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상] 의·한방, 뿌리 깊은 갈등의 역사...해법 없나?

#1. 2005년 개원한의사협회가 내놓은 두 장의 포스터가 의료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이른바 '감기는 한방으로' 시리즈가 그 주인공. 당시 개원한의사협회는 '우리 가족 감기는 한방으로', '아이들 감기 한방으로 다스린다'는 제목으로 모두 2만 5000부의 포스터를 제작해 전국 한의원에 배포했다. 개원한의사협회는 포스터 하단에 "한방은 부작용이 없어 임산부도 부담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으며, 겁 많고 까다로운 아이들도 주사기의 두려움 없이 빠른 치료가 가능합니다"라고 적었다. 의료계는 즉각 반발했다. 2004년 있었던 한의사 CT 허용판결(이는 2006년 고법 판결로 무효화 된다)으로 한의계에 대한 의료계의 적대감이 극에 달해 있던 상황이라, 논란은 일파만파로 번졌다. 특히 개원한의사협회가 내놓은 '한방은 부작용이 없다'라는 문구가 논란의 중심이 됐다. 의료계는 한약 부작용 문제를 전면으로 들고 나서 사회 이슈화시켰다. 이로 인해 의·한갈등이 그야말로 극으로 치달아 의사단체들과 한의협이 연일 공방을 벌였다. 명예훼손으로 상대를 고발하는 소송전이 펼쳐졌고, 의사와 한의사가 TV에 출연해 격론을 벌이기도 했다. 의·한갈등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따가웠다. 의료계와 한의계는 '한약의 안전성' 문제를 놓고 근거를 다퉜지만, 국민들은 그저 의·한방의 밥그릇 다툼으로 여겼다. #2. 그렇게 10년의 시간이 흐른 2015년 현재. 이번엔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놓고 의료계와 한의계가 첨예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상황은 1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의료계와 한의계가 연일 이성과 감정을 넘나드는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고, 이에 연일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평행선 공방으로 좀처럼 양측의 갈등을 해결하는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또 문제의 근본 해법으로 의료일원화가 제시되고 있다는 점도 닮았다. 10년의 세월을 넘나드는 의·한방 갈등, 역사는 그렇게 끝없이 반복되고 있다. <기획-상>의·한방, 뿌리 깊은 갈등의 역사...해법 없나? <기획-하>"굴레를 벗자" 의사-한의사, 미래를 말한다 의·한방 갈등, 뿌리 깊은 역사의·한방 갈등의 역사는 꽤나 깊다.양측의 갈등이 처음 표면화된 것은 1934년 일제 식민지 조선에서 벌어졌던 이른바 '동서의학 논쟁' '한의학 부흥논쟁'이다.앞서 1914년 조선총독부는 의생제도를 도입, 서양의학을 배운 학자만을 공식적 의사로 인정하고, 한의사들은 의사가 아닌 의생으로서 면허를 부여하는 정책을 편다.초기 일제는 한의학을 조선의 후진성을 대표하는 상징의 하나로 치부, 곧 자멸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1931년 만주사변이 발발하면서 기조를 달리 한다. 한의학은 한약 장려라는 일제의 정책에 힘입어 다시 부흥의 시대를 맞게 된다.그러는 와중에 일부 학자가 조선일보를 통해 한의학 부흥을 주장하고 나섰고, 반대측에서는 한의학은 전근대적인 의학으로 이를 서양의학으로 포섭하는 일원화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하며 맞섰다.의료계와 한의계는 1951년 피난국회에서 추진된 한의사제도 양성화 작업 때도 대치하는 양상을 보인다. 의사들은 한의사제도의 신설 자체를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지만, 당시 국회는 한의사를 정식으로 제도권 안으로 들여왔다.CT 판결·포스터 파동서 '폭발'이후 한동안 각자의 길을 걷던 의·한방은 2000년대 들어 다시 한 번 갈등국면을 맞는다.전조는 이미 있었다. 1990년대 들어 의료공급자들 간의 갈등이 본격화되면서 1992년 한의사와 약사간 '한약조제권' 분쟁이 있었고, 2000년에는 의사와 약사간 '의약분업'을 둘러싼 분쟁이 벌어졌다. 원인은 달랐지만 그 근간에는 의료공급자간 '업무영역'을 둘러싼 갈등이 존재했다. 의료시스템이 체계화되는 과정에서 각 의료공급자가 자신의 업무영역을 구획하려는 시도가 명확해졌고, 이것이 갈등의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2004년 나온 서울행정법원의 한방병원 CT 사용 적법 판결은 의·한방의 영역 갈등을 다시 기폭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의료계에서는 이미 일부 한방병원의 CT사용이 의료법에 정한 의료행위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던 상황. 그런 와중에 한방의료기관의 CT 사용이 적법하다는 법원의 결정이 나오면서 양측의 갈등은 극에 달한다.한의계는 해당 판결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혔지만, 의료계는 학문적 기초, 진단과 치료의 기전이 전혀 다른 만큼 한의사의 CT 사용은 업무범위를 초월한 무면허 의료행위와 다름없다는 논리를 폈다. 제대로 교육을 받지 않은 채 CT를 사용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고, 의료법에 정한 한방진료의 범위도 넘어선다는 주장이다. 반면 한의사들은 보다 정밀한 진단을 위해 CT 사용이 필요하며, 또 필요한 교육도 받았다고 주장했다.평행선 공방…논쟁만 10년째양측의 갈등은 2006년 고법이 '국내 의료체계는 이원적으로 구분돼 있고, 의학과 한의학의 기초가 다르다는 점을 비춰볼 때 한의사가 방사선사로 하여금 CT를 촬영하게 하고, 방사선진단행위를 한 것은 한방의료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판결하기까지 2년 가까이 이어진다.2005년에는 '한방 감기약'을 둘러싼 '포스터 전쟁'이 시작됐다. 개원한의사회가 한방을 이용한 감기치료 광고를 내고, 의사들이 이에 맞서 한약의 부작용을 알리는 포스터를 맞서 내걸면서 갈등이 표면화됐다. 당시 양측은 서로의 주장이 틀리다고 주장하면서 소송전을 벌이기도 했다.이후에도 양측은 크고 작은 다툼을 이어왔다. 한의사의 X선 골밀도 측정기·IPL 사용, 의료기사 지도권 문제 등을 놓고 끊임없이 송사를 벌였다. 또 작게는 보건복지부에 한의학 전담조직을 두는 문제부터, 크게는 한의학육성법 제정 등을 놓고도 사건이 있을 때마다 끊임없이 부딪혀왔다.그러던 중 올해 정부가 범국가적 규제완화, 이른바 규제 기요틴 정책의 하나로 현대의료기기 중 일부를 한의사가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히면서, 의·한 갈등이 다시 일촉즉발의 상황에 이른다. 양 단체장이 각각 찬반으로 갈려 단식농성을 벌이는가 하면, TV 토론회와 국회 공청회를 통해 문제가 사회 공론화되기도 했다.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둘러싼 의·한 갈등은 최근 메르스 사태에 묻혀 잠시 수면 아래 가라앉았지만, 사태가 진정되면 언제든 터질 수 있는 시한폭탄과 같은 상태다.
 

의·한 갈등, 해법 없나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 논란이 불거지면서, 각계가 개입을 시도하지만 해법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지난 4월 국회에서 열린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 논란 공청회가 대표적인 사례. 당시 국회는 의사와 한의사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들어 정부와 국회, 의사와 한의사 간 대화의 접점을 찾겠다고 나섰지만 양측의 평행선 공방으로 쟁점만을 확인한 채 자리를 마무리했다.

워낙 전문적인 영역이다 보니 누구의 편을 들기가 쉽지 않았던 데다, 양측의 의견이 워낙 첨예하게 부딪힌 탓이다. 이에 국회가 내린 결론은 당사자 간 논의기구인 협의체 구성이었다. 정부와 양 단체가 만나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결론을 내려 달라는 주문이었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김용익 의원은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에 관한 판단을 누가 해야 하겠느냐"며 "그 핵심에는 의학적 판단이 있고, 의학적 판단은 오로지 의료인만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두 단체가 결정해야 할 문제임에도, 책임있는 결정을 미루고 있다. 이는 두 단체 모두 전문성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양 단체가 의학과 한의학을 어떻게 가져갈지 결정해 가는 것 자체가 의사와 한의사의 전문주의를 구축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시금석 같은 것이라고 본다"며 양 단체에 전향적인 태도를 주문했다.

이후 정부가 논란 해소를 위한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지만, 의협의 불참선언으로 제대로 논의를 시작되지도 않았다. 이후 의협은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 논란에 대해 가장 올바른 해답을 내놓을 수 있는 것은 의사와 한의사일 것"이라며 "의료일원화를 포함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논의구조가 마련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의협의 협의체 구성제안에 이번엔 한의협이 반대했다.

'의료일원화' 단골메뉴…논쟁만 반복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의협은 의료일원화 논의가 의·한방 갈등 해소를 위한 시작점이 된다고 보고 있다. 이원화된 의료체계가 갈등의 근본 원인이 되고 있는 만큼 이부분을 해결해야, 자연스럽게 갈등이 해소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의료일원화는 실제 의·한방 갈등의 상황에서 매번 함께 등장했던 이슈다. 다만 그 방법론을 놓고 양 단체의 입장차가 크다. 의료계는 현재의 한의학 가운데 과학적 근거가 입증된 부분을 의학의 안으로 편입하고 나머지 부분은 쳐 내자는 입장이고, 한의계는 기본적으로 '한의학'의 근간을 인정하지 않는 흡수통합 방식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의료일원화 이슈가 논단으로 올라온 지 벌써 수십년째, 그러나 양측의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첫발조차 내딛지 못하고 있다.

실상 한국 의료사에서 의료일원화만큼 역사가 깊은 논쟁도 드물다. 한의학이 공식 제도로 인정받은 1951년부터 지금까지 의·한 갈등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의료일원화 관련 논쟁도 단골메뉴로 함께 등장했다.

"흡수통합" vs "한의학 말살" 진전 없는 공방 

지금까지의 양상으로 보자면 주로 의사협회가 의료일원화를 주장하고 나서면, 한의사협회가 이를 막는 상황이 반복됐다. 의료계의 주장처럼 의학이 한의학을 포괄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경우 한의학의 명맥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인원 수와 사회적 영향력에 비추어 보아 의사에 비해 열세인 상황에서 의사와 대등한 지위로 논의를 이끌어가기 어렵다는 우려도 존재했다.

의학이 전통의학을 포괄하는 방식으로 발전해 온 일부 외국의 사례들도, 한의계의 거부감을 키우기에 충분했다.

실제 가까운 일본은 1867년 메이지 유신 이후 서양 의술이 보급되고, 서양의학에 근거한 의학교육이 확립되면서 한의학의 기반이 자연스럽게 축소됐다. 이후 1877년 서양의학을 기본으로 한 의사시험제도의 실시로 일본의 한의사는 사실상 의료제도권에서 배제되는 부침을 겪었다. 1970년대 들어 일부 한방약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으로 일본의 전통의학은 의료체계 내에서 보완적 기능을 수행해오고 있다.

임상적 검증체계가 다른 소위 '비과학적인' 전통의학을 의학으로 포괄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료계 내부의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흡수통합 방식을 고수하는 의료계의 입장도 여기서 비롯된다. 

“의료공급체계 단일화해야"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정부와 일부 학계, 국회를 중심으로 의료일원화 논의가 공론화되는 상황도 연출됐다.

중복의료이용에 따른 의료비 지출 증가 문제에 주목하면서, 의료일원화를 일종의 해법으로 본 것이다. 환자들이 의사와 한의사를 찾아다니면서 중복진료를 받고 있어 국가적 손실을 야기하고 있으며, 자원사용의 효율화를 위해 일원화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는 논리였다.

끝없이 반복돼 온 의·한방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근본 해법은 의료일원화뿐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의료공급체계를 단일화해 상호 간의 불신풍조를 막고 상호보완적 치료의 폭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이었다.

그리고 2015년 다시 해법은 의료일원화로 모아지고 있다. 의·한방 갈등을 지금과 같이 반복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일각의 주장이 힘을 받고 있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일원화특위 유용상 위원장은 "이원화된 의료체계는 오래 갈 수 없고, 오래 가서도 안 된다"며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자원낭비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의료일원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한 논의를 시급히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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