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 논란이 불거지면서, 각계가 개입을 시도하지만 해법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지난 4월 국회에서 열린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 논란 공청회가 대표적인 사례. 당시 국회는 의사와 한의사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들어 정부와 국회, 의사와 한의사 간 대화의 접점을 찾겠다고 나섰지만 양측의 평행선 공방으로 쟁점만을 확인한 채 자리를 마무리했다.
워낙 전문적인 영역이다 보니 누구의 편을 들기가 쉽지 않았던 데다, 양측의 의견이 워낙 첨예하게 부딪힌 탓이다. 이에 국회가 내린 결론은 당사자 간 논의기구인 협의체 구성이었다. 정부와 양 단체가 만나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결론을 내려 달라는 주문이었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김용익 의원은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에 관한 판단을 누가 해야 하겠느냐"며 "그 핵심에는 의학적 판단이 있고, 의학적 판단은 오로지 의료인만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두 단체가 결정해야 할 문제임에도, 책임있는 결정을 미루고 있다. 이는 두 단체 모두 전문성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양 단체가 의학과 한의학을 어떻게 가져갈지 결정해 가는 것 자체가 의사와 한의사의 전문주의를 구축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시금석 같은 것이라고 본다"며 양 단체에 전향적인 태도를 주문했다.
이후 정부가 논란 해소를 위한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지만, 의협의 불참선언으로 제대로 논의를 시작되지도 않았다. 이후 의협은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 논란에 대해 가장 올바른 해답을 내놓을 수 있는 것은 의사와 한의사일 것"이라며 "의료일원화를 포함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논의구조가 마련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의협의 협의체 구성제안에 이번엔 한의협이 반대했다.
'의료일원화' 단골메뉴…논쟁만 반복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의협은 의료일원화 논의가 의·한방 갈등 해소를 위한 시작점이 된다고 보고 있다. 이원화된 의료체계가 갈등의 근본 원인이 되고 있는 만큼 이부분을 해결해야, 자연스럽게 갈등이 해소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의료일원화는 실제 의·한방 갈등의 상황에서 매번 함께 등장했던 이슈다. 다만 그 방법론을 놓고 양 단체의 입장차가 크다. 의료계는 현재의 한의학 가운데 과학적 근거가 입증된 부분을 의학의 안으로 편입하고 나머지 부분은 쳐 내자는 입장이고, 한의계는 기본적으로 '한의학'의 근간을 인정하지 않는 흡수통합 방식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의료일원화 이슈가 논단으로 올라온 지 벌써 수십년째, 그러나 양측의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첫발조차 내딛지 못하고 있다.
실상 한국 의료사에서 의료일원화만큼 역사가 깊은 논쟁도 드물다. 한의학이 공식 제도로 인정받은 1951년부터 지금까지 의·한 갈등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의료일원화 관련 논쟁도 단골메뉴로 함께 등장했다.
"흡수통합" vs "한의학 말살" 진전 없는 공방
지금까지의 양상으로 보자면 주로 의사협회가 의료일원화를 주장하고 나서면, 한의사협회가 이를 막는 상황이 반복됐다. 의료계의 주장처럼 의학이 한의학을 포괄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경우 한의학의 명맥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인원 수와 사회적 영향력에 비추어 보아 의사에 비해 열세인 상황에서 의사와 대등한 지위로 논의를 이끌어가기 어렵다는 우려도 존재했다.
의학이 전통의학을 포괄하는 방식으로 발전해 온 일부 외국의 사례들도, 한의계의 거부감을 키우기에 충분했다.
실제 가까운 일본은 1867년 메이지 유신 이후 서양 의술이 보급되고, 서양의학에 근거한 의학교육이 확립되면서 한의학의 기반이 자연스럽게 축소됐다. 이후 1877년 서양의학을 기본으로 한 의사시험제도의 실시로 일본의 한의사는 사실상 의료제도권에서 배제되는 부침을 겪었다. 1970년대 들어 일부 한방약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으로 일본의 전통의학은 의료체계 내에서 보완적 기능을 수행해오고 있다.
임상적 검증체계가 다른 소위 '비과학적인' 전통의학을 의학으로 포괄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료계 내부의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흡수통합 방식을 고수하는 의료계의 입장도 여기서 비롯된다.
“의료공급체계 단일화해야"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정부와 일부 학계, 국회를 중심으로 의료일원화 논의가 공론화되는 상황도 연출됐다.
중복의료이용에 따른 의료비 지출 증가 문제에 주목하면서, 의료일원화를 일종의 해법으로 본 것이다. 환자들이 의사와 한의사를 찾아다니면서 중복진료를 받고 있어 국가적 손실을 야기하고 있으며, 자원사용의 효율화를 위해 일원화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는 논리였다.
끝없이 반복돼 온 의·한방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근본 해법은 의료일원화뿐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의료공급체계를 단일화해 상호 간의 불신풍조를 막고 상호보완적 치료의 폭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이었다.
그리고 2015년 다시 해법은 의료일원화로 모아지고 있다. 의·한방 갈등을 지금과 같이 반복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일각의 주장이 힘을 받고 있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일원화특위 유용상 위원장은 "이원화된 의료체계는 오래 갈 수 없고, 오래 가서도 안 된다"며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자원낭비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의료일원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한 논의를 시급히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