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집중조절하고 멀리 내다봐야

 

당뇨병은 고혈당 장기노출로 인한 합병증 위험이 가장 무섭다. 당뇨병 환자의 상당수가 대혈관합병증인 심혈관질환으로 사망한다. 미세혈관합병증 역시 환자의 삶의 질을 악화시키고 심하면 생명까지 위협하는 존재다. 때문에 당뇨병 치료의 궁극적인 목표는 혈당조절을 통해 이 같은 혈관합병증 위험을 줄이는데 초점이 맞춰진다.

전문가의 설명에 따르면, 혈당이 높을 경우 체내 단백질이 당화(glycation)된다는 것이 문제의 시발점이다. 이렇게 되면 단백질의 기능이 상실돼 세포나 조직 및 기관의 기능장애가 유발된다. 이러한 문제가 혈관에 누적되는 상황이 지속되면, 죽상경화증이 야기되고 최종적으로는 심장이나 뇌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혈당을 정상화시키면 심혈관질환으로 이어지는 이러한 과정의 출발 자체를 막을 수 있기 때문에 궁극적인 대혈관합병증 예방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고혈당 - 죽상경화증 - 심혈관질환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의 초기단계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 즉 혈당조절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혈당조절 = 혈관합병증 예방’이라는 공식의 임상적용이 그 어느때보다 절실하다.

심혈관 안전성
그런데 최근 등장하는 신규 혈당강하제들은 자신들이 심혈관질환 위험을 높이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경구 혈당강하제 로시글리타존과 관련한 심혈관 안전성 파동을 거치면서, 미국식품의약국(FDA)은 당뇨병 신약을 개발하고 허가를 받는 데 중요한 전제조건의 하나로 해당 약제들이 심혈관질환 위험을 증가시키지 않는다는 자료를 제출토록 요구했다. 시판 후 연구를 통해서도 심혈관 안전성을 검증해야 하는 입장에 처했다. 심혈관질환 예방에 기여해야 할 혈당강하제들이 심혈관 안전성부터 증명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

문제의 시발점이었던 로시글리타존은 최종적으로 심혈관 안전성, 특히 심근경색증 위험에 큰 문제가 없다는 결론에 따라 명예를 회복했다. 하지만 과거의 영화를 다시 찾기에는 만시지탄(晩時之嘆)의 모습이다. 신규 주자들도 대체적으로 심혈관질환 위험에 중립적인 영향을 미치며, 안전하다는 쪽으로 결론을 도출해가고 있다.

로시글리타존 이후 이 역설적인 검증의 대상은 신규 제제인 인크레틴 기반 요법, 즉 DPP-4 억제제와 GLP-1 수용체 작용제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첫 포문은 DPP-4 억제제가 열었다. 삭사글립틴(SAVOR-TIMI 53)과 알로글립틴(EXAMINE)을 시작으로 시타글립틴(TECOS)②을 거치면서 심혈관질환 위험을 높이지도 줄이지도 않는다는 중립적 효과를 확인했다.

다만 SAVOR-TIMI 53 연구에서 심부전 입원율 증가가 관찰돼 새로운 이슈를 선점한 가운데, 이어지는 여타 후속 연구에서 전반적으로는 약물 관련 심부전 안전성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방향이 잡히고 있다. 여기에 GLP-1 수용체 작용제 릭시세나타이드 대상의 ELIXA 연구가 긍정적 결과를 들고 최근 모습을 드러냈고, 앞으로 리나글립틴을 검증하는 CAROLINA 연구 등이 발표될 예정이라 혈당강하제의 심혈관 안전성에 관한 종지부를 찍게 될 것으로 보인다.

혈당조절 = 심혈관질환 예방 공식 가능한가?
SAVOR-TIMI-53, EXAMINE, TECOS, ELIXA 연구의 공통점은 각각의 약제들이 심혈관질환과 관련해 위험을 높이지도 줄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대혈관합병증에 중립적 효과를 나타낸다는 것인데, 결과적으로는 혈당조절을 통한 심혈관질환 예방의 가능성에 시원한 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고혈당으로 인한 미세혈관 또는 대혈관합병증을 막는 것이 당뇨병 치료의 핵심이다. 특히 심뇌혈관질환으로 대표되는 대혈관합병증은 당뇨병 환자 사망원인의 주를 이루고 있어, 이를 막는 것이 치료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처럼 고혈당은 심혈관질환의 주요 위험인자이자 치료타깃임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일련의 연구들은 미세혈관합병증과 달리 혈당조절을 통한 대혈관합병증 예방에 있어서는 일관된 결론을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 항당뇨병제들이 유의한 혈당강하 효과를 보고하고 있지만, 혈당이라는 지표(marker)의 개선이 궁극적인 심혈관사건의 예방을 담보하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의문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혈당조절이 심혈관질환 극복 해법의 열쇠가 될 수 있다는 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서울의대 김효수 교수(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는 “그 간의 임상경험과 과학적 근거해 기반해, 즉 생물학적 근거·임상연구·환자례 등에 비춰볼 때 초기의 적극적인 혈당조절을 통해 심혈관질환의 예방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고혈당 대사기억의 특성으로 인해 당뇨병 초기에 집중적으로 혈당을 다스릴 경우 장기적으로 미세혈관합병증에 이어 대협관합병증 혜택까지 담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최근 보고된 VADT 장기관찰 연구④와 함께 DCCT, UKPDS, ADVANCE 연구 등이 이러한 주장의 타당성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혈당강하제의 심혈관 보호효과
특히 최근 들어 혈당강하제의 약제특성과 관련해 혈당조절 이외에 여타 심혈관 위험인자 조절의 부가적 혜택이 지속적으로 보고되면서 대혈관합병증 예방 가능성에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 당뇨병 환자의 대부분이 심혈관합병증으로 사망하는 가운데, 혈당 외에 체중·혈압·지질·내피세포기능·염증 개선 등 다면발현효과(pleoitropic effects)를 나타내는 전천후 멀티플레이어 항당뇨병제에 대한 요구가 계속돼 왔다.

특히 최근 등장한 신규 계열의 혈당강하제들이 이러한 다면발현효과에 의한 심혈관 혜택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어 주목된다. 혈당조절 이외에 메트포르민은 체중과 지질, 티아졸리딘디온계는 혈압·지질, 인크레틴 기반요법은 체중과 지질, SGLT-2 억제제는 혈압·체중·지질 측면에서 잠재적 개선효과를 보고해 왔다. 인슐린 역시 지질개선을 통해 동맥경화증 진행을 억제하는 결과를 보고한 바 있다. GLP-1 수용체 작용제 리라글루타이드의 경우는 용량을 달리 해 비만치료제로도 적응증을 승인받아 멀티플레이어로서의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다.

심혈관질환에 가려진 미세혈관합병증
당뇨병 환자의 대혈관합병증인 심혈관질환에 대한 경각심이 강조되고 있는 가운데 미세혈관합병증에 대한 관심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당뇨병성 신경병증, 신장병증, 망막병증 등으로 대변되는 미세혈관합병증은 급성 사망과 직결되지 않고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특성으로 인해 심혈관질환에 비해 관심도가 덜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당뇨병 환자의 미세혈관합병증 유병률은 결코 무시할 수준이 아니다. 대한당뇨병학회의 Diabetes Fact Sheet in Korea 2013 자료에서 당뇨병 환자의 신경병증 유병률은 33.5%, 신장병증은 27.3%, 망막병증은 18.6%로 보고됐다. 특히 당뇨병성 신경병증의 진단 및 치료율 제고가 국민보건의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당뇨병의 가장 흔한 만성 합병증으로 환자의 삶의 질 악화는 물론 극단적으로는 치명적 장애를 야기하는 등 국민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지만, 질병에 대한 무관심이 진단과 치료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에 따라 학계의 가이드라인은 당뇨병성 미세혈관합병증과 관련해 질환 이환의 예방 및 지연을 위한 최적의 혈당조절을 강도 높게 권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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