 '폭력대응매뉴얼'을 제작해 작년 배포한 적이 있다. 진술서를 어떻게 작성하는지부터 신고하는 법 등 일련의 프로세스가 상세히 담겨 있다. 아울러 콜센터를 개설해 병원 내에서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부분을 직접 털어놓을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수련과정에 세부적인 운영방안들이 다양하게 개발될 필요가 있다. 단 실효성은 담보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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