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성한 법체계 원격의료 제자리

정부가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 `e헬스 산업` 육성에 나선 지 2년이 지났지만, e헬스산업의 핵심이라 불리는 원격의료는 제자리 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정부의 `보건의료 정보화 촉진 정책`에 따라 전자의무기록, 전자처방전, 원격의료 등과 관련 지난 2002년 의료법 개정으로 원격의료는 합법적인 의료행위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의사 대 의료인의 `자문`에 국한되어 의료분쟁 발생시 책임 소재의 불분명 등의 문제를 안고 있는데다, 보험청구와 관련된 법규는 아직 존재하지도 않아 상당수의 의사들이 원격의료의 실익에 대해 반신반의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행 의료법의 "원격지 의사의 지원에 의해 의료행위를 한 경우 환자에 대한 책임이 현지의사에 있다"는 규정은 원격지 의사가 현지의사에 대하여 `지시`한 것이 아니라 `자문`만을 한 경우 원격지 의사는 환자와 아무런 법률관계도 없고, 원격지 의사의 `고의`로 인한 부분까지 현지 의료인 책임이라는 의미에서 다소 부당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책임소재의 문제는 현재 원격판독을 행하고 있는 영상의학과에서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아이리드의원의 심정석 원장은 "아직까지 이와 관련해 분쟁이 발생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지만, 언젠가 곪아터질 문제"라며 합리적인 제도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험청구와 책임소재의 문제를 제외하고도 현재 원격의료에 있어서 의료법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많다.
 현행 의료법에서는 "의료인이 원격지에 있는 환자에 대하여 진단을 내리고 처방 등 필요한 의료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보건복지부장관이 정하는 교육과정을 이수한 후 자격을 취득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의료인에 간호사가 해당되는지의 여부가 불분명해 간호사법 제정과 맞물려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또한 보건의료포털 사이트인 월드케어코리아(www.worldcare.co.kr)의 경우, 방사선 영상이나 임상병리검사 결과 등 2차 진료소견을 외국 유수 병원의 의사에게 전송해 진단 및 처방을 받는 형태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나, `원격의료는 국내면허를 가진 원격지 의료인 및 현지의료인이 모두 존재하는 경우`에만 허용하는 국내 의료법에는 분명히 배치된다.
 이와 비슷한 형태의 예로는 삼성의료원과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병원 간, 서울의료원 국제원격협진센터와 미국 UCLA 헬스케어재단 UCLA 데이비스병원 간, 영동세브란스병원과 미국 9개 병원(존스홉킨스대학병원, 하버드의대, 듀크 대학병원 등)간 운영되는 원격진료시스템이 있다.
 원격의료 기반시설 제공자(초고속 통신망 제공자 및 원격의료 시스템 관리자)들의 책임도 간과되고 있다. 초고속 통신망을 이용한 원격진료의 경우, 통신망의 하자, 원격 진료시 환자나 의사가 이용하는 컴퓨터 및 주변 기기의 고장 및 오작동 그리고, 자연 재해로 인한 정전 등 예상치 못했던 사고 등으로 인해 원격의료 시스템 오작동 및 결함이 발생할 수 있다.
 만약 이로 인해 의료사고가 발생했다면 초고속통신망의 유지, 보수에 만전을 기하지 못한 통신회사 및 원격진료 컴퓨터 시스템을 제공한 회사, 전력공급회사 등에 복합적인 책임 문제가 뒤따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원격의료시 발생하는 의료분쟁에 있어서 원격의료 기반시설 제공자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민사책임에 관한 특별규정이 아직까지는 법적으로 제도화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만일 초고속통신망 등 원격의료 기반시설의 장애 등으로 인해 원격의료 계약 당사자(원격의료인)가 계약을 이행하지 못해 환자에게 손해가 발생했다면 그 원격의료 기반시설 제공자는 계약보조자 또는 이행 보조자로서 법적책임도 부담하는 것이 마땅하다.
 현행 개정 의료법이 원격의료를 `의료행위`로서 명문화 한 이상 원격의료는 의료행위의 한 축으로 발전할 것이 분명하다.
 원격의료는 농어촌 도서지역 등 의료서비스 취약지역의 환자들에게 대도시 못지않은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거동조차 불편한 고령환자들의 만성질환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으며, 오진의 위험도 줄일 수 있다.
 또한 취약한 응급의료체계를 보완하고,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군진의료의 대안으로서도 고려할 수 있는 등 원격의료가 국민들에게 가져다 줄 혜택은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충분하다. 장점을 살리기 위해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는 법과 제도의 정비를 통해 미리 제거하는 것이 국민 건강 향상을 위한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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