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얼굴 / 뿌리 깊은 나무

잃어버린 얼굴 1895

 
암울했던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 중 하나. 명성황후의 이야기가 뮤지컬로 펼쳐진다.
여러 드라마나 소설에서 다뤄진 명성황후와는 달리 이 작품에서는 연약하고 또 한없이 외로웠던 인간 명성황후를 그린다. 대원군과의 대립, 백성의 외면 그리고 고종과의 갈등, 마지막까지 외롭지만 굳건하려 했던 인간 명성황후를 재조명한다. 이러한 독특한 시선은 무대에서 첨예한 갈등구조로 보여진다.

자칫 지루한 역사이야기는 매력적인 이야기로 그려진다. 이러한 이야기를 더 매력 있게 하는 것은 바로 넘버와 배우이다. 명성황후, 고종이 부르는 넘버들은 각각의 넘버 자체가 창작극임을 잊게 할 정도로 극적이고 또 드라마틱하다. 이러한 넘버는 주인공을 맡은 명성황후 역의 배우 차지연를 만나면서 더 매혹적으로 완성된다.

여성이 주인공인 극이지만 어떤 작품보다 주연의 역할이 크게 느껴진다. 고종과 흥선대원군 역할의 서울예술단 주역들도 탁월한 연기와 넘버를 선보인다. 여기에 30명에 가까운 예술단 배우의 군무와 합창이 더해져 넘버의 아름다움은 배가 된다. 우리 역사가 소재인 탓에 창은 물론, 굿까지 어우러지고 이번 재연에서는 오케스트라가 보강되면서 연주 또한 다채롭게 더해져 듣는 감동이 단연 돋보인다.

배우들의 열연과 웅장하고 드라마틱한 넘버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무대는 최대한 심플하게 꾸며졌다. 수직으로 움직이는 리프트 무대와 뒷 배경으로 투영되는 입체 영상은 아름다운 궁의 모습, 당시 왕가의 실제 사진을 대형액자에 투영해 단순하지만 강력한 힘을 보여준다.

명성황후의 꿈이나 대원군의 환국, 그리고 마지막 명성황후의 죽음은 마치 한편의 전시회를 보는 것처럼 강한 인상을 남긴다. 서울예술단 작품 중 세련미를 가장 극대화한 작품이기도 하다. 남녀노소 누구나 감상하기에 무리가 없고 예술단 작품인 탓에 티켓 가격도 비교적 저렴하다. 9월 10일까지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되고, 내년 라인업에서도 만날 수 있을 듯 하다(문의 서울예술단 580-1300, 예매 인터파크 1544-1555).
 

뿌리깊은 나무

 
문화가 가장 융성했던 세종 시대, 임금에게 개인적 원한이 있던 채윤이 북방에서 돌아와 겸사복이 돼 궐에 들어온다.

채윤이 세종을 만나 10년 전 고모 덕금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들으려 하는데, 이때 젊은 집현전 학사 장성수의 시체가 경복궁 후원의 우물 속에서 발견된다.

세종에게서 답을 듣지 못한 채윤은 범인을 잡으면 진실을 얘기해주겠다는 조건에 살인사건의 수사를 맡게 된다. 그렇게 채윤은 반인 가리온, 학사 성삼문과 함께 몇 가지 단서들을 바탕으로 범인을 추리하기 시작하지만 사건의 실마리를 풀기도 전에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살인이 이어진다. 사건은 점점 복잡해져 가리온이 살인자로 몰리며 범인을 종잡을 수 없을 무렵, 채윤은 세종이 그동안 비밀리에 추진했던 프로젝트에 대해 알게 된다.

그것은 새로운 시대에 맞는 백성을 위한 글자, 훈민정음의 창제이며 이제 곧 반포를 앞두고 있다는 사실. 새로운 격물의 시대를 열고자 하는 젊은 학사들과 이를 막으려는 정통경학파의 반격이 더 거세지면서 그들은 세종의 결심을 포기시키기 위해 왕의 침소 강녕전으로 향한다. 이 사실을 안 채윤은 세종을 구하러 강녕전으로 달려가고 그렇게 시대의 명분을 건 최후의 대결이 펼쳐진다.

동명의 드라마로 우리에게 친숙한 뮤지컬 뿌리깊은 나무가 다시 무대를 찾는다. 드라마와 소설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이유는 바로 스토리에 있다.

뮤지컬 뿌리깊은 나무의 가장 큰 매력도 스토리라고 할 수 있다. 세종의 한글창제는 후대인 우리에게 역사적으로 가장 존경받고 사랑받는 왕, 세종대왕을 남겼다. 하지만 사농공상의 계급 구분이 확실했던 조선시대에 문자를 통한 지식이란 일부 지배계층의 전유물이었다. 서민이 문자를 가지고 지식을 가지게 된다는 것은 지배세력에겐 큰 위기였을 것이다.

이 때문에 비밀리에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준비했을 것이다. 집현전은 세종대왕의 한글창제를 도왔다. 집현전 학사의 의문의 죽음으로 시작되는 스토리는 수사물의 성격을 띤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지만 자칫 딱딱할 만한 한글창제는 수사물로 포장되면서 매력적인 스토리가 된다. 수사는 무대에서 궁의 여러 장소들을 돌아가며 벌어진다. 범인을 추리하고 쫓는 탓에 추격신과 격투신도 등장한다. 이는 보는 재미와 생동감을 더한다. 여기에 글자를 모티브로 한 범인이 남긴 단서들은 무대에서 영상과 넘버로 함축적으로 보여진다. 스토리가 가진 힘이 무대 위에서 드라마나 소설이 갖지 못한 또 다른 매력을 가지는 이유다. 잃어버린 얼굴 1895가 다소 어둡고 무겁다면 뿌리깊은 나무는 생기 넘치고 또 웃음도 넘친다.

뿌리깊은 나무는 우리 이야기를 가장 잘 풀어내는 서울예술단의 작품이다. 안무와 넘버는 우리 가락과 몸짓에 기반된 부분이 많다. 의상과 무대는 세련된 심플함을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것의 틀 안에 있다.

여기에 초연부터 세종대왕을 연기한 베테랑 배우 서범석의 굵은 연기와 새로 채윤으로 투입된 송용진 배우의 합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남녀노소 특히 청소년이나 아동이 보기에도 무리가 없다. 무대 전면을 수사를 풀어가는 모티브로 활용하고 소품들도 다이나믹하게 활용하기 때문에 가급적 객석의 중앙 이후가 관람에 더 용이하다. 뮤지컬 뿌리깊은 나무는 한글의 날인 10월 9일부터 18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용에서 만날 수 있다. 박물관 관람과 함께 우리 역사를 음미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예매 인터파크 1544-1555).
 송혜경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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