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인하 정책에 저평가·수출 타격 우려

 

정부의 약가인하 정책이 글로벌 제약 강국으로 도약하려는 제약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 개발한 신약이 국내에서 저평가되는 것도 문제지만, 수출 시 약가를 국내 기준으로 책정하는 경우가 많아 향후 해외 수출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기 때문.

또 정부는 신약의 혁신적 가치를 반영하기 위해 신약 등재 기간 간소화, 위험분담제, 환급계약 등을 도입해왔지만 일부 신약은 소외된 상황이다.

이에 최근 다시 불거진 신약 약가 가치 논란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이를 둘러싼 입장을 들어봤다.

동아ST 슈퍼항생제, 약가 53.55% 우려

▲ 동아ST 시벡스트로

보령제약의 카나브와 일양약품 놀텍 등 일괄 약가인하와 사용량 약가연동제 등 정부의 약가인하 정책으로 낮은 약가가 책정돼 해외 진출에 적잖은 타격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카나브는 출시 초기에 현지 유통사와 약가로 협의를 보지 못해 터키 진출이 무산된 바 있다.

최근에는 동아ST가 개발한 슈퍼항생제 시벡스트로의 약가 산정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하반기 약가 등재를 앞둔 시벡스트로의 약가가 저평가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

시벡스트로는 미국식품의약국(FDA)에서 먼저 허가를 받고 지난 4월 정제와 주사제가 나란히 국내 품목허가를 획득한 국산 신약이다. 지난 3월 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약가를 신청한 시벡스트로는 7월이나 8월 약제급여평가위원회에 상정될 것으로 관측된다.

문제는 대체 약제에 따른 약가 등재 시기다. 유일한 대체 약제로 알려진 화이자의 자이복스는 지난해 7월 특허만료와 제네릭 발매로 원 가격의 70%로 약가가 인하됐고, 1년이 지난 올해 7월 이후에는 약가가 53.55% 수준으로 떨어진다.

이에 시벡스트로의 약가 또한 대체 약제를 기준으로 정해지는 산정기준에 의해 7월에 상정되면 70% 수준으로, 8월에 상정되면 53.55%의 약가를 받을 것으로 예측되는 것.

따라서 동아ST 측은 최대한 7월 상정을 희망하고 있지만, 업계에는 약가인하에 따른 건강보험 재정 안정 등을 이유로 8월에 상정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애초에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두고 FDA 허가를 우선 취득하는 등 공을 들인 동아ST 측에서는 국내 약가 책정이라는 암초를 만난 셈이다.

실제로 시벡스트로 관련 시장은 국내에서 약 80억원 수준에 그치는 반면, 시장조사기관 GlobalData에 따르면 2011년 전 세계 MRSA(메타실린내성 황색포도상구균) 시장은 약 2조 7000억원에 달하며 2019년에는 약 3조 5000억원으로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시벡스트로가 국내 약가를 대체 약제의 53.55% 수준으로 책정받으면 향후 해외 현지 국가의 약가 책정에서 낮게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업계의 관점이다.

이와 관련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이선영 과장은 "7월인지 8월인지에 따라 가중평균가의 차이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급여평가위원회 단계에서 구분되는 것은 아니고 약가 협상에서 고려될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약가 인하 멈추자" 환급계약 첫 사례 '카나브'

이처럼 신약의 약가 인하를 멈추려는 제약사와 어떻게든 보험재정 손실을 막으려는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결과가 최근 나타났다. 보령제약 카나브의 환급계약 적용이다.

지난달 29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는 카나브의 사용량 약가 연동 환급제 적용을 심의, 이를 의결했다.

제약산업 육성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시행된 '보험의약품 사용량 약가 연동제 환급제'는 약가를 유지하되 제약사가 사용량 약가 연동 협상에 따른 약가인하에 상응하는 금액(청구금액×환급률(가격인하율))을 3개월 단위로 건보공단에 납부하는 제도다.

▲ 보령제약 카나브

제도의 첫 사례가 된 카나브는 3년의 계약기간 동안 670원의 약가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또 국내 보건·제약산업 발전에 대한 기여 등 제도취지상 계약연장의 필요성이 인정되는 경우 1회에 한해 추가계약(3년 이내)이 가능하다.

이런 약가 유지는 의약품 수출 과정에서 이점으로 작용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약가인하분 만큼의 금액을 공단에 주기적으로 납부하기 때문에 국내 매출과는 상관이 없다. 다만 다국적사가 세계 각국에서 글로벌 프라이스를 유지하려는 것처럼, 중국, 미국 등에서 우리나라 약가를 참조하기 때문에 수출 시 약가 협상에서 메리트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동아ST의 시벡스트로 등 대부분의 국산 신약을은 이 같은 방법으로 약가인하를 멈춰 놓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환급계약 조건이 상당히 까다롭기 때문.

환급계약으로 약가를 유지하는 대상이 되려면 '혁신형 제약기업'이 개발해야 하며, 국내에서 세계 최초로 허가를 획득해야 한다. 또 천연물신약, 개량신약 등이 아닌 신약(신물질신약)으로 허가받아야 하고, 다국적 허가 또한 취득한 상태여야 한다.

동아ST의 시벡스트로를 예로 보면, 동아ST는 혁신형 제약기업에 해당되지 않고, 시벡스트로는 지난해 6월 미국 FDA로부터 테디졸리드라는 제품명으로 먼저 허가를 획득했기 때문에 환급계약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에 일부에서 조건이 까다로운 것 아니냐고 지적하자 이선영 과장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환급계약의 현재 네 가지 조건을 설정했을 때도 제도 자체에 반대하는 의견이 있어 쉽지 않았다"며 "기준 완화나 확대에 대해서는 시행을 하며 검토해야 할 부분"이라고 밝혔다.

글로벌 신약 키우려면 신약 우대 필요

한편 신약의 약가 가치 인정 문제는 제약업계 전반에서 불만으로 제기되는 양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시벡스트로는 급여평가위원회가 7월이냐 8월이냐에 따라 약가가 달라진다고 논란인데, 그만큼 신약에 대한 적정한 평가가 이뤄지지 않는 문화가 깔려 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허가 임상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투자해야 하는 것이 많다. 약을 허가받는 것은 정말 시작단계고, 임상적 가치를 통해 약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수십 배의 투자가 병행돼야 글로벌 신약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이러한 기반이 부족하고 원가가 얼마인지, 얼마만큼 판매하는지 등 내수시장 중심으로 약가가 책정된다"면서 "신약은 세계시장을 염두에 두고 약가 산정을 해야 하고, 신약 개발에 대한 동기부여가 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이선영 과장은 "국산 신약이라면서 명시적으로 약가를 우대한다고 밝히기가 쉽지 않다. 차별적인 요소라며 다른 국가 등에서 제소당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보건의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 판단 규정을 협상 지침이나 급여평가위원회 판단 지침에 두고 있다"며 "협상 때 원가를 고려하는 것은 국산 신약이 유일한데, 그럼에도 국산 신약 약가 우대에 대한 주장은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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