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 3]대표선수들의 영역 확장. 메트포르민편

대표선수들의 영역 확장, 항암치료 빗장도 열까?
2013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들의 사망원인 1위는 '암'이며, 사망자 10명 중 3명은 암에 의해 사망했다. 이처럼 암으로 인해 죽는 환자가 많아지면서 예방에 대한 관심도 높다. 하지만 암을 예방하기 위한 방법은 올바른 생활습관, 규칙적인 운동뿐이다. 게다가 암을 예방할 수 있도록 허가된 약물도 없다.
 
암사망자는 증가하는데 딱히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보니 많은 전문가의 관심은 기존 약들의 새로운 암예방 효과를 찾아내는 일이다. 그렇게 찾아낸 약물이 바로 전 세계적으로 많이 처방되고 있는 아스피린, 스타틴, 메트포르민 등이다.
 
개발된 지 120년이나 된 아스피린이 대장암과 위암에 예방효과가 있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전에 밝혀졌고 최근에는 자궁경부암을 예방한다는 연구가 나오기도 했다. 이렇듯 아스피린이 암예방효과가 있다는 연구가 꾸준히 나오자 일부 암관련 학회에서는 매년 새롭게 업데이트된 내용을 발표할 정도다.
 
당뇨병의 1차 약제인 메트포르민도 전립선암을 비롯해 예후가 좋지 않은 췌장암에서도 효과를 보인다는 연구가 있다. 국내 연구진도 몇 년 전 메트포르민의 위암예방효과를 발표하면서 주목을 끌었다.
 
심혈관질환 환자라면 누구나 복용하고 있는 스타틴도 다양한 고형암에 대해 효과가 있는 것으로 전 세계 연구진에 의해 발견됐다. 특히 대장암, 전립선암, 유방암, 췌장암, 폐암, 갑상선암 등 암종도 다양하다.
 
이러한 연구를 근거로 많은 전문가는 적어도 세 가지 약제는 암예방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문제는 이러한 효과를 임상에 적용하는 문제다. 무작위 대조군 연구가 아닌 메타분석을 통해 발견한 것이라서 가능성으로만 해석을 해야지 임상적용은 한계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최근 학문에서 메타분석의 유용성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RCT가 아니라서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번 특집호에서는 이러한 약물들이 가진 항암예방 효과를 자세히 살펴보고 임상적 적용의 문제를 전문가들의 입을 통해 들어봤다. 
 
1. 스타틴편
2. 아스피린편
3. 메트포르민편

제2형 당뇨병 환자의 암 발생률은 일반성인보다 30% 정도 높은데, 비만, 고혈당, 고지혈증, 고인슐린혈증 등이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암 발생의 위험인자와 정확한 기전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은 상태.

이런 상황 속에서 당뇨병 치료제의 '1순위' 자리를 놓치지 않는 메트포르민(metformin)이 당뇨병 환자에서 동반되는 암 종양을 억제하는 것은 물론, 환자의 생존율을 높이는 데도 일조한다는 연구결과들이 속속 발표되면서 학계는 '기대반 의심반'으로 약물의 새로운 효능 발견을 함께 지켜봤다.

전립선암 세포 성장 억제

 

메트포르민의 항암효과를 증명해 전문가들의 이목의 끈 대표적인 연구는 캐나다 맥길대학 Michael Pollak 교수팀이 발표한 연구다.

Pollak 교수팀이 2012년 미국 시카고에서 개최된 미국암연구학회(AACR) 학술대회에서 메트포르민이 전립선암 종양 성장을 억제하고, 초기 췌장암 환자의 수명을 연장시키는데 효과적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연구팀은 전립선절제술을 받기 전 상태인 전립선암 환자 22명에게 하루 3회씩 메트포르민 500㎎을 투여해 약물이 암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지 살펴봤다. 약 41일간 전립선암 환자 22명에게 메트포르민을 투여한 후 생검조사를 실시한 결과 메트포르민을 복용한 환자에서 전립선암 종양 세포 성장이 억제됐음이 확인됐다.

메트포르민은 간에서 생성되는 포도당을 감소시키고 혈류를 타고 순환하는 포도당을 제거함으로써 혈당이 지나치게 올라가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

또 다른 저자인 캐나다 마가렛공주병원 Anthony Joshua 교수는 "당뇨병 환자에서 메트포르민의 암 억제 효과가 가장 크다. 또 당뇨병 발병 위험도가 높은 암 환자일수록 메트포르민에 대한 치료 반응이 높다"면서 "하지만 메트포르민의 암 억제 효과의 정확한 요인은 알 수 없다. 다만 약물이 혈중 인슐린 수치를 낮추면서, 전립선암 세포의 성장을 억제하는 데 기여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만 할 뿐"이라고 말했다.

초기 췌장암 환자 수명 연장

 

캐나다 맥길대학 연구팀이 전립선암 억제 효능을 밝혔다면, 이번에는 미국 텍사스대학 연구진이 미국 초기 췌장암 진단을 받은 환자에서도 메트포르민 처방이 긍정적으로 검토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미국 텍사스대학의 앤더슨 암 센터 Navid Sadeghi 교수팀이 당뇨병을 동반한 췌장암 환자 302명을 분석한 결과 대부분 당뇨병과 췌장암이 동시에 발병했는데, 이들 가운데 117명이 메트포르민을 처방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결과를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메트포르민군 가운데 30%가 2년 이상, 위약군은 15.4%만이 생존했다. 또 메트포르민군이 위약군과 비교했을 때 암 사망 위험도가 31% 낮았다(Clinical Cancer Research  March 31, 2012).

전 세계 전문가들은 두 연구결과를 두고 긍정적인 평을 쏟아냈다.

미국 룸바르디 종합 암 센터 Michael Pishvaian 박사는 "메트포르민이 혈당수치를 낮추는 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암 종양 세포 성장을 억제하는 역할도 함께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논평했다.

또 일부 전문가는 "기존에 동물 실험을 통해 확인된 메트포르민의 암 억제 효과를 사람에게 적용한 사례라는 점만으로도 그 의의가 있다"면서 "혈당수치를 낮추는 메트포르민의 효능을 이용해 당뇨병 환자에서 동반되는 암종별에 따라 메트포르민을 맞춤형식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메트포르민의 항암효과는 과장됐다고 주장하는 연구결과가 잇따라 등장하면서 전문가들의 부푼 기대감도 가라앉는 듯 했다.

"암 환자 생존율 높이지 못한다" 주장도 

 

영국 연구진이 당뇨병 환자 10만여 명을 무작위로 추려내 연구한 결과 메트포르민의 항암효과가 미미한 수준에 그친 것이다(Diabetes Care June 4, 2014). 

영국 옥스포드대학 Despoina Capothanassi 교수팀이 영국내 제2형 당뇨병 환자 중 1년 이내에 메트포르민이나 기타 경구혈당강하제를 복용한 환자 9만 5000여 명의 데이터를 비교·분석했다.

연구팀이 약 5.1년 동안 추적·관찰한 결과 암으로 진단받은 환자는 3805명, 이 중 5만 1000명(54%)이 메트포르민을 복용했고, 1만 8000여 명(19%)은 설폰요소제(SU)를 복용했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는 메트포르민군과 SU군에서 항암효과는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SU와 비교했을 때 메트포르민의 암 발병 위험도가 전체암은 0.96배 대장암은 0.92배 전립선암 1.02배 폐암에서 0.85배 마지막으로 폐경후 발병한 유방암은 그 위험도가 1.03배였다.

췌장암 역시 메트포르민이 암환자 생존율을 높이지 못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미국 메이요클리닉 암센터 Roongruedee Chaiteerakij 교수팀이 지난 4월 18일부터 22일까지 열린 2015년 미국암연구협회(AACR) 학술대회에서 췌장암 환자 생존기간을 연장시키지 못한다고 밝혀 눈길을 끈 것.

연구팀은 메이요 클리닉에서 암 중개연구를 위해 개발한 Specialised Programmes of Research Excellence(SPORE)에 등록된 췌관 선암종(pancreatic ductal adenocarcinoma, PDAC) 환자 1360여 명의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분석했다.

연구는 메트포르민 복용군, 비복용군, PDAC 진단을 받은 뒤 30일 이후 메트포르민 복용군 등으로 분류한 뒤 메트포르민이 암 생존율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비교·분석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그 결과 메트포르민을 복용한 환자는 암 진단 후 생존기간이 292일로, 복용하지 않은 이들의 생존기간이 308인 것과 비교했을 때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연구팀은 "절제가 가능한 암 진단을 받은 413명은 생존기간이 782일로 메트포르민을 단 한 번도 복용한적이 없는 환자군의 생존기간보다 길었지만, 만족할 만한 결과는 아니였다"고 밝혔다.

단 분석결과 가장 긴 생존기간이 818일인데 여기에는 췌장암 진단을 받고 30일 이후부터 메트포르민을 복용하기 시작한 환자가 포함됐다는 게 연구팀의 부연설명이다.

Chaiteerakij 교수는 "30일 이후 메트포르민을 복용한 환자들에서는 고유의 생존 편향(survival bias )이 존재하는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이 그룹만 제외한 채 데이터를 검토해보면, 메트포르민 복용군과 비복용군에서 암 생존기간은 차이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위암 예방효과 관련 국내 연구 연이어

 

그렇다면 메트포르민을 갖고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은 잠정 보류해야 하는 것일까?

이런 분위기를 틈타 국내 연구진이 이전에는 언급되지 않은 위암에 대한 효능을 발표하면서 메트포르민의 항암효과가 다시금 빛을 보기 시작했다. 그 첫 주자로 국립암센터 김영길 전임의가 나섰다.

2013년 10월 12~16일까지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제21차 유럽연합소화기학회 학술대회에서 국립암센터 위암센터 김영길 전임의는 인슐린을 사용하지 않는 우리나라 제2형 당뇨병 환자 가운데 메트포르민을 복용한 경우 다른 경구용혈당제를 사용했을 때보다 위암 발생이 낮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2004년부터 2010년까지 총 6년 동안 제2형 당뇨병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진료비를 청구한 환자 중 6개월 이상 당뇨병 치료제를 복용한 적이 있는 환자 4만여 명을 대상으로 위암발생 유무를 관찰했다.

연구결과 인슐린을 사용한 경험이 없는 환자 3만 2978명 가운데 6개월 이상 메트포르민을 복용한 환자들이 기타 경구혈당제를 복용한 환자와 비교했을 때 위암 발병 위험도가 37% 낮았다. 특히 3년 이상 메트포르민을 복용한 경우 위암 발병률은 최대 43%까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초 연세암병원 연구진들도 당뇨병을 동반한 위암수술 환자들에서 메트포르민 효능을 입증해 약물의 항암효과에 더욱 힘을 실어줬다.

2015년 2월 연세암병원 위암센터 위장관외과 노성훈·형우진 교수팀과 종양내과 정현철·라선영·정민규 교수팀이 당뇨병을 동반한 위암수술 환자들에게 메트포르민을 처방한 결과 처방받지 않은 환자에 비해 암 재발률이 낮고 생존율은 높아졌다고 밝힌 것.

연구팀은 위암수술을 받은 환자 1974명 가운데 당뇨병을 동반한 326명과 동반하지 않은 1648명을 각각 분류해, 암 재발률과 생존기간을 6.2년에 걸쳐 추적조사했다. 특히 당뇨병을 동반한 환자 326명 가운데 메트포르민을 복용한 132명과 기타 경구혈당제와 인슐린 요법으로 치료를 받는 194명을 집중적으로 비교·분석했다.

결과는 긍정적이었다. 당뇨병을 동반한 위암환자가 메트포르민을 지속적으로 복용한 경우 암 재발률이 37% 감소했다. 5년 생존율과 5년 재발률도 각각 83.3%, 18.9%로 당뇨병을 동반하지 않은 환자들과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정민규 교수는 "이번 연구결과를 통해 위암 수술을 받은 환자에서 당뇨병이 있더라도 메트포르민을 지속적으로 복용하면 당뇨병이 없는 위암환자와 비슷한 생존율을 보이는 것으로 확인했다"면서 "향후 메트포르민의 항암효과는 추가연구를 통해 좀더 세부적으로 규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항암제로서 임상 적용하려면 추가 연구 필요"

 

한편 당뇨병 전문가들은 메트포르민이 암 진행을 억제하는 기전이 있다고 보고됐지만, 당뇨병 치료제를 넘어 항암제 역량까지 갖추기엔 무수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가천의대 김병준 교수(길병원 내분비대사내과)는 "메트포르민이 암 진행과정에 작용하는 mTOR를 억제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관련 연구에 박차가 가해졌다. 당뇨병 환자에서 동반된 암을 늘리지 않고 감소시켜 주는 효과가 있다는 결과가 추가적으로 나오면서 당뇨병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메트포르민이 1차 치료제로서의 역량이 충분하다는 점에 어느 정도 타당성을 부여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메트포르민은 엄연히 당뇨병 치료제이다. 당뇨병 환자에서 동반된 암에서만 효능이 있다라는 긍정적인 측면만 확인했을 뿐, 항암제로서 임상적으로 활용하기까지는 연구가 많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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