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들의 PTSD 증상 등을 면밀히 파악 후 심리치료 우선 권고

성폭력 범죄 피해자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지금, 정신과 전문가들에게 보다 나은 치료를 위한 '경종의 소리'를 울리는 시간이 마련됐다.

성폭력은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발생의 가장 강력한 요인일 뿐만 아니라 우울증, 물질사용장애, 불안장애, 식이장애 등의 발병 위험도 높여, 생물학적 및 사회적·심리적 접근이 동시에 요구된다.

이런 상황속에서 전 세계적으로 성폭력 범죄 피해자 수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 전문가들의 관심 역시 필요한 상황.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실제로 최근 5년간 성폭력 범죄 발생 현황'에 따르면 2014년 성폭력 범죄 건수는 2만 9517건으로 하루 평균 80건이 발생했다(새정치민주연합 노웅래 의원 제공).

▲ 정영기 교수가 11일 밀레니엄 힐튼호텔에서 열린 대한정신약물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발표하고 있는 모습

아주의대 정신건강의학과 정영기 교수는 11일 밀레니엄 힐튼호텔에서 열린 대한정신약물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공식 발표보다 실제 훨씬 많음 범죄가 발생하고 있다. 가해자가 기소되고 처벌을 받을 확률이 가장 낮은 범죄 중 하나며 면식정도에 따라 음주여부에 따라 처벌률이 달라진다"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성폭력 범죄로 인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고 있는 만큼 범죄 예방은 물론이며, 피해자의 적극적인 치료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피해여성들에서 동반되는 주요 신체적 증상에는 STD(성병), 임신, 괄약근 손상, 질의 상처, 입천장 손상을 비롯한 소화기계 증상인 어지럼증, 구토, 매스꺼움, 체중 감소 등이 있다. 이와 함께 정신건강에도 악영향을 주는데 그 중에서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해리증상, 우울증, 분노, 자기학대 등이 나타난다.

특히 해리증상은 성폭력 관련 PTSD 환자에서 매우 흔한 증상이다. 실제 피해자들이 표현하는 해리 증상들에는 △사건을 표현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고 △순간 멍해지거나 무엇인가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 △내 의지대로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강간 당시 내 몸이 아닌 것 같고, 사건 현장에 있어 가해자가 들어 올 것 같다 등이 있다.

"약물치료…심리적 치료 후에도 큰 효과 없을 때"

 

정 교수는 피해자들이 이처럼 신체적 정신적 다양한 증상을 동반하고 있는 만큼 치료 목적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특히 현실에 참여하게 하고 본인이 삶의 주인공이 되게 이끌어 주는 것이 우선이라고.

그는 "무엇보다 정체성을 회복 시키는 데 집중해야 한다. 즉 스트레스 경감 기술을 스스로 터득하게 해 부정적인 인지에서 벗어나 자신을 용서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더불어 치료에 앞서 환자가 치료를 꼭 원하는지를 먼저 파악하고, 환자 스스로 치료요법 등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전했다.

현재 피해자들의 치료는 약물치료와 심리적·사회적 치료가 병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약물치료가 필요할 경우, 환자에게 약물 치료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것도 잊지 말 것을 당부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많은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약물치료를 1차요법으로 권하지 않고 있으며, 인지행동기법(CBT)에 반응하지 않는 환자들에게 우선적으로 권고하고 있다.

정 교수에 따르면 현재 시중에 나와있는 약물 가운데 가장 부작용이 낮다고 보고된 약물에는 파록세틴(paroxetine), 플록세틴(fluoxetine), 설트랄린(sertraline), 페넬진(phenelzine), 항경련제(anticonvulsants) 등이 있다.

정신·심리적 요법에는 앞서 언급한 CBT가 가장 대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밖에는 분노조절, EMDR(안구 운동을 이용한 둔감화 및 재처리 요법), 이완요법 등이 시행되는데 특히 이완요법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게 정 교수의 부연설명이다. 이완요법은 반복적인 집중(단어의 반복, 음향반복, 신체감각의 반복)과 떠오르는 생각에 대한 수용, 다시 집중하기 등을 이용한 치료가 시행된다.

또 단시간에 효과가 나타나는 치료가 아닌 만큼 충분한 치료 시간을 확보하고, 환자들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불면증과, 패닉, 불안 등을 세밀하게 관찰해 필요시 약물 등을 처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정 교수는 "일반적인 PTSD 증상 뿐만 아니라 성폭력 피해자들에서 자주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을 세밀히 관찰해 이차피해를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피해자에 대한 법률, 정서, 경제 분야 등에서 가용한 모든 지원을 끌어낼 수 있도록 타 분야 전문가들과 협력하고 무엇보다 진료시간에 충분한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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