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치료법 여전히 모호…환자도 의료진도 심각성 인지 못해

 
미국립보건원(NIH)이 근육통성뇌수막염(myalgic encephalomyelitis, ME) 즉 만성피로증후군(chronic fatigue syndrome)에 대한 최신 논문 4건을 미국내과학회지(Ann Intern Med 6월 16일자 온라인판)에 발표했다.
올해 초 미의학연구소(IOM)가 발간한 보고서에 지난해 워크숍에서 논의됐던 내용을 취합한 것으로, 성명서와 진단·치료에 관한 리뷰 논문 2건, 관련 사설을 포함한다.
아직까지 만성피로증후군의 발병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진단이나 치료 면에서도 뚜렷한 변화는 없다.
하지만 논문에서는 대략 100만명에 달하는 미국인들이 만성피로증후군 증상을 겪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통일된 진단기준 및 치료방법을 정립하기 위한 추가 연구가 시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 외에는 관련 데이터가 전무한 실정으로 국가사회적 관심이 요구된다.

1. 만성피로증후군의 국내외 현황: 진단·치료 어디까지 왔나

2. "만성피로 잡으려면 기본으로 돌아가라" 황희진 가톨릭관동의대 교수 인터뷰


통일된 진단기준 부재…미국인 10명 중 9명 방치 

만성피로증후군이란 충분한 휴식을 취한 뒤에도 극심한 피로 증상이 풀리지 않고 6개월 이상 지속되는 경우를 말한다.

견딜 수 없는 피로감, 관절 및 근육의 통증, 두통, 림프절 압통, 인후통, 기억력 저하 등 복합적인 증상이 동반되는데, 고혈압이나 당뇨병처럼 객관적인 수치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피로를 유발할 만한 다른 의학적인 컨디션들을 전부 배제한 뒤 마지막 단계에 진단을 내리게 된다.

대부분의 질환이 피로 증상을 동반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만큼 질병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 우울증, 불안증, 신체화장애 같은 정신질환부터 갑상선기능저하증, 당뇨병, 숨겨진 악성종양, 수면장애, 결핵 등 감별이 필요한 질환들도 수십가지에 이르며, 상세한 문진을 통해 환자의 주관적인 호소를 객관화 하는 과정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표>.

 

현재 가장 널리 사용되는 기준은 1994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정한 증례 정의로, △새롭게 발생한 피로증상이 최소 6개월 이상 지속되고 △휴식을 취해도 호전되지 않으며 △직업, 교육, 사회, 개인 활동이 증상이 나타나기 전보다 감소해야 한다는 3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켜야만 한다.

아울러 △기억력 혹은 집중력장애 △인두통 △림프선의 압통 △근육통 △관절통 △새로운 두통 △잠을 자도 상쾌하지 않음 △운동 후 심한 권태감 등의 증상 중 4가지 이상을 동반하고, 피로 증상을 유발할 수 있는 기질적, 정신적 질환은 배제돼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IOM, "전신성활동불내성질환(SEID)으로 개명하자"

진단기준이 모호하다보니 만성피로증후군은 정확한 유병률을 파악기도 힘든 상황이다.

미의학연구소(IOM)의 최신 보고서는 미국에서 최소 83만 6000명, 많게는 250만명이 만성피로증후군 증상을 겪고 있다는 진단을 내렸다. 그들 중 84~91%는 만성피로증후군으로 진단조차 받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10세 미만부터 70세 이상에 이르기까지 증상이 나타나는 연령대는 다양하지만 평균 발병시기는 33세로 사회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해야 할 생산 연령층이 주를 이룬다.

사회경제적으로 미치는 파급효과가 큰 것도 그 때문인데, 보고서에 따르면 만성피로증후군에 의한 사회경제적 부담금이 연간 170~240억달러에 달한다.

밴더빌트대학 Ellen Wright Clayton 교수는 "대부분의 만성피로증후군 환자는 일상생활을 정상적으로 할 수 없고, 4분의 1가량은 누워 있어야만 할 정도다. 이를 방치할 경우 사회적으로 더욱 큰 손실을 야기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미국에서는 만성피로증후군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진단율을 높이려는 노력이 활발하다.

미의학연구소 산하 특별위원회는 2월 10일 '근육통성뇌수막염/만성피로증후군을 넘어서: 질병의 새로운 정의'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만성피로증후군은 실제로 존재하는 중대한 질병"이라고 선언하면서 "기존 명칭은 일상에서 사용되는 '만성피로'와 혼동되기 쉬워 질환의 심각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신체와 뇌를 움직여 활동하면 증상이 더욱 악화된다는 뜻의 '전신성활동불내성질환(Systemic Exertion Intolerance Disease, SEID)'으로 변경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새로운 명칭만으로 환자들의 삶의 질을 개선할 순 없겠지만, 질환에 대한 임상지식과 인식, 연구 어젠다를 개선해 나가겠다는 의지인 셈이다.

진단기준 및 치료방법을 표준화 하려는 작업도 진행 중인데, 미국립보건원(NIH)은 1950년부터 2014년까지 발표됐던 만성피로증후군 관련 논문을 9000건 이상 리뷰한 결과를 토대로 진단에 필수적인 5가지 주요증상들을 정리했다(Ann Intern Med. 2015;162:834-840).

 

각 증상으로는 △일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할 정도의 피로 △과로 후 전신 무력감 △잠을 자도 피로가 회복되지 않음 △인지기능장애 △기립성조절장애가 해당하며, 증상 지속기간은 6개월로 정했다.

그 외 통증이나 감염력, 면역체계 이상, 소화기 또는 비뇨기계 증상 등도 별도 항목으로 포함시켰으며, 임상현장에서의 편의성을 고려해 알고리듬을 함께 제시한 부분도 눈에 띈다<그림>.

일각에서는 만성피로증후군을 보다 객관적으로 진단하는 것을 돕기 위한 기술 개발도 시도되고 있다.

컬럼비아대학 Mady Hornig 교수팀은 올해 초 만성피로증후군 환자(298명)와 정상인(348명)에게서 채취한 혈액 샘플을 비교·분석한 결과, 만성피로증후군 환자에서 인터페론 감마라고 불리는 특정 사이토카인의 혈중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았다는 연구 성과를 발표했다(Sci Adv 2015;1).

그러나 아직까지 임상현장에서 적용하기에는 이른 단계라는 게 전반적인 견해다.

리뷰논문(Ann Intern Med 2015;162:834-840)에서는 "진단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만성피로증후군 환자를 명확하게 감별해낼 수 있는 방법은 개발돼 있지 않다. 광범위한 인구집단을 대상으로 신뢰도 높은 연구가 시행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동반사설(Ann Intern Med 2015;162:871-872)을 작성한 하버드대학 Anthony L. Komaroff 교수(브링검여성병원) 역시 "우울증, 다발경화증과 같은 일부 질환에서는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특정 바이오마커가 만성피로증후군의 진단검사로서 충분한 민감도와 특이도를 증명한 적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근본치료법 '아직'…증상 완화에 초점

만성피로증후군의 치료전략은 30여 년 전과 비교해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주장되는 원인 가설이 다양한 만큼 치료방법도 다양하고 표준치료지침도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환자가 호소하는 주증상에 따라 접근이 시도되고 있으며, 치료자의 경험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

그나마 만성피로증후군 환자에 대한 증상개선 효과가 어느 정도 입증된 방법으로는 인지행동치료, 점진적인 유산소운동, 소량의 항우울제 치료가 꼽힌다. 아미트리프틸린(amitriptyline) 같은 소량의 삼환계항우울제(TCAT)나 플루옥세틴(fluoxetine) 등 선택적세로토닌재흡수억제제(SSRIs)가 약물요법으로 주로 사용되며, 통증이 심한 경우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를 투여하기도 하지만 효과가 일정친 않다.

만성피로증후군 환자들을 완전히 회복시키기보다는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데 큰 불편이 없는 정도로 증상을 개선시키는 것이 주목적이라 하겠다.

증상악화를 우려해 운동을 권장하지 않던 과거와는 달리, 점진적으로 유산소성 운동량을 늘려나가는 운동요법도 만성피로증후군 환자들의 증상을 개선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들을 축적해 가고 있다(BMJ 1996;314:1647-52).

걷기, 자전거 타기, 수영 등을 포함한 점진적인 유산소운동이 유연성운동, 스트레칭, 이완요법만을 시행한 경우에 비해 더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환자의 상태를 잘 아는 주치의와 상의해서 운동강도를 결정하는 것이 관건으로, 증상이 호전된 시기에 지나친 신체활동을 함으로써 증상이 악화되고 재발되는 악순환(push-crash 현상)을 피하기 위해서는 규칙적이고 지나치지 않은 신체활동을 계획하도록 권고해야 한다.

그 밖에 바이오피드백 치료, 아미노산 투여, 항생제 및 항바이러스제 투여, 인터페론 요법, 면역글로불린 요법, 소량의 스테로이드 사용 등 수 많은 치료방법들이 시도되지만 일률적으로 적용하기는 어렵고 근거도 부족한 상황이어서 전문가들 사이에 이견이 많다.

미국립보건원(NIH)의 리뷰논문(Ann Intern Med 2015;162:841-850)에서는 "린타톨리모드(rintatolimod), 면담치료, 등급별 운동요법이 일부 환자들에게 혜택을 나타내고, 나머지 방법들은 근거가 불충분하다"고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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