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대한내분비학회 가이드라인 개정…국내 역학조사도 진행중

국내 쿠싱병(cushing's disease) 진료에 대대적인 변화가 예고됐다.

최근 대한내분비학회지에 공개된 2015년 쿠싱병 진단 및 치료 임상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개정 취지가 뚜렷하다(Endocrinol Metab 2015;30:7-18). 희귀질환으로 지정된 쿠싱병의 진단과정을 간소화하고 정확도를 높이는 동시에 치료효과를 끌어올린 신약의 사용을 확대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여기엔 글로벌 임상결과를 통해 얻어낸 최신 근거들이 토대가 됐다.

일반적으로 쿠싱병은 스테로이드의 장기간 과다복용 등으로 발생하는 쿠싱증후군과는 원인부터가 다르다. 뇌하수체에 생긴 종양이 쿠싱병의 직접적인 유발요인.

문제는 따로 있다. 쿠싱병의 진단과 치료가 지체되면 코르티솔 과다분비로 인해 심각한 합병증이 생길 수 있기 때문.

질환 특성상 고코르티솔혈증(hypercortisolism)이 지속되면 고혈압·심근경색·심부전·뇌혈관 장애 등과 같은 심혈관질환이나 혈전색전증, 근골격계장애, 면역억제, 당뇨병 발생의 위험이 증가하는 것과도 관계가 깊다. 이러한 이유로 쿠싱병의 조기진단과 치료는 중요할 수밖에 없다.

▲ 새로운 이슈가 공개되는 자리는 언제나 많은 미디어의 관심을 받는다. 사진은 올해 미국당뇨병학회(ADA 2015) 연례학술대회 모습. 사진ⓒ메디칼업저버 원종혁 기자

일주일 걸리던 진단검사, 이틀이면 '끝'

가장 큰 변화는 진단과 치료에서 두드러진다. 먼저 확진 과정의 간소화가 이번 진료지침의 핵심 키워드다.

기존 방식은 쿠싱병을 감별하는 데에 일주일 정도가 소요됐다. 저용량 및 고용량 덱사메타손 억제검사가 대표적 사례. 이틀간 의심환자의 호르몬 기저값을 측정한 뒤 3~4일은 저용량, 5~6일째는 고용량 덱사메타손을 투약해 환자의 소변에서 코티솔이 얼마만큼 억제되는지를 알아보는 방식이다.

저용량 및 고용량 덱사메타손에 억제가 안 되면 부신에 종양이 발생한 쿠싱증후군으로 간주하고, 고용량에서 억제가 되면 뇌하수체 선종을 의심해 쿠싱병을 선별, 확진하는 검사법이 가장 고식적이었던 것.

그러나 이번 가이드라인은 불필요한 요소들을 걷어냈다. 새로 추가된 항목을 살펴보면 고용량인 덱사메타손 8mg을 밤 10시에 투약한 후 다음 날 아침 8시에 검사해 혈중 코르티솔이 기저값 대비 50% 이상 감소하거나 혈청 코르티솔이 5ug/dL 미만으로 억제가 안 되면 쿠싱병으로 확진할 수 있다.

가이드라인의 교신저자인 경희의대 김성운 교수(내분비대사내과)는 "기존 선별·확진검사는 번거로운 과정과 함께 진단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의견들이 불거져 이를 개선하고자 보다 간편하고 확실한 대응방안을 고민하게 됐다"고 개정의 취지를 밝혔다. 이 같은 변화는 지난 2000년 국내 쿠싱증후군 환자를 대상으로 한 전국조사결과를 이용해 쿠싱병의 진단 항목을 부분적으로 손 본 결과물이기도 하다.

개정된 쿠싱병 진단 기준에 따르면 확진검사법으로는 △Sella MRI △아래바위정맥동굴추출검사(IPSS): 부신피질자극호르몬 유리호르몬(CRH) 사용 혹은 종양 중심화(centralization)에 데스모프레신, 도뇨관 삽입 확인에 프로락틴 평가 △8mg 야간 덱사메타손 억제검사(DMST) 등이 포함됐다.

또 선별검사법 다섯 가지도 제시됐다. △ 주간 혈중 ACTH 및 코르티솔 변화: 혈중 ACTH와 혈청 코르티솔 수치 증가 △24시간 동안 소변의 유리 코르티솔(UFC) 수치 증가 확인 △야간 타액 코르티솔 증가 비율(night salivary cortisol): 아직 적용 안됨 △ 야간 덱사메타손 억제검사(1mg overnight dexamethasone suppression test, DMST) 권장: 다음날 아침 혈중 코르티솔 1.8ug/dL 미만 억제 안 될 경우 △ 데스모프레신(desmopressin) 유발 검사(TSA 시행 후 유용): 기저값에서 50% 초과 증가할 경우 등이다.

처방 못하는 쿠싱병 특효약

그렇다면 치료에선 어떠한 변화가 있을까. 잔류 종양이 발견되거나 재발한 쿠싱병 환자에서 2차 치료옵션으로 감마나이프방사선수술(GKS)이나 사이버나이프(CyberKnife) 등과 같은 방사선 외과적 수술법을 제시한 것도 변화의 일부지만 무엇보다 승인이 보류된 신약의 필요성을 강조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추천된 약물은 소마토스타틴 수용체 아형 5에 작용하는 파시레오타이드(제품명 시그니포). 질환의 원인이 되는 부신피질자극호르몬(ACTH)의 분비를 특이적으로 억제하는 약물로, ACTH의 과도한 분비를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다는 것에 높은 점수를 받았다. 기존 치료제들은 갯수는 많았지만 해당 환자에서 부분적인 효과만을 보였던 상황.

김성운 교수는 "파시레오타이드는 인슐린과 인크레틴의 분비까지 억제하기 때문에 고혈당증 발생에 일부 주의가 요구되지만, 글로벌 대규모 무작위 3상임상인 PASPORT-CUSHINGS 결과에서 이미 효과와 안전성은 입증됐다"며 파시레오타이드 0.3mg, 0.6mg, 0.9mg은 '수술이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없거나 수술에 실패한 성인 쿠싱병 환자 치료'에 사용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약물은 아직 국내서 사용할 수 없다. 이미 효과가 입증된 약물임에도 희귀질환의 특성상 인식이 부족한 탓인지 승인이 보류돼 임상연구에 등록된 환자 외에는 처방이 불가한 것.

이에 김 교수는 "현재 가이드라인에 명시된 대부분의 약제는 효과나 안전성을 이유로 사용에 제한이 많다"며 "파시레오타이드와 관련해 이미 우리나라도 참여한 글로벌 임상연구결과 충분한 근거 데이터도 확보됐지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결정을 못내리고 있다는 것은 실제 특효약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용 못하는 의료의 난맥상(亂脈相)을 보여주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기존 치료제, 가짓수 많지만 사용은 '제한'

이번 가이드라인이 신약인 파시레오타이드를 강조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기존 치료제들 대부분은 희귀질환 치료제들로 부분적인 효과와 함께 부작용이 많다는 한계가 지적됐다.

이를테면 파시레오타이드와 함께 병적으로 증가한 ACTH를 억제하는 약물로 카베골린(제품명 도스티넥스정), 테모졸로마이드(제품명 테모달)가 명시됐다. 하지만 카베골린은 효과 이면에 약물의 지속적인 투여로 소위 약효가 감소하는 도피현상(escape phenomenon)이 관찰됐으며, 테모졸로마이드 역시 공격적인 양상을 보이는 쿠싱병에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고려되지만 아직 우리나라엔 승인을 받지 않은 상황이라고 기술했다.

부신 호르몬 차단 약물로 제시된 미토탄(제품명 리소드렌)을 비롯, 케토코나졸, 메티라폰, 에토미데이트, 최근에 개발된 LCI699 등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미토탄의 경우 한국희귀의약품센터(KODC)를 통해 구입해야 하며, 메티라폰은 아직 국내에서 허가받지 못했다. 케토코나졸 역시 주요 부작용으로 간독성, 소화계 장애, 남성에서 성선기능저하증 등이 거론돼 현재 미국과 유럽에서는 생산이 금지됐다.

글루코코르티코이드 수용체 길항제인 미페프리스톤은 프로게스테론의 경쟁적 저해제로 이미 경구용 피임약으로 유명하지만 다양한 문제가 따른다. 약물 모니터링에 생화학적인 기준이 없다는 점과 미페프리스톤을 과다복용할 경우 코르티솔결핍증(hypocortisolism), 고혈압의 악화 혹은 저칼륨혈증, 자궁내막증식증 등이 보고된다는 것.

한편 김 교수는 국내서 해당 질환에 대한 인식을 높이자는 데 이번 가이드라인 개정의 취지를 밝혔다. 그는 "현재 내분비학회와 신경내분비연구회 공조로 쿠싱병의 국내 역학조사를 실시 중이며 작년 하반기 시작된 연구는 올해 연말께 발표를 앞두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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