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의료 질 저하 우려...의결절차 정당성도 문제" 가입자단체 행정소송 등 후폭풍 예고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는 지난 2일 회의를 열어 의원 차등수가제 개편안을 의결했다. 의원 차등수가제는 연내 폐지하며, 그 대신 병원급 의료질 평가지표로 적정 진료시간 확보를 위한 항목을 포함시킨다는 것이 골자다.

2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가 제도 폐지안을 의결하면서, 의원급 차등수가제가 도입 15년 만에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의료계는 대표적인 '비정상의 정상화' 결정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히고 있는 상태. 반면 가입자단체측은 차등제 폐지 이후 '의원급' 관리방안이 부재한데다, 의결과정에서의 절차적 정당성에도 문제가 있다며 행정소송 등 강경대응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복지부는 2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열어 '진찰료(조제료) 차등수가제 개편'안을 상정, 격론 끝에 제도 폐지를 의결했다.

의원급 차등수가제는 의원급의 의사 1인당 1일 진찰건수 75건을 기준으로, 이를 초과할 경우 그에 비례해 진찰료 등 수가를 차감하는 제도다. 2001년 건강보험 재정 건전화를 위한 한시 조치로 도입됐으나, 현재까지 폐지되지 않고 유지돼 왔다.

이날 건정심은 표결 끝에 의원급 의료기관 진찰료 차등수가제를 폐지하며, 그 대안으로 병원급 '의료 질 평가지원금' 평가 지표의 하나로 ▲의사당 외래진찰횟수 ▲의사당 환자 수 또는 평균진찰시간 등을 도입하기로 했다. 의원급을 대신해 '3분 진료' 논란에 시달렸왔던 병원급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적정 진료시간 확보를 유도해가겠다는 설명이다. 

의료계는 '비정상의 정상화' 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의협 관계자는 "지난해 국감에서 밝혀졌듯 의원급 차등수가제는 이미 실효성이 없는 상황"이라며 "이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됐고, 당연한 귀결로 폐지가 결정된 것이다. 뒤늦은 일이지만 대표적인 비정상적 보건의료정책 중 하나를 정상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 의원 차등수가 폐지 대안 '병원 질 관리', 타당성 있다 vs 없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가입자단체들은 이날 건정심 회의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어, 의원급 차등수가제 폐지안 재상정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사진은 기자회견에 나선 민주노총 김경자 부위원장과 한국노총 김선희 정책국장(왼쪽부터).

차등수가제 폐지안 의결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이날 건정심은 격론 끝에도 결론을 내리지 못해, 결국 표결로 해당안건의 의결여부를 정했다. 표결결과는 재석위원 18명 가운데 찬성 11명의 찬성으로 가결. 표결 결과가 발표된 직후 한국노총·민주노총·소비자시민모임 등 가입자대표들은 이에 반발해 회의장을 퇴장했다. 

가입자단체들은 의원급 의료기관 차등수가제 폐지의 대안이 병원급 의료기관 의료질 관리 강화일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차등수가제의 취지가 특정 의원으로의 환자쏠림을 제한해 환자 당 진료시간을 늘리는 등 의료의 질을 제고하는데 있었던 만큼, 그 대안 또한 의원급 의료기관의 의료 질 관리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국노총 김선희 정책국장은 "차등수가제는 특정의원으로의 환자쏠림을 막고, 이를 통해 환자의 적정진료시간을 보장하도록 하는 최후의 보루였다"며 "제도 폐지시 진료시간 단축과 의료질 저하 등의 현상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의원 차등수가제는 이미 의료 질 제고의 효과성을 상실한 상태였다고 진단하고, 차등수가제가 폐지된다고 해서 의원급 환자쏠림이 심해지고, 3분 진료행태가 만연할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보건복지부 손영래 보험급여과장은 건정심 직후, 전문기자협의회와 가진 인터뷰를 통해 "보건사회연구원 연구결과 등에서도, 진료시간 변화 등 차등수가제 운영에 따른 효과성을 입증하지 못했다"며 "역으로 보자면 차등수가제를 없앤다고 해서 특정 의원으로 환자가 더 쏠리거나, 이로 인해 환자가 충분한 진료를 받을 수 없다고 고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복지부는 오히려 이번 대안이 진짜 3분 진료 논란을 불러왔던, 병원급 행태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손 과장은 "이번 개선안은 진짜 환자쏠림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병원급 의료기관으로 제도 효과를 옮겨간다는 의미가 있다"며 "오히려 문제가 됐던 병원급 의료기관에 대해 환자 수에 따라 수가를 차등지급할 수 있는 좋은 기전이 만들어진 셈"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 부결 3개월만에 재처리, 절차 불공정 vs 문제 없다

▲2일 건정심 회의. 가입자단체들은 이날 회의에서 차등수가제 폐지안의 부당성을 강력히 주장했으나, 제도 무용론에 더 큰 무게가 실렸다. 표결결과, 재석위원 18명 가운데 11명이 찬성, 5명이 반대, 2명이 기권해 차등수가제 개선안은 정부 원안대로 통과됐다.

가입자단체는 이날 건정심 의료과정이 절차적 공정성을 상실한 채 이뤄졌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정부가 사실상 같은 안건을 임의로 재상정, 표결을 통해 결정을 밀어붙였다는 주장이다.

김경자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건정심 퇴장 직후 "정부가 사실상 같은 안건을 임의로 재상정 했다"며 "재상정 안건의 경우 재석의원의 2/3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하나 복지부는 해당 안건을 신규안건으로 규정했고 위원장 권한으로 재상정을 강행했다. 이는 안건상정 권한을 남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표결과정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김 부위원장은 "지난 6월 차등수가제 폐지안건 상정 당시에는 무기명투표를 진행했지만, 이번에는 거수로 자신의 의견을 밝히도록 했다"며 "건정심 위원들이 복지부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공급자단체과 공익위원 대부분이 찬성에 손을 들면서 안건이 처리됐다"고 지적했다.

김 부위원장은 "이번 의결은 절차적 정당성 측면에서 분명 문제가 있었다"며 "행정소송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강경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복지부의 입장을 이와 조금 다르다.

손영래 과장은 "건정심 규정에 따르면, 신규안건이든 재상정 안건이든 구분 없이 공히 재석위원 과반수 이상이 찬성하면 안건이 가결된 것으로 본다"며 "재상정 안건에 대해서는 2/3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은, 건정심 규정과는 전혀 무관한 주장"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거수투표라는 강압적인 방식으로 표결을 진행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건정심 규정에서는 오히려 비밀투표를 할 경우 사전에 그 시행 여부를 의결하도록 하고 있다. 이번 회의에서도 비밀투표 여부를 먼저 물었지만 부결돼, 그 뜻에 따라 거수로 의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결된 안건을 재상정해 건정심이 스스로의 결정을 뒤짚는 상황을 만들었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지난 6월 상정안 부결의 가장 큰 이유는 폐지에 따른 대안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진료횟수 공개의 부작용과 효과성에 대해 문제제기가 있었고, 이를 반영해 새 대안을 내 다시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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