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 높은 교차조사…추징금 수백억대

▲ 국세청의 세무조사에 제약업계가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상품권 사용내역 조사 등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제약사를 겨냥하면서 업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탈세로 마련된 자금이 리베이트로 이어진다는 의혹에 따라 추징금을 물게 된 업체들은 이에 대해 황급히 선을 긋는 모양새다. 일부 업체는 법인카드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내부 단속을 철저히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국세청이 올해 초 세수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조사 관리 체계를 강화하고, 지능적인 탈세에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한동안 제약업계에 대한 세무조사는 강도를 더할 것으로 보인다.

국가 세입예산 대비 세수 부족 규모는 지난 2012년 2조 8000억원에서 2013년 8조 5000억원으로 늘었고, 지난해에는 10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지출내용 누락 증빙 못 해 추징금 수백억대

사실 제약사에게 정기 세무조사와 조세누락, 고발 등에 따른 비정기 세무조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08년 3월 모범납세자로 산업포상을 받은 D제약은 2년간 세무조사 면제 및 세제유예 혜택을 받았지만 곧바로 2010년 서울지방국세청에 법인세 등 추가납부 세액으로 284억원에 달하는 추징금을 납부해야 했고, 지난해에는 124억원의 추징금을 부과받았다. 다른 업체는 2013년 700억원대에 달하는 추징금으로 몸살을 겪기도 했다.

수십, 수백억원에 달하는 추징금 부과와 세무조사는 올해에도 이어졌다. 연초 A약품이 법인세 과소 신고에 따라 약 57억원의 추징금을 지불했고, 최근 Y제약은 대전지방국세청으로부터 3년치 영업이익 수준에 달하는 71억원 규모의 추징금을 물게 됐다.

또 지난 4월 23일 부산지방국세청이 H약품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으며, 서울지방국세청도 지난 5월 7일 C제약사의 조사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세무조사는 불법 리베이트 조사를 위한 수사당국과 공조 차원에서 이뤄지는 경우도 있어 업계의 긴장을 더하고 있다. 세무조사를 받는 업체들은 리베이트와 무관함을 강조하며 정기 세무조사라고 설명하지만, 이 또한 지출 내용 누락에 대해 증빙을 하지 못해 수백억원에 달하는 추징금 부과로 이어지는 형편이다.

특히 최근 세무조사는 업계 분야를 막론하고 조사대상 기업과 관할 지방 국세청의 이해관계를 배제하기 위한 '교차조사' 형태로 강도 높게 이뤄지고 있다.

교차조사는 기업이 소재한 관할 지방청이 아닌 다른 지방청에서 세무조사를 진행하는 것으로, 지역에 연고를 둔 기업에 대해 유착소지를 사전에 차단해 공정한 세무조사가 되도록 하는 취지다. 조선시대의 상피제(相避制)와 같은 맥락인 셈이다.

또 일부 조사는 본사에만 국한돼 진행되지 않고 지방 공장의 설비 구축 내역 등까지 확대 진행되며, 상위권 제약사뿐만 아니라 중소제약사에도 예외 없이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세무조사로 인한 거액의 추징금은 그대로 해당 분기의 손실로 이어진다"면서 "위축된 제약 환경 속에서 회사 입장에서는 부담이 크다"고 전했다.

다른 중소제약사 관계자는 "규모가 작은 업체에서 거액의 추징금을 부과받으면 구조조정의 시발점이 되기도 한다"면서 "세무당국이 마른 수건을 쥐어짜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예전에는 정기 세무조사 후 부과되는 추징금을 4~5년에 걸쳐 분할납부했는데 최근에는 분납 없이 일시불로 납부토록 하는 추세라 불가피하게 자회사까지 처분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에 국세청 측은 추징금 일괄납부가 원칙이며, 징수유예나 납부기한 연장 절차는 국세징수법에 명시된 내용에 따라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세무조사 대책 마련 고심…법적 대응도 검토

이 같은 상황에 따라 제약업계 일각에서는 대책 마련을 위해 고심하고 있다.

특히 Y제약은 리베이트 의혹에 대해 "조사 과정에서 증빙하지 못한 상품권 사용 내역은 임직원 복리후생을 위해 사용했다"고 부인하며, '기한 내에 국세기본법에 따른 이의신청, 심판청구 등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공시해 법적 대응 의지를 피력했다.

상품권 사용 내역 조사와 맞물려 법인카드 사용 내역에 대해서도 더욱 조심스러워진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모 제약사는 임직원에게 법인카드의 주말 사용을 자제하고, 사용 내역에 각별히 주의하라고 당부했다.

또 세무 관행에 대한 이해나 관련법 준수를 위해 애매한 부분은 과세관청에 유권해석을 의뢰하거나, 세무사 및 변호사 등을 직접 고용해 시스템을 강화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 업계 관계자는 "리베이트 관련 법이 강화는 많이 됐지만 아직 애매한 부분이 많다. 그러나 따라가지 않으면 결국 업체가 손해보는 구조이기 때문에 세무조사나 리베이트 조사 등에 철저히 대비하기 위해 인력과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세금 처분이 부당하다고 생각되면 법적 자문을 통해 조세소송 등으로 적극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법무법인 동인 이준근 변호사는 "세법을 준수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법에 어긋나는 처분을 받는 것은 안 된다. 법에 맞는 한도 내에서 처분을 받아야 하는데 법의 한도를 벗어난 부분은 당연히 불복할 수 있는 게 납세자의 권리"라며 "세무조사 과정이나 조사 이후 처분 과정에서 억울한 부분이 있으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 "제약업계의 리베이트에 대한 문제가 세무당국에는 물론 특별수사단까지 생기면서 지적됐는데, 한 업체의 노력만으로 개선될 부분이 아니라 업계에서 공감대를 갖고 영업 관행에 대한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또 생산이나 연구를 위해 거액의 시설투자가 이뤄지는데 투자금이 실제로 장부에 계산된 대로 집행됐는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한편 최근 상승세를 타고 있는 제약사 주식과 관련해 세무조사건은 주가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부는 과징금 부과 발표일에 일부 하락세로 장을 마감했지만 이내 회복했고, 상승세에 있던 Y제약은 추징금 부과 소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최근 최고가를 갱신했다.

세무조사 돌입 소식이 알려진 H약품은 소폭 하락했지만 이후 다시 꾸준히 상승했고, C제약사도 세무조사 소식과 상관없이 주가가 증가했다.

지난해 대신증권은 2013년 이후 세무조사를 받은 10개 상장사의 주식을 분석한 결과 세무조사가 주가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주가 흐름은 일회성 이슈보다 기업의 실적과 성장 가능성, 수급 등 요인에 더 민감하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