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액률·도입 시기 놓고 고심…유한양행·신풍 등 이미 시행

 

정부가 조선·금융·도소매 등과 더불어 제약산업을 임금피크제 선도업종으로 지정한 가운데, 도입 여부를 두고 제약업계의 눈치 게임이 한창이다.

2016년부터 근로자 정년을 60세로 연장한다는 정부 정책에 따라 일정 연령이 되면 정년을 보장하는 대신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 도입에 대해 임금 감액률 등을 검토 중인 것.

제약업계에서는 일부 제약사가 일찍이 시행에 나섰지만 노동조합과 의견이 합의되지 않았거나 다른 업체의 상황을 지켜보며 고민 중인 곳이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제약업계의 임금피크제 적용 현황과 도입 시 고려할 점 등은 무엇인지 살펴봤다.

시행 제약사, 임금 조정 평균 '55세'부터

고용노동부가 지난 7월 임금피크제 도입 기업 현황을 분석한 결과, 임금피크제를 시행 중인 조사 대상 제약사 11곳의 평균 정년은 58.3세이며, 평균 55세부터 임금조정을 시작했다.

임금의 일정 비율을 단계적으로 조정하는 업체는 7곳(63.6%), 도입 시점에만 조정하고 계속 유지하는 업체는 4곳(36.4%)이었으며, 조정비율은 피크 임금대비 연평균 21% 수준으로 확인됐다. 연평균 20~29%씩 감액하는 제약사는 9곳(81.8%)으로 가장 많았고, 10% 미만과 10~19%로 감액하는 곳은 각각 한 곳이었다.

아울러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유한양행이 2010년 업계에서 가장 먼저 임금피크제를 적용했고, 신풍제약, 한독,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바이오에피스, 삼성제약, 태평양제약 등이 도입했으며 다국적사로는 베링거인겔하임이 시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별 적용사례를 살펴보면 유한양행은 전 직원을 대상으로 노사 합의에 따라 정년을 55세에서 57세로 늘렸고, 55세에 임금 20%를 감액하고 이후 일부 상승시키거나 유지키로 했다.

한독은 2011년 생산직을 대상으로 임금피크제를 시행해 정년을 55세에서 57세까지 연장하고 단계적 임금 감액률을 설정한 바 있으며, 올해 임금협상 결과에 따라 내년부터 영업직과 생산직을 포괄하는 새로운 임금피크제를 도입키로 했다.

이에 기존 생산직에 적용하던 56세 10%, 57세 19%, 58세 27%, 59세 34%, 60세 41%씩의 임금 삭감률은 내년부터 영업직을 포함해 56세 동결, 57세 5% 삭감, 58세부터 60세까지 전년대비 10%씩으로 평균 14.7% 삭감하게 됐다.

지난해부터 임금피크제를 시행한 신풍제약은 55세에서 57세로 정년을 늘렸고, 56세는 임금 15%, 57세는 임금 25%를 삭감키로 했다.

국내사와 달리 다국적사는 임금 삭감에 관대한 양상을 보였다. 베링거인겔하임은 2013년 8월부터 임금피크제를 시행했으며, 60세까지 정년을 연장하면서 임금 삭감은 없고 55세의 피크 임금을 고정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이처럼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업체들은 퇴직 전 6개월간 유급휴가를 부여하는 공로연수제도를 시행하거나, 전직지원서비스, 노후설계프로그램 등 노후 지원을 통해 직원 만족도 재고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상황에서 화이자, 한미약품, 동아쏘시오홀딩스, 녹십자 등 제약사들도 임금피크제 도입을 고려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제약사는 내년부터 정년이 60세까지 연장되는 정책에 따라 올해 하반기 혹은 내년 중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것으로 관측된다. 회사 입장에서는 기존 55세, 57세 등이었던 정년을 60세까지 연장하는 상황에서 인건비에 대한 고민을 안 할 수 없기 때문.

다만 임금피크제 도입에 있어 임금 감액률 설정과 시기 지정 등은 노조와 합의를 이루기까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또 도입을 앞둔 제약사들은 다른 업체의 시행 사례를 보며 임금 감액률과 복리후생 등 현황을 체크하고 노사 협의에 나설 것으로 전해졌다.

임금피크제를 시행 중인 한 업체의 노조 관계자는 "현재 사측과 협의된 임금 감액률은 상대적으로 양호한 수준인데, 다른 업체들은 감액률을 두고 눈치를 보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고용노동부 측은 "임금피크제 도입 시 가장 중요한 성공 요인은 노사 간 신뢰와 협력"이라며 "기업 담당자들은 기업마다 청한 조건과 상황들이 다르기 때문에 노사 간 충분한 대화를 통해 근로자는 더 오래 일할 수 있고, 기업은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상생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제약협회는 제약사들의 임금피크제 도입과 관련해 다른 산업군의 도입 사례 등을 수집하고, 교육이나 세미나를 통해 회원사의 이해도를 높일 방침이다.

재정 절감 기여…취업 확대·정년 보장은 '글쎄'

그럼 임금피크제 도입은 제약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고용노동부는 근로자 입장에선 고용안정에 대한 심리적인 만족감 상승, 회사 입장에서는 숙련 기술력 활용을 통한 기업 경쟁력 향상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제약사 노조 관계자는 "제약업종의 인건비 비중이 15~20% 정도 되는데, 그간 제약사의 정년은 55세 또는 57세가 대부분이었다. 60세로 정년이 늘어나면 부담은 있겠지만 임금피크제가 재정절감에는 기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55세에서 57세까지 연장했던 임금피크제의 경우 60세까지 정년이 연장되기 때문에 임금삭감 폭은 기존 20% 수준에서 30% 수준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관측했다.

이에 대해서는 "노인복지 문제가 있으니까 기업이 이를 부담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에 따라 정년이 늘어났음을 감안하면 지나친 삭감 폭의 확대는 생활의 어려움을 야기할 것"이라고 피력했다.

또 임금피크제를 통한 예산절감으로 청년고용이 확대될 것이라는 주장에는, 이를 강제하는 사항이 제도화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크게 효과가 없을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특히 정년이 60세까지 늘어나지만 정년보장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임금피크제는 무의미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현행 근로기준법에 있는 '징계해고'와 '정리해고' 외에 '일반해고' 도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해고 도입이 성과형 임금체계의 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성과제 중심의 제약산업은 정년보장이 불안해질 수 있다는 주장인 것.

노조 관계자는 "그동안 제약업종은 영업직에서 성과제를 도입해오고 있는데, 저성과자를 평가할 수 있는 제도가 정착된 환경에서 일반해고가 도입되면 해마다 작게는 2%, 많게는 5~10%까지 해고하는 단초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고용노동부 정지원 근로기준정책관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쉽게 해고를 한다거나 임금을 쉽게 깎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법령과 판례를 토대로 충실히 노사에 필요한 부분을 제시한다는 차원"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노동시장 구조개혁과 임금피크제, 일반해고 도입 등이 향후 제약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또 회사 측과 노조 등 의견은 원만하게 합의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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