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 세무조사 등 병원에도 위기 상재... 위기관리위원회 만들어야

 

병원들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라는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 때문에 순식간에 어려움에 빠져들었다. 환자가 급감하면서 직원들 월급은 물론 건물 관리비 등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돼 버린 것이다. 메르스가 잠잠해졌다지만 완전히 종식되지 않은 상태고, 게다가 7~8월은 병원 비수기로 원장들의 한숨은 깊어간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병원에서도 위기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병원의 위기 상황이라면 의료사고, 고객불만, 리베이트, 세무조사, 인력유출 등을 꼽을 수 있는데, 평소에 이런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는 얘기다.

인터넷 발달로 의료소송 급증…발빠른 대처가 관건

병원에서 흔한 위기상황은 의료사고라 할 수 있다. 인터넷과 의료 관련 정보의 발달로 환자들도 의료품질에 대한 판단능력이 커졌다. 이를 보여주듯 최근 의료소송 건수가 급증하고 있다. 의료사고는 병원의 존폐를 흔들 만한 요인으로 사전에 예방하는 것 못지않게 어떻게 대처하느냐도 매우 중요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병원이라고 해서 의료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위기를 어떻게 대처하느냐에서 차이를 보인다. 미국 동남부 노드 캐럴라이너에 있는 듀크대학병원은 장기이식을 하는 환자에게 ABO 혈액형을 확인하지 않고 수술해 의료사고가 발생했다.

이후 듀크대학병원과 사고 관련 의사는 자신들의 과오를 100% 인정하고, 가족과 감독기관에 이를 보고했다. 또 적극적인 사고 협조와 재발 방지책을 강구하는 자세를 보여 유가족의 마음을 움직여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병원에서 산모가 사망하면서 위기를 경험했던 부산의 A모 병원. 산부인과 전문의이면서 기획실장이었던 그는 병원에 반드시 위기관리 매뉴얼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사건이 터졌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느라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했다"며 "산모의 사망 사실이 인터넷에 알려지면서 병원과 담당 주치의 실명과 신상정보가 알려졌고, 포털에도 기사가 나고, 유가족의 극렬한 시위로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또 "각종 온라인 언론들이 우리 병원을 악의 축으로 몰아갔다. 급기야 TV에서 사건을 다루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결국 유가족 측이 허위사실 유포 인정과 합의로 사건이 일단락 됐지만 병원이 입은 타격은 의외로 컸다"며 매뉴얼의 중요성을 말했다.

 

A병원은 의료사고를 계기로 '병원 위기관리 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는 위기관리 매뉴얼에서 의사소통은 반드시 진실되고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또 모든 직원이 정확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매뉴얼을 만들라고 조언했다. 그는 "언론의 편파적 보도에 대해서는 정식으로 중재를 요청하고, 위기를 혁신과 발전의 계기로 삼고 다음 계획을 바로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무조사도 병원을 위협하는 위기다. 최근 정부는 지하경제 양성화, 세법 개정, 세무조사 강화 등을 표방했다. 그리고 그 기조는 계속 유지되고 있다.

병원 관련 컨설팅회사 한 관계자는 "2013년 이후 병원계 세무조사는 중소병원에 집중된다. 300병상 이상, 매출 100~200억 규모의 병원들이 집중적인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며 "추징금 규모는 매출액의 약 1% 내외"라고 말했다. 병원들이 세무조사에 대비하려면 선제적인 재무전략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당연시돼 온 관행도 비윤리적인 부분은 언제든 사회적 이슈가 될 수 있다"며 "인터넷 매체의 발달로 직원 1인의 부정적 행동이 기업 전체의 이미지에 심각한 손상을 가져올 수 있다. 한번 손상된 기업 이미지를 회복하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불안한 개원가 자금 관리…분석자료라도 챙겨 놔야

전문가들은 의료사고나 세무조사 등의 위기상황은 아니지만 메르스처럼 돌발적 상황으로 직원들의 월급을 지급할 수 없는 상황도 위기상황으로 꼽는다. 이번처럼 한 달조차 버틸 수 없는 자금 사정을 가진 개원가는 반드시 평소에 자금관리를 해야 한다는 것.

평소 병원 경영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 g소아과 김 모 원장은 자신의 병원 지출 비용을 분석했다. 그는 급여, 복리후생비, 퇴직급여, 의약품비, 재료비, 건물관련 관리비 등 병원 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구분하고, 이를 다시 줄일 수 있는 비용과 줄이기 힘든 비용, 줄이지 못하는 비용, 줄이면 안 되는 비용으로 분류했다.

그는 "회식비나 식비 등 줄일 수 있는 비용이 고작 3.3%, 줄이기 힘든 비용이 56.3%, 줄이지 못하는 비용 15.4%, 줄이면 안 되는 비용 25%였다"며 "결국 줄일 수 있는 비용 3.3%에서 어려운 시기를 얼마나 더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만약 메르스 사태가 6개월 이상 계속되면 줄이기 힘든 비용이 56.3%이므로 이것을 마른 걸레 쥐어짜듯 쥐어짜야 한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김 모 원장처럼 병원 지출 비용을 분석한 자료를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위기 시에는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어떤 항목에서 얼마를 절약해야 할지 알아야 대처할 수 있는 전략을 짤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개원의들은 이런 분석 데이터조차 갖고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덧붙인다.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병원 매뉴얼

① 반드시 위기관리 위원회를 구성하라.
② 결정은 신속하게
③ 커뮤니케이션은 진실되고 구체적으로
④ 전 직원이 정확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매뉴얼을 만들어 교육하라.
⑤ 언론의 편파적 보도에 대해서는 정식으로 중재 요청하라.
⑥ 위기를 혁신과 발전의 계기로 삼고 다음 계획을 바로 수립하라.내용을 입력하세요.

미국은 1980년대 병원위기관리협회(American Society for Healthcare Risk Management)가 구성해 상황별로 위기관리 유형을 묶은 핸드북을 발간하고 있다.

미국병원위기관리협회 핸드북 발간해 도움

이 기관이 1990년에 발간한 '병원위기관리 핸드북'에 의하면 병원에서 위기관리자(risk manager)의 직무는 보험, 재무, 평가 등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기에 대비해 적정한 위기관리를 통해 법적, 재산적 피해를 최소화는 것을 수행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또 병원의 위기관리를 강도에 따라 레벨을 1~3단계로 구분하고, 해당 위기관리 대처방안을 구분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변명보다 인정을…원장은 문제해결자로 포지셔닝

병원경영연구원 이용균 실장은 우리나라는 위기관리를 위한 패러다임의 변화가 절실하다고 요구했다.

위기가 아닌 이슈(issue)를 관리해야 한다는 게 이 실장의 주장이다. 이슈는 언제든지 위기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잠재적인 위기이기 때문이다.

이 실장은 "병원 위기를 극복하려면 부정적인 뉴스는 대내외적으로 먼저 발표하고, 병원 CEO는 문제 해결자로서 포지셔닝을 한다"며 "국내 병원에서도 집중적인 세무조사를 받아 위기에 노출됐지만 경영투명성이 밝혀지자 병원 신뢰도가 대외적으로 높아진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또 병원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는 해명이나 변명보다 극복조치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병원의 위기도 관리와 대응을 통해서 위기관리의 노하우를 구축하면 해결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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