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 2]대표선수들의 영역 확장, 아스피린편

▲ 대표선수들의 영역 확장...항암치료 빗장도 열까

2013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들의 사망원인 1위는 '암'이며, 사망자 10명 중 3명은 암에 의해 사망했다. 이처럼 암으로 인해 죽는 환자가 많아지면서 예방에 대한 관심도 높다.

하지만 암을 예방하기 위한 방법은 올바른 생활습관, 규칙적인 운동뿐이다. 게다가 암을 예방할 수 있도록 허가된 약물도 없다.

암사망자는 증가하는데 딱히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보니 많은 전문가의 관심은 기존 약들의 새로운 암예방 효과를 찾아내는 일이다. 그렇게 찾아낸 약물이 바로 전 세계적으로 많이 처방되고 있는 아스피린, 스타틴, 메트포르민 등이다.

개발된 지 120년이나 된 아스피린이 대장암과 위암에 예방효과가 있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전에 밝혀졌고 최근에는 자궁경부암을 예방한다는 연구가 나오기도 했다. 이렇듯 아스피린이 암예방효과가 있다는 연구가 꾸준히 나오자 일부 암관련 학회에서는 매년 새롭게 업데이트된 내용을 발표할 정도다.

당뇨병의 1차 약제인 메트포르민도 전립선암을 비롯해 예후가 좋지 않은 췌장암에서도 효과를 보인다는 연구가 있다. 국내 연구진도 몇 년 전 메트포르민의 위암예방효과를 발표하면서 주목을 끌었다.

심혈관질환 환자라면 누구나 복용하고 있는 스타틴도 다양한 고형암에 대해 효과가 있는 것으로 전 세계 연구진에 의해 발견됐다. 특히 대장암, 전립선암, 유방암, 췌장암, 폐암, 갑상선암 등 암종도 다양하다.

이러한 연구를 근거로 많은 전문가는 적어도 세 가지 약제는 암예방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문제는 이러한 효과를 임상에 적용하는 부분이다.

무작위 대조군 연구가 아닌 메타분석을 통해 발견한 것이라서 가능성으로만 해석을 해야지 임상적용은 한계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최근 학문에서 메타분석의 유용성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RCT가 아니라서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번 특집호에서는 이러한 약물들이 가진 항암예방 효과를 자세히 살펴보고 임상적 적용의 문제를 전문가들의 입을 통해 들어봤다.
 

1. 스타틴편

2. 아스피린편

3. 메트포르민편

 

 

아스피린은 인류 역사상 처음 개발된 합성의약품으로, 상당히 긴 역사를 자랑한다.

1899년 독일 바이엘사에서 류마티스관절염 환자를 위한 해열진통제로 시판된 지는 120년에 미치지 못하지만, 그 뿌리를 더듬어보면 약 4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B.C 1543년 이집트에서 아스피린의 원재료격인 버드나무 껍질을 의약품으로 활용했다는 기록이 최초인데, B.C 400년경에는 그리스 의학자 히포크라테스도 해열 목적으로 버드나무와 포플러나무 껍질을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해열진통 작용이 버드나무 껍질에 든 '살리실산(salicylic acid)' 성분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인 1800년대에 이르러서다.

스웨덴 카롤린스카연구소의 베리스트룀(Sune K. Bergstrom) 박사와 사무엘손(Bengt Ingemar Samuelsson) 박사, 영국의 베인(John Robert Vane) 박사(웰컴연구소 연구개발소장)는 아스피린 속 프로스타글란딘(prostaglandin)의 통증조절 기전을 규명해 198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아스피린의 진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본래 개발 목적이었던 해열·진통·소염 작용을 넘어 심혈관질환이나 뇌졸중 예방으로까지 적응증을 넓힌 것. 논란의 소지는 있지만 대장암을 중심으로 암예방 혜택도 차근차근 근거를 쌓아가는 중이다.


△ 심혈관질환 예방효과 근거 '탄탄'...위장관 출혈 우려도

아스피린의 심혈관질환 예방 효과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미국심장학회(ACC)와 미국심장협회(AHA), 유럽심장학회(ESC) 등 수많은 국제가이드라인은 급성관상동맥증후군(ACS)을 경험한 환자들에게 재발 또는 혈전생성 위험을 줄이려면 단독 또는 클로피도그렐과의 병용요법을 통해 저용량 아스피린을 복용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예방적 아스피린 투여와 관련 위장관출혈 등 부작용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된다.

진통이나 염증 치료를 위한 경우보다 투여용량은 낮지만 복용기간이 길다는 것. 이러한 이슈는 2000년대 초 약물방출스텐트(drug eluting stent)가 도입되고 아스피린의 항혈소판요법이 활발해짐에 따라 더욱 불거지게 됐다(Circulation 2001;103:1967-1971).

아스피린은 프로스타글란딘 합성을 억제하는 과정에서 TXA2(thromboxane A2) 생성에 관여하는 COX-1 효소를 불활성화시켜 항혈소판 효과를 나타내는데, 이때 위장관 점막의 프로스타글란딘 농도가 감소하면서 위장관 점막을 손상시킨다(Scand J Gastroenterol Suppl 1996;220:124-127).

2001년 발표된 리뷰논문(Br J Clin Pharmacol 2001;52:563-571)은 심혈관질환 예방을 위한 아스피린 복용이 상부위장관계 합병증을 2~3배가량 증가시키지만 손상 정도는 아스피린의 용량과 병용약물, 환자의 위험요인 등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위험군은 득보다 실..."저용량이라도 상시복용 자제"

이와 관련 2008년 ACC는 저용량 아스피린 복용군의 위장관 합병증 발생률이 2~4배가량 높고, 병용약물에 따라 위험도가 증가한다는 전문가 합의안을 발표했다(J Am Coll Cardiol 2008;52:1502-1517).

이후부터는 저용량이라도 아스피린을 매일 복용할 경우 위장관 또는 뇌출혈 발생 위험이 증가하기 때문에 심혈관계 고위험군이 아니라면 상시 복용을 자제해야 한다는 데이터들이 누적되고 있다(JAMA 2012;307:2286-94).

즉 환자 개인에 따라 아스피린 투여로 인한 득과 실을 따져 복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게 현재로서의 결론.

올해 초에는 심혈관질환 위험이 없는 당뇨병 환자가 아스피린을 복용하면 오히려 허혈성 뇌졸중 발생률을 73% 높인다는 국내 연구결과도 나왔다.

당시 연구를 주도한 서울의대 박병주 교수(예방의학교실)는 "많은 국민이 아스피린을 심장병 약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선별적인 복용이 필요하다"며 "심혈관질환 예방을 위해 아스피린을 복용할 경우 가족력 등 위험요인과 아스피린 저항성을 고려해 임상의의 종합적인 판단에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 장기복용 시 암 발생·사망률 감소 가능성 제기

 

2000년대 이후부터는 심뇌혈관질환뿐 아니라 아스피린의 암 예방 효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모양새다.

저용량 아스피린을 장기간 복용함으로써 암 발생을 낮출 수 있다는 게 주요골자. 이러한 주장은 대부분 관찰연구나 메타분석, 전임상 결과에 기반한 것으로 근거수준이 낮지만, 대장암, 피부암, 유방암, 자궁경부암 등 다양한 암종에서 관련 데이터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위장암·대장암 등 관련 데이터 봇물

아스피린의 1차예방 효과를 두고는 대장암을 비롯한 기타 위장관암이 대표적으로 거론된다.

이들 암종은 염증반응이나 전이억제 기전 등에 아스피린이 관여함으로써 암 발생을 억제하고 생존율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옥스퍼드의대 Rothwell PM. 교수팀(뇌졸중예방연구센터)은 저용량 아스피린을 5년 이상 장기 복용한 군에서 대장암 발생률이 감소했다는 기존 논문에 착안, 암사망률을 낮추는 데도 효과가 있는지 조사했다(Lancet 2011;377:31-41).

혈관사건 예방 목적으로 아스피린을 복용한 환자군과 비복용군을 비교했던 8개 무작위대조임상(RCT)을 통합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아스피린 복용군에서 암사망률이 21% 낮았다(95% CI, 0.68-0.92, P=0.003).

특히 아스피린 복용 기간이 5년 이상이었던 7개 연구(2만 3535명)에서는 전체 암사망률이 34%(95% CI, 0.50-0.87; P=0.003), 위장관암의 경우 54%(95% CI, 0.27-0.77; P=0.003) 감소해 뚜렷한 복용 혜택을 보였다. 연구팀은 아스피린을 4~8년간 복용하면 식도암, 췌장암, 대장암, 위암, 폐암, 전립선암, 방광암, 신장암 등 8가지 이상의 암종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후 미국암학회(ACS)는 1997년부터 2008년까지 무려 11년간 성인 남녀 10만 139명을 추적한 결과를 통해 "5년 동안 매일 아스피린을 복용한 이들에서 소화기암 발생률이 40%, 전체 암사망률이 16% 감소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J Natl Cancer Inst. 2012;104:1208-1217).

한편 영국 퀸매리의대 Jack Cuzick 교수팀(암예방센터)은 일반 인구군에 대해 아스피린의 암 1차예방 효과를 입증한 연구로 주목을 받았다(Ann Oncol 2015;26:47-57).

특정 질환자가 아닌 심혈관질환, 암 등의 발병 위험도가 높지 않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저용량 아스피린의 혜택, 특히 암 예방 효과가 위해성보다 뛰어나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은 처음이다. 아스피린을 장기간 복용할 경우 위장관출혈, 뇌출혈 등 유해반응 위험이 증가하긴 하지만, 확률적으로 보면 복용하는 편이 더 유리하다는 논리다.

Cuzick 교수는 "50~65세 성인이 매일 아스피린 75mg을 10년 이상 꾸준히 복용하면 대장암과 위암, 식도암 발병률이 최대 35%, 사망률이 50%까지 감소해 출혈 위험 대비 심뇌혈관질환, 암 예방 혜택이 더 높다"고 밝혔다.


난소암·자궁경부암 등 여성암서도 긍정적 데이터 나와

여기에 난소암이나, 자궁경부암, 유방암 같은 여성암들도 아스피린의 1차예방 효과에 힘을 싣는다.

지난해 미국립암연구소(NCI)는 저용량 아스피린을 매일 복용하는 여성들의 난소암 발생 위험이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20% 낮다(95% CI, 0.67-0.96)는 연구결과를 공개했다(J Natl Cancer Inst 2014;106:djt431). 복용 빈도와 투여 용량에 따라서는 난소암 발생률이 최대 34%까지도 감소함을 보여주고 있다(95% CI, 0.53-0.83).

이렇듯 아스피린의 긍정적 데이터에 힘입어 아세트아미노펜 같은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NSAIDs)들도 암 예방 효과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설득력이 약하다.

얼마 전 미국 로스웰파크암연구소(Roswell Park Cancer Institute) Kirsten B. Moysich 박사(암예방통제실)는 아스피린을 자주 또는 장기간 복용한 여성에서 자궁경부암 발생률이 최소 47%(95% CI, 0.29-0.97), 많게는 54% 낮다(95% CI, 0.29-0.97)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J Low Genit Tract Dis 2015;19:189-93).

그러나 아세트아미노펜과 자궁경부암 사이에서는 아무런 연관성을 밝혀내지 못했다.

동물실험이긴 하지만 아스피린이 유방암 세포의 성장을 억제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미국 캔자스시티 재향군인병원 Sushanta K. Banerjee 박사팀은 유방암에 걸린 쥐 20마리 중 절반에게만 보름 동안 매일 아스피린을 투여했더니 종양이 평균 47% 줄어들었다고 보고했다(Lab Invest. 2015;95:702-17).

또한 이번 연구에서는 열흘 동안 아스피린을 투여한 뒤 암세포에 노출시킨 쥐들이 대조군보다 암세포가 훨씬 덜 자란 것으로 확인됐다. 유방암의 발암원인이 되는 TGF-β 같은 분자표적과 관련이 있다는 설명인데, 유방암 예방 가능성도 시사한다.


"동양인 뇌출혈 위험 커...조심스런 접근을"

수많은 데이터들에도 불구, 아스피린이 명백한 암 예방약물로 자리매김하기에는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출혈 위험을 상회할 만큼 1차예방 효과가 충분한가에 대해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 국립암센터 명승권 박사

미국예방서비스태스크포스(USPSTF)는 2007년 성명서에서 "매일 500mg 이상의 고용량 아스피린을 10년 이상 복용했을 때 대장직장암 발생의 상대 위험이 22%가량 감소된 것으로 조사됐지만 10년간 아스피린 장기복용 효과를 평가했던 여성건강연구(WHS)에서는 대장암 감소 효과를 밝히는 데 실패했다"며 "출혈의 위험성을 감안할 때 대장직장암의 1차예방에 아스피린을 권고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특히 한국인은 서양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뇌출혈 위험이 높다고 알려져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국립암센터 명승권 박사(가정의학클리닉)는 "아스피린의 암예방 효과를 입증한 논문이 대부분 관찰연구인 데다 출혈 위험도 대비 암 발생 감소 효과도 미미하다"면서 "아직까지 일반인들에게 암 예방을 위한 아스피린 투여를 권장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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