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신장실 감염환자 '0' 성과 뒤엔 의료계 숨은 노력..."제2 메르스 막으려면 민관 힘 합쳐야"

©메디칼업저버 고민수

정부가 메르스 종식을 선언한지 어느 덧 한달의 시간이 흘렀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평온한 일상으로 복귀했고, 그에 맞춰 메르스 사태에서 보여졌던 정부의 미숙한 대응도, 메르스 확산을 막기 위해 불철주야 달렸던 의료진들의 노고도 어느덧 잊혀져 가고 있다.

본지는 메르스의 기세가 극에 달했던 6월, 메르스 공포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던 인공신장실 폐쇄 사태를 되돌아 보고자 한다. 이제 와 그때의 일을 다시 되짚는 것은, 사태를 제대로 복기해 승착과 패착을 찾아내야 다음에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우디 메르스 확산 진원지 된 '인공신장실'...한국은 감염환자 '0'

학계는 메르스 사태 초기부터 투석환자 감염 가능성에 신경을 집중해왔다. 사우디아라비아 메르스 사망자 가운데 90%가 투석환자였던데다, 투석 환자 메르스 감염시 사망률이 60% 이상일 정도로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투석환자들은 폐쇄된 공간에서 집단적으로 치료를 받으며, 병상간격이 1m 이내로 근접 상태고, 체류시간이 최소 5시간 이상이다보니 대규모 감염의 우려가 특히 높았다.

다만 6월 초까지만 해도 응급실과 인공신장실의 대부분은 정상 운영됐다. 당시까지만 해도 투석환자 중 메르스 확진환자가 없었고, 정기적인 투석을 필요로 하는 투석환자들의 편의를 고려한 조치였다.

그러나 11일 서울 양천구의 메디힐병원에서 메르스 확진환자가 발생해 병원 폐쇄조치가 이뤄지고, 이 곳에서 투석을 받고 있던 환자 22명이 인근 인공신장실로 전원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가장 발빠르게 대응한 것은 학계였다. 대한신장학회는 6월 15일 메르스 관련 대책회의를 열어 인공신장실 환자에 대한 특화된 관리 메뉴얼을 마련하자는데 의견을 모았고, 17일 대한투석협회와 공동으로 '메르스 관련 혈액투석 환자에 대한 권장 진료지침 및 방역당국에 대한 요청사항'을 발표한다.

지침에는 투석실내 확진자 발송시 치료기관으로 이송하고, 가택격리자는 격리투석을 실시하며, 감염병 유행기간 동안 의료기관간 환자 이동을 금지한다는 7개 지침과 함께 거점 인공신장실 구축과 투석관리대응팀의 구성, 가택격리자 병원 이동수단 제공 등 대정부 5개 요청사항이 함께 담겼다.

강동경희대병원 사태, 그곳을 지킨 것은 10할이 민간이었다

학계의 우려는 6월 18일 강동경희대병원에서 투석환자 1명이 메르스 감염으로 확진되면서 현실화되는 듯 했다. 강동경희대병원에서는 투석환자 72명이 입원격리됐고, 이 가운데 55명은 밀접접촉자로 1인 격리투석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입원격리가 결정됐지만, 후속조치는 난망했다.

일단 환자 수가 너무 많았다. 당시 인공신장실에는 100여명이 넘는 환자가 몰려 있었다. 통상적인 상황에서 보더라도 한 센터가 감당하기에 많은 숫자다.

더욱이 해당 병원 의료진 상당수에 대해서도 격리조치가 이뤄지면서, 기존 의료진만으로는 해당 환자들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특히 강동경희대병원은 특화사업을 표방, 인공신장실 전담인력을 따로 운영하고 있었고, 때문에 이들을 대체해 입원격리된 환자들의 혈액투석을 진행할 의료진을 병원 내에서 찾을 수 없었다.

감염 우려가 있는 의료진을 투입할 수도, 그렇다고 입원환자들에 대한 혈액투석을 중단할 수도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병원에 손을 내민 것은 다름아닌 동료의사들이었다.

대한신장학회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인력파견과 의료기기 지원 등이 이뤄진 것. 신장학회는 회원공지를 통해 혈액투석 전문 간호인력과 이동식 정수장치인 'Portable RO'의 지원을 요청했고, 병원투석간호사회와 일부 병원, 민간 의료기기업체 등의 도움을 받아 상황이 발생한 지 이틀만인 6월 20일 간호사 23명과 Portable RO 27대를 강동경희대병원에 긴급 지원했다.

의료진과 자원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2주간의 격리투석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고, '병원 내 투석환자 메르스 감염 제로'라는 전무후무한 성과로 이어졌다. 이후 벌어진 강릉의료원 투석간호사 확진 때도 학회에서 지원 의료진을 모집, 파견해 의료공백을 메웠다.

덧붙여 신장학회와 대한투석협회는 6월 24일 질병관리본부와 공동으로 '혈액투석의료기관용 메르스 대응지침'을 발표했고, 이는 일선 인공신장실에서 메르스 전파를 예방하고 확산을 최소화하기 위한 지침으로 활용됐다.

인공신장실 메르스 사태 상황별 일지

 

6월 11일 메디힐병원 폐쇄. 인공신장실 환자 22명 인근 병원 전원
6월 15일 대한신장학회 메르스 1차 대책회의/인공신장실 메뉴얼 필요성 논의
6월 17일 대한신장학회 메르스 2차 대책회의/ 대한신장학회·대한투석협회 공동 지침 발표
6월 18일 강동경희대병원 혈액투석 환자 1명 메르스 확진
6월 20일 강동경희대병원 투석 환자 중 91명 중 72명 입원 격리. 이 중 55명 1인실 격리투석.
대한신장학회, 투석 간호사 및 의료기기 지원 요청-투석 간호사 23명 자원, portable RO 27대 지원
6월 22일 강동성심병원 메르스 입원환자 확진. 접촉자 6명 인공신장실 야간 격리투석
6월 24일 질병관리본부·대한신장학회·대한투석협회 메르스 대응지침 발표
강릉의료원 간호사 메르스 감염 확진, 투석실 의료진 격리
6월 25일 투석실 지원 의사, 강릉의료원 파견

 

좌충우돌 정부, 제 2메르스 막으려면 달라져야

정부는 오히려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보였다.

11일 메디힐병원 폐쇄조치 후 관할 보건소는 지역 인공신장실 운영 의료기관들에 전화를 걸어, 환자 분산수용을 요청했다. 환자가 분산될 수록 감염위험이 높아지는 상황이었지만, 학계의 강한 우려표현이 있기까지 해당 보건소는 '진료거부'까지 언급하며 분산수용을 강행하려 했다.

강동경희대병원 사태 때는 병원과 학계가 의심환자에 대한 즉각적인 가택격리와 가택격리자 병원 이동수단 제공 등을 직접 정부에 요청했지만, 질병관리본부가 난색을 표하며 입원 격리조치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대로 입원 격리조치에 따른 후속조치, 즉 의료진과 의료기기 지원은 모두 민간의 손으로 이뤄졌다.

신장학회 김성남 보험법제이사는 "강동경희대병원 인공신장실 파견을 자원했던 투석 간호사 등에 대해서는 그마나 보상이 이뤄질 예정이지만, 장비의 이동과 설치 등을 담당했던 민간 의료기기업체는 아무런 보상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보상을 바라고 한 일은 아니겠으나, 이렇게 홀대한다면 다음번엔 누가 나서서 일을 돕겠느냐"고 안타까워 했다.

▲대한신장학회 최규복 이사장

그는 "메르스 대응, 특히 인공신장실 감염방지에 있어서는 거의 모든 일이 민간의료의 힘으로 이뤄졌다"며 "정부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메르스는 이미 지나간 이슈일지 몰라도, 재발방지라는 과제를 안은 우리에게 메르스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신장학회 최규복 이사장은 19일 신장학회 추계학회에서 메르스 사태 재발방지를 위한 제언을 내놨다.

최 이사장은 "신장투석 환자들이 안심하고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보건당국의 방역체계가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며 "감염병 유행상황에서는 정부와 전문가가 협력해 효과적인 컨트롤타워를 구성하고, 인공신장실 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공유하면서 대처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특히 "향후 진행될 대책연구 과정에서, 인공신장실 관련 내용만큼은 반드시 현실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신장학회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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