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리베이트 근절정책 비웃는 변칙 뒷거래 활개...일부선 자정노력도

 

리베이트를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모두 처벌하는 리베이트 쌍벌제가 시행된 지 5년이 지났다. 여기에 리베이트 제공 사실이 2회 이상 적발될 경우 급여 목록에서 삭제시키는 더 강력한 리베이트 투아웃제도 시행되고 있지만 불법 리베이트 악습은 끊기지 않고 있다.

의약품 판매촉진을 목적으로 제공되는 금전, 물품 등 모든 경제적 이익을 말하는 리베이트. 이를 근절하기 위해 정부는 2009년 '리베이트 약가인하제도'를 시작으로 2010년 '리베이트 쌍벌제', 2014년 '리베이트 투아웃제' 등 규제를 점점 강화해 왔다.

제약업계 역시 의약품을 생산하는 회사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인 시선과 과당경쟁에 지쳐 공정거래 자율준수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제약협회 주도 하에 불법 리베이트 근절을 위한 기업윤리현장을 선포하는 등 투명경영, 윤리경영을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지난달 31일 서울서부지방검찰청의 리베이트 조사결과 발표는 제약업계 자정노력의 빛을 바래게 했다.

과거 업계는 리베이트 천국

지금처럼 R&D 투자가 많지 않고 백화점식으로 제네릭 의약품을 판매하던 과거에는 자사 제품 처방금액의 10~20%를 현금 또는 상품권, 주유권 등으로 제공하는 리베이트가 만연했었다. 병원에 필요한 물품을 지원하거나 직원 회식을 시켜주는 형태의 리베이트도 있었다. 신제품이 나오면 의약품 부작용에 대한 검사를 한다는 명목으로 영향력 있는 의사들을 대상으로 시판후 조사(Post Marketing Surveillance)를 해 사실상 처방 사례비를 지급하는 마케팅 정책도 흔한 리베이트 방법 중 하나였다.

리베이트가 매출상승으로 직결되다 보니 제품력보다는 회사의 리베이트 정책에 따라 제품 성공 여부가 달라지는 환경이었다.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처방금액의 100%를 다시 돌려주는 이른바 '100대100' 관행도 생겨났다.

리베이트 관행이 광범위하게 번지면서, 정부도 단속에 나섰다. 단순히 의료기관과 제약사들의 도덕적 문제를 넘어 리베이트 혜택이 국민이 아닌 의료인에게 돌아가고, 리베이트 금액이 약가에 전가돼 소비자와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을 주는 등 사회문제로 번지고 있다는 판단이다.

이후 정부는 정부합동 의약품 리베이트 수사단을 꾸려 단속을 강화하고 리베이트를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 처벌하는 쌍벌제, 리베이트 2회 적발 시 급여퇴출시키는 투아웃제를 시행하는 등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단속과 규제가 강화될수록 리베이트도 진화하고 있다. 서부지검 조사결과를 보면 A 제약사는 리베이트 제공 사실을 숨기기 위해 의사들에게 논문 번역료, 시판후 조사비용을 지급하는 형식을 취했다.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실제 의사들이 논문을 번역한 것처럼 회사가 논문을 번역해 두거나, 설문지를 허위로 작성해 뒀다. 또 설문조사 수당 명목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하면서 전직 임원이 설립한 설문조사기관을 통해 지급하기도 했다.

'100대100' 부활…지역·동문 단위로 네트워크 지원

업계에서는 검찰조사 결과 발표가 나온 이후 다소 주춤하겠지만 리베이트가 쉽게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실제로 이번 발표를 비웃듯 영업현장에서는 100대100 리베이트 정책이 부활한 것으로 알려졌다. 50개가 넘는 시알리스 제네릭이 쏟아져 나오면서 불거진 결과다.

국내 제약사 영업 담당자는 "국내 상위사에서 시알리스 제네릭을 30만원 이상 처방하면 그 금액만큼 지원해준다고 들었다"며 "예전 100대100 정책이 부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보다 더한 선지원 정책도 들려오고 있다. 국내사 관계자는 "임원급이 직접 거래처를 방문해 처방(예정)금액에 대해 3개월치를 선지원 해주고 있다"며 "100대100을 넘어선 100대300 정책이다. 한 곳에서 이 같이 나오면 공정경쟁을 할 수 없다"고 전했다.

지역 또는 동문 단위의 모임을 만들어 한 명의 대표자가 리베이트를 받아 나눠주는 네트워크 형태 리베이트도 생기고 있다. 대표자 한 명만 관리하면 나머지 거래처에서도 처방을 유도할수 있기 때문에 보는 눈이 많은 지금의 영업환경에서 맞춤형 리베이트라는 것이다.

국내사 한 영업사원은 "네트워크에 있는 병의원들을 보고 이해득실을 파악해 봐야겠지만 눈에 띄지 않고 한 명만 집중 케어하면 되기 때문에 삼엄한 환경에서 의사들도 회사측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고 귀띔했다.

CSO(영업대행사) 등을 통한 변칙적 리베이트도 활성화되는 모양새다. 국내사 임원은 "영업사원은 월급도 주고 일비도 줘야 하지만 CSO는 마진율의 몇 %만 더 주면 된다"며 "회사가 나서면 불법이고 영업사원은 배달사고가 날 수도 있는 데다 내부고발 우려도 있어 CSO가 낫다는 의견이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병원을 지원하던 방식에서 병원을 방문하는 환자를 위한 지원으로 리베이트 형태가 바뀌기도 했으며 자회사나 계열사를 통해 물품을 지원하는 교묘한 리베이트도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위제약사 자정 노력…“윤리경영 인증 도입 필요”

영업현장에서 리베이트가 종식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은 이르지만, 또 다른 한 켠에서는 자정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동아ST, 한미약품, 대웅제약, CJ, 녹십자, 중외제약, 유한양행, 제일약품, 종근당, 보령제약 등 상위 제약사들은 CEO 직속 또는 타 부서 소속으로 CP(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 전담부서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한미약품은 매월 초 전체 영업사원들을 소집해 CP 교육 및 운영지침에 대해 테스트를 하고, 조직 내 내부 고발시스템을 강화하기 위해 클린경영신문고를 활성화 했다. CP 위반 위험이 높은 영업활동에 대해 사전 점검하고 사후 모니터링까지 하는 2가지 형태의 모니터링도 진행 중이다. CP 규정 위반자는 견책부터 권고사직까지 강력한 징계를 함으로써 CP 정착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대웅제약은 정기교육, 신입사원 교육, 소장회의 시 교육 등 수시로 임직원을 대상으로 CP 교육을 하고 직원들에게 자율준수를 하겠다는 서약서를 받았다. 올 하반기에는 CP 운영체계를 강화하고 내부 CP 규정을 개정할 계획이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를 반영하듯 일각에서는 실제 리베이트 영업이 정화되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대학병원을 담당하는 국내사 영업사원은 "월 처방금액이 4억원 정도인데, 지난달 회사에 청구한 활동비는 26만원 정도"라며 "거래처마다 다르겠지만 리베이트 없이 영업이 가능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자정 움직임과 더불어 사후처벌 위주가 아닌 예방에 초점을 맞춰 리베이트 근절을 위한 제약사들의 자율적 참여를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의약품정책연구소 신광식 소장은 "수요자(의료인) 절대 우위의 시장이고 공급자(제약사)가 차별성을 갖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리베이트가 근절되기는 어렵다"며 "사후처벌보다 문제를 예방하는 대안을 마련해 자율적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신 소장이 제안하는 예방책은 '윤리경영 인증제' 도입이다. 윤리경영 실천 여부를 인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제약사들이 인증받을 수 있게 하자는 것.

또 윤리경영 인증을 획득한 제약사들만 국공립병원 등 의료기관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등 인센티브제도를 마련해 제약사들의 참여를 늘리고 병원측도 자정노력을 입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 외에도 리베이트 조사가 내부고발로부터 시작되는 만큼 손쉬운 고발시스템 구축, 내부고발자에 대한 보복금지 등에 대한 제도적 강구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신 소장은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계획을 제약협회 측에 제안했다"며 "소비자단체, 국회 등과 협력할 계획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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