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기술 발달로 임상적용 확대…성공률 높아

심각한 호흡부전 또는 순환부전이 발생한 환자의 심폐기능이 회복될 때까지 단기간 생명유지를 도와주는 체외순환장치 에크모(Extracorporeal Membrane Oxygenation, ECMO).

지난 메르스(MERS) 사태 때 인공호흡기만으로 산소포화도 유지가 어려운 중증 환자들에게 적용된 것으로 알려지며 높은 관심을 받았는데, 최근에는 소아 환자들에서 연달아 뛰어난 성적을 내고 있다. 임종 직전 최후의 치료방법으로만 여겨졌던 과거 인식과는 달리, 장비와 기술 발달에 힘입어 적용기준을 점차 넓혀가는 모습이다.


에크모 이송으로 익수사고 폐부전 환아 살려

19일 양산부산대병원은 물놀이 익수사고로 폐부전이 발생한 5세 환아를 에크모로 이송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익수사고 시 즉각적인 응급소생술을 통해 환자가 생존했더라도 폐 흡인으로 호흡부전이 유발될 경우 심한 저산소증 및 고이산화탄소증에 의한 심폐부전 또는 저산소성 뇌손상이 일어날 우려가 존재한다.

이 같은 환자들에게 저체온 치료와 동시에 뇌의 산소공급을 원활히 할 수 있는 에크모는 매우 유용한 치료수단이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에크모의 보급이 활발하지 않아 일부 지역 거점병원에서만 치료가 가능한 실정. 더욱이 바다, 강 등에서 주로 발생하는 익수 환자가 응급소생 후 입원하는 근처 병원에서 에크모 치료를 받기란 만무한 일이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에크모 전문 이송팀을 운영 중인 양산부산대병원은 익수 후 심한 폐부전이 발생했다는 연락을 받고 해당 환아가 있는 병원으로 직접 에크모 장비를 가지고 가서 환아에게 적용한 뒤 안전하게 병원으로 이송했다. 양산부산대병원 에크모센터로 옮겨진 환아는 집중적 중환자 관리를 받은 결과, 별다른 신체 손상 없이 퇴원할 수 있었다.

에크모 이송팀 팀장을 맡고 있는 손봉수 교수(양산부산대병원 흉부외과)는 "그동안 국내에서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5세 미만의 소아에서 병원 간 에크모 이송을 성공시킨 첫 사례"라고 의의를 밝혔다.

또한 "에크모를 이용한 안전한 환자이송과 치료의 원스탑 시스템이 이뤄진 덕분"이라며, "앞으로도 적극적인 에크모 이송팀 운영으로 고도의 의료서비스가 필요하지만 이송이 어려워 죽어가는 환자에게 가능한 많은 의료 혜택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전격성 심근염 소아, 10명 중 9명 생존

에크모를 활용한 국내 체외순환기술의 개선을 입증한 사례는 이뿐이 아니다.

연세의대 신홍주 교수(세브란스병원 흉부외과)는 '제12차 세계중환자의학회 학술대회(WFSICCM Seoul 2015)'에서 전격성 심근염(fulminant myocarditis)으로 심기능이 급격히 저하된 소아 환자들에게 에크모를 적용하고 생존율 증가를 입증, '젊은 연구자상(Young Investigator's Award)' 수상자에 선정됐다.

 

2013년부터 2015년 초까지 2년간 급성 심근염으로 내원한 환자 13명이 연구대상이었는데, 이들은 확장성 심근병증(DCMP)에 준해 에크모 치료를 받았다. 혈관접근경로는 목 부위 경정맥(jugular vein)에 도관을 삽입하는 방식이 적용됐으며, 치료과정 중 폐부종이 발생한 6명에게는 합병증 예방 차원에서 심방중격절개술(atrial septostomy)과 좌심실 도관삽입술을 시행했다.

그 결과 13명 모두 에크모 위닝(weaning)에 성공했으며, 심장이식 환자 2명을 포함 12명이 생존해 무려 92.3%의 생존율을 보였다<그림>.

물론 안전성 차원에서도 문제는 없었다. 신 교수에 따르면 엔테로바이러스(enterovirus)로 인한 뇌염 환자 1명만 최종 사망했으며, 이 역시 에크모 실패라기보다는 바이러스에 의한 뇌손상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보인다고. 그 외에는 2명에게서 경미한 신경증상이 관찰됐으며, 혈뇨를 제외한 출혈 합병증은 관찰되지 않았다.

생존율 90%를 넘길 정도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 연세의대 신홍주 교수

신 교수는 "동반질환이 없는 순수한 심근염 환자라면 3~4일 안에 에크모 위닝이 가능하다"며 "국내 에크모 치료기술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렀다. 에크모 시행 여부를 빠르게 판단하는 것이 환자 예후를 결정 짓는 관건"이라고 강조한다.

이번 연구에서는 기존 입원 환자를 제외한 모든 신환에게 중환자실에 입실한 즉시 에크모가 적용됐다. 즉 응급실에서 심근염으로 진단을 받은 시점으로부터 에크모 삽입까지 전 과정이 2~3시간 이내에 이뤄진 셈이다.

신 교수는 지난해 대한소아과학회지에 실린 논문(Korean J Pediatr 2014;57:489-495)을 예로 들며, "중환자실 입실 24시간 이후 에크모를 시행했던 환자들은 생존율은 30%대에 불과했다. 에크모를 시행할 계획이라면 가급적 빨리 시행하는 게 환자 예후에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출혈 합병증이 줄어든 점도 생존율을 높인 주요인으로 꼽았는데, 좌심실 도관삽입술 시행 시 대퇴동맥 접근방식(femoral approach)을 이용하거나 CRRT(Continuous Renal Replacement Treatment) 장비를 에크모 써킷(circuit)에 직접 연결하는 방식으로 출혈을 줄일 수 있었다는 것. 성인에 비해 체혈류량에 더욱 민감한 소아 환자에서 체액손실(volume loss)이 적은 만큼 아웃컴이 좋아진 것은 당연한 원리다.


"소아용 장비 지원 땐 성과 오를 것"

그러나 에크모 성적 향상에도 불구,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에크모 치료환경은 열악하다.

외과적 술기 자체가 워낙 어려운 데다 병원 전체 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다 보니 지원이 거의 없는 상황인데, 특히 소아용 장비가 공급되는 기관은 손에 꼽을 정도. 소아용 캐뉼라는 별도 수입이 되지 않아 성인용 캐뉼라 또는 작은 크기의 동맥카테터 등이 대용으로 시도되고 있다.

그러니 성인에서만큼 충분한 체외순환량을 확보하기 어렵고, 과도한 출혈로 이어지는 등 결과에도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크다.

신 교수는 "소아 에크모는 소아심장 환자들을 진료하는 임상의사들조차 극히 일부에서만 관심을 갖는 부분"이라면서 "이중관카테터(dual lumen catheter)와 같이 효과적인 장비가 도입되고, 장비사용에 대한 교육·훈련이 활발해진다면 더욱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성균관의대 양지혁 교수(삼성서울병원 흉부외과)도 "임상에서 새로운 의료장비를 사용하려면 식약처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소아 환자의 경우 더 안전한 기기가 개발되더라도 국내 시장 규모가 작아 허가를 받기까지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을 작은 의료기 회사에서 감당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미국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이미 허가가 난 장비라면 국내 절차를 간소화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 경험 부족으로 인해 에크모 의뢰가 늦어지거나 심지어는 생각조차 못하는 경우도 있고, 에크모 환자를 돌볼 수 있는 전문인력도 현 수가 체제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양 교수는 "소아 환자는 증례의 증가 폭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현재로써는 에크모가 필요한 환자가 발생하면 전문센터로 빨리 전원하는 게 최선"이라며 "심부전 또는 폐부전이 가역적이라고 예상되는 환자의 경우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시행할 여지가 많다. 성적도 지금보다 더 좋아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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