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기획 1] 항암치료의 미래 면역항암제

<창간14 기획> 미래와 소통하라
항암치료의 미래 '면역항암제'에 주목

1. 면역항암치료, 언제부터?

2. 새로운 면역항암제 어떤 게 있나?

3. 면역항암제 시대에 남겨진 과제-가톨릭의대 강진형 교수 인터뷰

면역시스템을 조절해 암을 치료하는 접근방식은 생각보다 오랜 전부터 시도돼 왔다.

1891년 뉴욕의 외과의사였던 윌리엄 콜리(William B. Coley)가 수술이 불가능한 암환자에게 용혈성 연쇄상구균을 주입함으로써 악성종양의 축소반응을 유도한 것이 시초라고 여겨진다. 1967년에는 오스트레일리아의 면역학자인 프랭크 버넷(Frank M. Burnet) 박사가 정상적인 면역반응으로 암세포에 대응할 수 있다는 면역감시가설(immune surveillance theory)을 제시하며 힘을 실었다.


1980년대부터 인터페론·IL-2에 관심

 

면역항암요법의 임상연구가 활기를 띠게 된 것은 1980년대 중반 이후다.

미국립암연구소(NCI)의 스티븐 로젠버그(Steven A. Rosenberg) 박사팀은 표준치료에 실패한 전이암 환자 25명에게 재조합 인터루킨-2(IL-2)와 환자 본인의 면역세포(Lymphokine-Activated Killer cell, LAK)를 투여한 결과를 NEJM 1985;313:1485-92에 공개했다. 

논문에 따르면 면역치료를 받았던 25명 중 11명에서 종양의 크기가 50% 이상 감소했고, 전이성 흑색종으로 진단받았던 1명은 암세포가 완전히 사라졌으며(CR), 그 효과가 10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지속됐다. 

앞선 동물실험을 통해 막연하게나마 암의 진행과정에 면역체계가 관여한다는 가설이 알려졌지만 환자의 면역세포를 다시 주입함으로써 면역기능을 조절하고, 항암효과를 유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임상단계에서 제시된 것은 처음 있는 일.

가톨릭의대 강진형 교수(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는 "당시만 해도 T세포, B세포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지 않았을 때였는데, 신장암 환자의 T세포를 빼내 림포카인이라는 물질로 활성화시킨 뒤 다시 주입했더니 폐전이 병소가 줄었다. 암환자들에게 면역치료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제시한 의미 있는 연구"라고 평가했다.

관련 연구가 지속되면서 신장암보다도 흑색종이 면역기전이 중요한 암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2000년대 들어 영국 글래스고대학 로나 마키(Rona M. MacKie) 교수는 신장이식 후 흑색종이 발생한 사례를 보고했다(NEJM 2003;348:567-568). 

해당 환자에게 신장을 이식해준 기증자는 16년 전 흑색종을 앓다 제거수술을 받고 완치된 병력이 있었다. 흥미롭게도 기증자에게는 흑색종 재발 소견이 전혀 없었지만 수혜자는 면역억제제를 복용하는 과정에서 흑색종이 발현돼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면역반응으로 암을 조절할 수 있다는 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면역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암이 재발할 수 있다는 사실까지 확인하게 된 셈이다.

이후 흑색종 환자들을 대상으로 인터페론, IL-2 같은 활성물질을 주입하고 림프구를 활성화시키는 임상연구가 10여 년 넘게 시도돼 왔다. 

문제는 일단 면역치료의 효과가 나타나면 반응이 오래 지속되지만 어떤 환자들은 반응하지 않고, 어떤 환자에서 잘 반응하는지조차 알 수 없다는 것. 

근래에는 흑색종 환자의 혈액으로부터 수지상세포(dendritic cell)를 분리해 체외에서 활성화시킨 뒤 다시 넣어주는 방식의 연구도 소규모로 진행 중이다. 


이필리무맙·니볼루맙 '종횡무진'...흑색종 외 다른 암종도 연구 줄이어

임상에서 면역항암제 도입이 본격화 된 데는 이필리무맙(ipilimumab)이라는 신약의 등장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BMS가 개발한 항CTLA-4 단일클론항체 이필리무맙은 별다른 치료수단이 없었던 전이성 흑색종 환자의 생존율을 유의하게 증가시킴으로써(NEJM 2010;363:711-23) 세계 최초로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다.

CTLA-4는 T세포와 암세포 사이의 후기 면역반응에 관여, T세포 활성을 저해시키는 물질이다. 이를 차단하면 T세포의 활성 및 증식이 증가돼 항암 효과를 나타낸다는 게 이필리무맙의 기본 원리다.

수술이 불가능하거나 전이성인 흑색종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됐던 3상임상에서 이필리무맙 3mg/kg 단독요법은 glycoprotein 100 단독요법 대비 사망 위험을 34% 감소시켰다(HR 0.66, 95% CI: 0.51-0.87; P=0.003). 일부 환자의 경우 종양반응기간(ORR)이 44개월을 넘었다.

지난해에는 이필리무맙이 악성 흑색종의 재발을 막는 데도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미국임상종양학회 연례학술대회(ASCO 2014)에서 발표됐다.

3기 흑색종 환자 951명을 3년간 추적한 결과에 따르면 이필리무맙군의 무재발생존율(RFS)이 46.5%로 위약군(34.8%)에 비해 11.7% 높았다. 

또한 수술이 불가능한 전이성 흑색종 환자 1800여 명에 대한 통합분석(J Clin Oncol 2015;33:1889-94)에서는 이필리무맙 투여 후 약 3년째부터 안정적인 생존곡선이 유지됨을 알 수 있었다. 이때 생존율은 과거 치료 여부와 관계 없이 20%대를 유지했으며, 일부 환자는 10년까지도 생존했다.

현재 이필리무맙은 니볼루맙(nivolumab) 같은 다른 면역항암제와의 병용요법(NEJM 2015;372:2006-2017)을 비롯, 흑색종이 아닌 다른 암종에 대해서도 임상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PD-1·PD-L1 억제제 계열 면역항암제 승인 잇따라 

PD-1, PD-L1과 같이 면역작용에 관여하는 또 다른 타깃분자의 발굴은 새로운 면역항암제의 개발로 이어졌다.

세계 최초의 PD-1 표적면역항암제 니볼루맙은 PD-1과 결합한 뒤 PD-L1 및 PD-L2와의 상호작용을 차단함으로써 T세포를 재활성화시키는 기전으로 원리는 CTLA-4 억제제와 다르지 않다. 

지난해 말 미국에서 승인된 니볼루맙은 수술이 불가능한 전이성 흑색종 가운데 이필리무맙에 반응하지 않는 환자에게 투여했을 때 기존 항암화학요법 대비 뛰어난 종양반응률(Lancet Oncol 2015;16:375-84)을 선보였다. BRAF 유전자의 V600E 돌연변이가 확인된 경우라면 BRAF 억제제와 이필리무맙 병용 후 질병진행을 보인 전이성 흑색종 환자에게도 투여할 수 있다.

최근에는 흑색종은 물론 폐암에서도 종횡무진 적응증을 넓혀가는 모습이다. 

지난 3월에는 백금기반 항암화학요법을 받았던 진행성 편평상피 비소세포폐암(NSCLC) 환자에서 도세탁셀 대비 전체 생존기간(OS)을 3.2개월 연장시켰다는 임상 근거에 따라 FDA 우선심사 대상으로 선정, 본래 예정일보다 3개월가량 앞당겨 확대승인 됐다.

또한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2015) 기간 중에는 타이로신키나제억제제(TKI)와 백금화학요법 이후 재발한 비편평상피 비소세포폐암 환자의 사망률을 도세탁셀군(OS, 12.2개월 vs. 9.4개월) 대비 27% 감소시켰다는 Checkmate 057 연구로 주목을 받았다. 

초기 임상이었지만 진행성 간세포암(HCC) 환자에게 니볼루맙을 투여했을 때 6개월 째 전체생존율(OS)이 72%, 12개월 째 62%로 소라페닙의 평균 생존율(약 30%)을 훌쩍 뛰어넘었다는 흥미로운 데이터도 있다(ASCO 2015 #Abstract LBA101).

당시 전체 41명 중 2명(5%)이 완전반응(CR)을, 7명(18%)이 부분반응(PR)을 보였고 각각에서 반응지속기간은 14~17개월, 1~8개월이었다. 연구 참여군 중 절반가량(20명)이 안정병변(SD)을 유지했으며, 이러한 상태가 최대 17개월까지 지속됐다는 보고다.


'면역표적' 개념 도입…분자 수준에서 면역조절

▲ 가톨릭의대 강진형 교수 ⓒ메디칼업저버 고민수

가톨릭의대 강진형 교수는 "면역항암제가 두경부암, 폐암, 흑색종, 신장암 등 기존 항암제에 반응하지 않았던 다양한 암종에 효과를 나타낸다"면서 "인터페론, IL-2를 이용한 면역치료와 마찬가지로 일단 반응이 있는 환자는 지속기간이 상당히 길다"고 말했다. 

다만 면역체계 내의 표적을 알고 있다는 게 분명한 차이. 

과거의 면역치료가 불특정한 면역세포를 자극시키는 방식에 머물렀다면 암과 면역계 사이의 조절기전이 밝혀진 지금은 세포 내 분자 수준에서 특정 물질을 차단하고 면역세포의 활성을 유도하는 면역표적항암제로 진일보 한 셈이다.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 기술의 발달로 암종별 유전자 변이의 빈도(frequency)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강 교수는 "흑색종이나 편평상피 비소세포폐암, 두경부암 같이 변이 빈도 또는 유전자 변이 부담(mutation burden)이 높은 암종일수록 면역항암제에 잘 듣는다"고 소개했다. 

유전자 변이가 많으면 세포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세포질이나 세포표면 내에 비정상적(abberant) 단백질을 많이 만들어내는데, 이들이 항원성(antigenecity)을 가지므로 T세포, 수지상세포 등 면역반응의 관여가 활발해진다는 것.

이때 암세포가 면역회피 기전으로서 T세포를 차단하기 위해 세포 표면에 만들어내는 CTLA-4, PD-1 등의 물질들(inhibitory immune checkpoint molecule)이 오늘날 면역항암제의 타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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