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프탈레이트 함유 수액세트 영유아만이라도 교체해야... 식약처, 과도한 걱정은 기우

 

몇 년 전 프탈산 계열의 가소제(이하 프탈레이트 가소제)가 인체 내분비계열에 영향을 준다는 발표가 나오면서 논란이 뜨거웠다.

특히 수액세트가 논란의 중심이었는데 수액줄을 타고 인체로 프탈레이트 가소제가 유입돼 인체에 영향을 준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당시 모든 수액세트는 프탈레이트 가소제가 함유되지 않은 NON-PVC로 교체될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까지 거의 변화가 없다. 몇몇 병원이 수액세트를 NON-PVC로 변경하고 있지만 개별적인 움직임일 뿐 큰 흐름으로 읽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의료계와 정부의 시각 차이가 너무 커 그 간극을 메우지 못하고 있어서다.

“임신부·영유아만이라도 친환경제품을”
NON-PVC 수액세트 생산시설 충분…“식약처의 가격 상승 우려는 기우”

프탈레이트 가소제, 내분비계에 영향

의료계는 프탈레이트 가소제가 미치는 영향이 당장 눈에 보이지는 않더라도 장기적으로는 환자안전에 위험을 줄 수 있어 모두 교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근 순천향대와 중앙대 공동연구팀이 경기도 부천지역에서 PVC 수액줄을 사용한 임신부 32명의 소변을 채취해 환경호르몬 노출 여부를 검사한 결과 32명 모두에서 프탈레이트가 검출됐다는 것. PVC 수액줄을 타고 수액이나 혈액이 흐르기 때문에 PVC와 결합한 프탈레이트가 체내로 흘러들어갔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중앙의대 예방의학교실 홍연표 교수는 동물실험과 역학조사에서 프탈레이트 노출이 동물과 사람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는 연구결과가 지속적으로 보고된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프탈레이트 가소제는 비만이나 당뇨병 유발 등 내분비계에 영향을 준다는 논문이 발표되고 있다"며 "약의 효과에도 영향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영유아나 임신부 등은 이 물질에 취약하기 때문에 노출을 예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계 전면금지 요청에도 꿈적 않는 식약처

의료계가 수액세트의 전면 사용 금지를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30여 종이 넘는 프탈레이트 가소제에 대한 근거자료를 제시하지 않으면 전면사용을 금지할 수 없다는 것. 결국 식약처는 2014년 8월 수은, 석면, 디에틸헥실프탈레이트(DEHP), 디부틸프탈레이트(DBP), 벤질부틸프탈레이트(BBP) 등만을 제한했다.

프탈레이트 가소제란?

프탈레이트 가소제는 주로 장난감, 화장품, 세제 등 폴리염화비닐(PVC)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쓰이는 물질로 인체의 내분비계에 영향을 줘 기형아 출산이나 생식기 발달억제 등 인간의 번식력에 영향을 주는 물질로 알려졌다. 특히 남성생식기계 발달 및 정자 생산에 미치는 부작용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999년부터 내분비계에 영향을 주는 환경호르몬 추정물질로 분류됐고, 2005년 유럽연합(EU) 독성·생태독성 및 환경과학위원회는 프탈레이트 6종의 위해성 평가를 통해 디에틸헥실프탈레이트(DEHP), 디부틸프탈레이트(DBP), 벤질부틸프탈레이트(BBP) 등 3종의 프탈레이트계 가소제가 발암성과 변이독성, 재생독성이 있는 물질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미국 암학회는 발암물질 20종 안에 포함시켜 놓은 상태다. 우리나라가 지난 2007년 9월 프탈레이트가 함유된 PVC 수액백을 사용금지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다.
 

한 전문가는 "프탈레이트 가소제 물질 구조 자체의 단순한 Mimic 효과(모방작용)에 의한 여성 호르몬 작용을 프탈레이트 가소제의 위해성으로 오인하면 모든 계층에서 위험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며 "대사 분해산물에 취약하지 않은 환자들에게도 사용을 제한해야 하기 때문에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영유아나 임신부 등 취약계측이 있다는 것은 프탈레이트 가소제를 허용할 수 있는 계측이 있다는 반증"이라며 "유럽 의회 고시에는 무조건적인 제한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부득이 프탈레이트 가소제를 함유할 수밖에 없는 의료기기는 함유 표시를 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식약처는 프탈레이트 가소제 금지를 의료기기 분야에 적용하기 어렵고 과도기적이라 불가하는 입장이다. 대체물질이 나오고 있지만 의료기기에 쓸 만한 대체제로 나온 것은 불과 몇 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 또 현재의 수액세트를 대체할 수 있는 대체제도 없고 생산기반도 미비해 불가능하다는 것. 가격상승도 식약처가 우려하는 부분이다.

 

식약처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의료계 한 관계자는 "대체제가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미 시장에 친환경 수액세트라고 해서 사용하는 병원이 있고, 대형병원 몇몇 곳도 NON-PVC 수액세트를 사용하고 있다"며 "생산시설도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기존 생산시설 활용으로 완전 대체가능할 정도로 생산기반은 충분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가격상승은 괜한 걱정이다. 가격변동이 없거나 미미할 것"이라며 "프탈레이트 가소제 전면사용이 후퇴한 이유로 정부는 30여 종이 넘는 각각의 프탈레이트 가소제 근거자료를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말한다. 그렇다면 정부가 30여 종의 프탈레이트 가소제를 사용해도 안전하다는 근거를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영유아·임신부 노출 위험 높아

프탈레이트 가소제에 대한 논란에 진전이 없자 의료계는 모든 환자에게 사용되는 모든 수액세트를 바꾸지 않더라도 영유아나 임신부 등에 사용하는 수액세트만이라도 변경하자고 주장한다.

홍연표 교수는 "가장 걱정하는 것은 신생아집중치료실의 신생아들이다. 영유아는 신체의 크기에 비해 음식 섭취량과 호흡량 등이 많고 대사율도 높아 성인에 대해 유해물질 흡수율이 높다"며 "신생아들이 가장 높은 농도의 프탈레이트에 노출될 확률이 크다. 또 오염물질 노출에 따른 건강영향이 세대 전이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영유아는 신경계나 면역, 호흡계 등이 충분히 성숙되지 않아 유해물질의 대사와 제거가 성인보다 취약해 이들에게만은 NON-PVC 수액세트를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혈액이나 항암제 등처럼 지질이 포함된 수액은 PVC 수액관을 통과할 때 프탈레이트가 녹아 인체에 유입될 가능성이 높아 이 또한 NON-PVC 수액세트로 변경해야 한다는 게 홍 교수의 주장이다.

지난 2010년 예방의학회에서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프탈레이트가 포함된 수액관과 그렇지 않은 수액관으로 비교연구를 했다. 그 결과 생리식염수는 두 곳 모두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지만 항암제(탁솔)는 프탈레이트가 포함된 수액관에서 0시간일 때 24.3ug/L, 4시간 지났을 때 46.0ug/L 검출됐다.

외국에서도 영유아와 임신부 등을 프탈레이트 가소제 취약계측으로 정의하고 있다. 미국식품의약국(FDA)과 프랑스에서는 임신부, 영유아, 혈액투석환자, 암환자 등을 프탈레이트 가소제 대사분해물이 고농도로 농축되는 계층이라 분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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