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제약사 설립, 필요성 의견 분분...제약사, "지원 선행돼야"

경제성이 떨어져 소외될 수 있는 필수의약품, 희귀의약품의 공급 중단을 막으려면 국영제약사 설립이 필요할까? 제약업계의 반대가 이어졌던 국영제약사(또는 공공제약사) 설립에 대한 주장이 학계에서 또 다시 제기돼 논란이 예상된다.

최근 한국보건경제정책학회 학술지에 게재된 '필수의약품에 대한 접근 보장과 국영제약사의 역할(교신저자 권혜영 하버드대 보건의학교실 교수)'에서는 해외의 국영제약사 운영 사례와 국내 필수의약품 공급 실태 등을 비교하며, 국영제약사 설립에 대한 필요성을 시사했다.

국내 의약품 정책 수단은 수요 보장 및 제도적 환경 조성에 집중돼 있고, 형식적 측면에서도 재원조달이나 규제 방식에 한정돼 있는데 필수의약품에 대한 접근 보장을 위해서는 직접 공급과 같은 보다 적극적인 수단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국영제약사 운영 국가 실태는?

국영제약사를 설립한 국가는 주로 중위소득국가로, 태국, 인도, 인도네시아 등은 필수의약품에 대한 접근을 정부가 보장하기 위해 국영제약사를 운영해왔다.

▲ 외국 국영제약사의 사례(출처 : 한국보건경제정책학회 보건경제와 정책연구 제21권 제1호, 메디칼업저버 재구성)

1966년 설립된 태국 GPO는 태국 제약 시장의 약 3.2%(매출규모 9위)를 점유하고 있다. 생산 품목은 HIV/AIDS 치료제(전체 매출액 대비 약 30%), 심혈관계 질환 치료제와 희귀의약품, 해독제 등이며, 이익금은 희귀의약품 생산, 대유행 상황 시 의약품 생산 등 공익을 위해 사용된다.

태국은 HIV/AIDS 치료제 스토크린(성분명 에파비렌즈)에 대한 가격 협상이 실패하면서 2006년 말 강제실시(compulsory licensing)를 시행했다. 플라빅스(성분명 클로피도그렐), 글리백(이매티닙) 등도 강제실시 품목이며, 이들 제품은 GPO가 직접 생산하거나 인도에서 저렴한 제네릭을 수입해 공급했다.

인도는 1954년 최초의 국영제약사 HAL을 설립한 이래로 2013년까지 총 14개의 국영제약사를 운영해왔다. 이중 가장 큰 규모의 IDPL은 필수의약품의 자급자족을 달성하고자 설립됐으며 생산품목은 항생제, 항진균제, 항말라리아제 등 87품목이다.

인도가 제네릭 시장 선도 국가로 변모한 것에는 국영제약사의 역할도 상당 부분 차지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2005년까지 물질특허를 인정하지 않아 특허 의약품의 제네릭 생산이 가능했고, 국영제약사가 과학기술 인력 양성 및 필요한 인프라 구축 등 기반을 닦은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

인도네시아의 국영제약사는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 의약품 생산 기반이 없는 상항에서 설립됐는데, 현재 총 4개의 국영제약사가 있으며 3개는 제네릭, 1개는 백신 생산을 담당한다.

인도네시아의 의약품 시장은 국내 생산이 소비량 대부분을 충족시키고 수입량은 낮은데, 높은 자급률에는 국영제약사가 상당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필수의약품 공급 주도해야"

이어 논문은 국내 의약품 공급 관리체계가 유기적·통합적으로 관리되지 않으며, 물리적·경제적 접근용이성 측면 등에서 제약이 발생한다고 진단했다. 정부가 필수의약품을 정의하고 안정적 공급을 적극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영제약사는 원료 및 완제 의약품의 직접생산, 위탁생산, 수입을통해 의약품의 생산, 공급에 개입할 수 있으며, 이러한 국영제약사의 관리대상 의약품은 영리 민간제약사들이 기피하는 필수의약품 중심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또 공급 거부가 발생했던 희귀·필수의약품에 대해서도, 국영제약사를 통한 병행수입 또는 강제실시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부연했다.

"희귀·필수약제 생산 제약사 지원이 우선"

반면 제약업계는 원활한 희귀·필수의약품의 공급을 위해 제약사에 대한 지원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 지배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국가 예산을 투입해 공공제약사를 설립한다면 이에 대한 생산시설 구축이나 수입확대 등에 추가 예산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면서 "이보다 필요한 의약품에 대한 지원 확대를 통해 기존 시설과 국내 제약사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또 공공제약사에서 꼭 필요한 희귀·필수의약품을 생산한다면 제약사는 해당 품목을 취하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현재는 제약사가 품목 취하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장치들이 있고, 손해를 감수하고 끌고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

다른 업계 관계자는 "지금도 출혈경쟁을 벌이는 상황이기 때문에 정부 차원의 제약사 설립은 경계되는 사안"이라며 "제약산업의 이익추구를 보장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국내에서 국영제약사 설립은 과거 에이즈치료제 공급 중단 사례와 수익성 저하로 의약품이 생산 중단된 몇몇 사례가 발생했을 때 언급됐으며, 2013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의약품 생산 및 공급의 공공성 강화방안'에 대한 연구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정부에 건의했다.

이번 한국보건경제정책학회 학술지에 게재된 '필수의약품에 대한 접근 보장과 국영제약사의 역할' 보고서에는 당시 공단 연구보고서의 책임연구원이었던 양봉민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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