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과 전공의 지원율 100%에서 87%로 ‘뚝’…“세상에 이럴 수가” 병원들 당혹

 

내과에 빨간불이 켜졌다. 흉부외과나 비뇨기과 등이 전공의 정원 미달로 고생할 때 남의 집에 붙은 불인 줄로만 알았는데 1~2년 사이 내과로 옮겨 붙은 것이다. 대학병원의 내과 교수들은 전공의 모집에 어려움을 겪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는 반응이다.

내과는 그야말로 메이저과로 지난 2014년까지만 해도 전공의 모집이 100%에 가까울 정도였다. 내과의 지난 시절 전공의 확보율은 2011년 99.9%, 2012년 100%, 2013년 99.3%였다. 흉부외과 등이 전공의 모집 미달로 아우성을 외칠 때도 나름 느긋한 상황이었다.

현장에서의 미진이 지표로 나타난 것은 올해부터다. 매년 100%에 가깝던 전공의 확보율이 87.4%로 급락했다. 하반기 상황은 더 나빠졌다.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전공의 모집에 실패했다. 가톨릭중앙의료원은 4명 모집에 1명이 지원했고, 부산대병원은 6명 모집에 1명의 지원자도 받지 못했으며, 순천향대 천안병원, 경북대병원, 전남대병원, 전북대병원, 충북대병원 등도 단 1명의 지원자를 받지 못했다. 

대학병원들 인턴 마음 잡기 분주, 내과학회, 수련기간 단축 대안으로

전공의 지원율 급락 원인은

내과가 외면받는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전문가들은 저수가로 인해 '개원해도 먹고 살 수 없을 것'이라는 위기감과 의대교육의 문제, 편하고 쉬운 것만 찾는 젊은층의 생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 입을 모은다.

저수가는 문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이명희 대한개원내과의사회장은 "2013년 현재 내시경 수가 검사비용 4만 3490원이고, 조직검사 비용은 숫자와 상관없이 8370원으로 고정됐다"며 "의료계 차원에서 내시경 원가계산을 해 본 결과, 8만원이 넘어, 수가가 원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셈이다. 미국처럼 100만원은 못 줘도 어느 정도 현실은 감안해줘야 한다"고 토로했다.

또 "개원을 하는 의사들이 이미 자리를 잡은 선배들과 경쟁해 이길 확률은 낮다"며 "몇 년 전 만해도 검진센터나 요양병원 등에서 내과 의사의 수요가 있었지만 지금은 포화상태다. 한마디로 내과의사가 갈 곳이 없어졌다"고 호소했다.

고대병원 한 내과 교수는 "젊은 의사들이 내과의사로서 박탈감 비슷한 걸 많이 느끼는 것 같다. 나가서 돈을 잘 버는 것도 아니고 고생만 한다는 인식. 어려운 수련을 받고 그런 대우를 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며 "임상의학의 기초가 되는 내과가 이렇게 흔들려선 안 된다"고 안타까워했다.

의학교육이 잘못됐다고 꼬집는 의견도 있다. 한 대학병원 부원장은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옛날처럼 명예와 의무만을 강조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이 부분도 중요하다"며 "선배들이 의사란 무엇이고, 환자와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 등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에 소홀했다"고 토로했다.

“수가도 수가지만 젊은 의사들의 가치관도 문제”

일각에서는 요즘 젊은 의사들의 생각을 꼬집기도 한다. 보험정책이나 수가 등에 대해 너무 예민하게 반응해 영상의학과에 몰렸다, 마취통증의학과에 집중됐다를 반복한다는 것이다. 의사라는 직업을 아무런 철학적 기반 없이 무조건 돈과 연결한다는 지적이다.

경희대병원의 한 관계자는 "의술이 아닌 의학에 정진할 수 있는 사람을 잘 키워야 한다. 실제로 내과에서 할 일이 많다"며 "지금 의료계 현실은 의사 면허만 따면 강남 피부과에서 1~2년 일하다 시술해서 돈 벌겠다는 사람만 넘쳐난다. 의학은 없어지고 의술만 남았다"고 꼬집었다.
교수들 팔 걷어붙이고 인턴 모시기

▲ 인기가 추락한 내과는 전공의 모집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해도 대학병원의 내과교수들은 비상이다. 지난해 심한 타격을 입은 병원들은 전공의 모집에 사활을 걸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고대안암병원 한 관계자는 "1~2년 전부터 위기감이 팽배했다"며 "매년 8월 말~9월초 예비지원을 받는데, 내부 순환 인턴 중에서 아무도 지원하지 않았고, 2차 지원 때 1명이 지원했다"고 말했다. 또 "내과 정원은 안암 9명, 구로 8명, 안산 5명인데 3차 모집 전에 서둘러 외부 공고를 내면서 올해부터 달라지는 수련환경 개선 프로그램 등을 적극 홍보해 겨우 정원을 넘겼다"고 말했다.

5명 모집에 한 명도 뽑지 못했던 순천향대 천안병원은 여전히 그 공백을 메우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순천향대 천안병원 한 관계자는 "전공의를 뽑지 못해 그 자리를 스탭들이나 호스피탈리스트들로 운영하고 있지만 어려움이 있다"며 "내년에는 7명 정도 모집할 예정인데 현재 상황은 7명을 채워놨지만 다른 병원에서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면 아마도 옮겨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아주대병원도 비상인 상태. 9명 중 3명 정도가 확보돼 교수들이 비상대책회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공의를 확보하려는 교수들의 노력도 치열하다. 순천향대 서울병원은 인턴들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진행하고, 각 진료과를 소개하는 행사를 진행하는 등 내과 알리기에 나섰다. 한양대병원도 의국 분위기와 내과 비전 제시, 주 48시간 수련시간 지키기 등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고대안암병원은 지난 7월 30일 내과 전체 교수 40여 명이 모여 워크숍을 진행했다. 워크숍에 참여한 한 교수는 "어떻게 위기를 넘겨야 할지, 어떻게 우수한 전공의를 트레이닝할 수 있을지 등을 집중 토의했다"며 "전공의 대상 설문조사 결과도 리뷰하고 내부 설명회도 열고, 전국 대상 모집공고 등 홍보활동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경희대병원도 종합병원 수련과장, 대학병원 주임교수가 모여 내과학회 전체회의를 진행했다.

많은 대학병원이 전공의를 확보하려고 수련과정을 현실적인 이익이 있도록 손을 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대안암병원은 심장초음파와 내시경, 복부 초음파 교육과정을 4년차 때 배울 수 있도록 개편했다. 순천향대 서울병원도 연차별로 개원해 활용할 수 있는 초음파와 내시경 등의 트레이닝 과정을 강화하고 있다.

경희대병원 한 교수는 "우리 병원도 최신 초음파 기기를 구입해 동문 중에서 병원을 잘 운영하고 초음파 진단을 잘 하는 원장에게 요청해 시연하는 등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며 "수련을 마치고 개원하는 게 목표라면 개원가에 파견을 보내 도움도 주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련기간 조율에 긍정적 반응

기울어가는 내과의 문제를 풀기 위해 대한내과학회가 제시한 것은 내과 수련기관을 현재의 4년에서 3년으로 줄이자는 것이었다. 학회의 이 제안에 대해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이다.

경희대병원 한 관계자는 "나 때만 해도 3년이었는데 수련받고 멀쩡히 대학교수 잘 하고 있다. 가정의학과도 잘 되고 있고, 내과도 인턴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미국도 바로 들어온다"며 "남학생들이 내과에 지원을 잘 안 한다. 군의관 복무기간이 3년 3개월, 거의 40개월인데 군복무기간을 줄여 주는 방안도 건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순천향대 서울병원 관계자도 "내과 4년은 의미가 없다. 3년 트레이닝하고 원하면 전임의를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주대병원 내과 교수는 "3년제로 하는 건 장기적으로 필요하다. 일반내과로 트레이닝 후 개업할 때 3년이면 충분하다"며 "분과전문의 과정을 1~2년으로 해서 종합병원, 대학병원 요원은 따로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내과 교수들이 수련기간을 줄이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지만 갈 길은 험하다. 만일 내과를 3년으로 줄이면 다른 진료과에서도 수련기간을 줄이려 할 것이고, 정부도 쉽게 허락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과학회가 제시한 또 다른 방안은 호스피탈리스트다. 그런데 반응이 영 신통찮다. 병원이 공고를 해도 사람을 구하기 쉽지 않고, 실력을 갖춘 사람이 지원하는 비율도 낮다는 것이다.

아주대병원 내과 교수는 "현재 내과 전공의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은 전공의 당직을 줄여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호스피탈리스트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야간 당직을 땜방하는 방식으로는 안 된다. 그들에게 지위와 권한을 주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호스피탈리스트가 정착되려면 신분보장은 물론 공공의 수련 프로그램이 정비되고 이후 전공의와의 역할분담 등이 정해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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