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면동의 면제와 동의과정 면제의 간극 <6>-끝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 2013년 개정을 기점으로 법적 규율 대상이 인간대상연구와 인체유래물연구 전체로 확대되면서 우리나라 의학연구가 윤리적 및 법적으로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고 있다. 이 법률의 주요 내용은 각 기관에 기관생명윤리위원회(IRB) 설치를 의무화하고, 유전자검사기관과 인체유래물은행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 등이다. 그러나 법시행 2년이 경과된 시점에서 개정법 공고 당시부터 제기됐던 많은 논란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임상연구의 문제점들과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혼돈들에 대한 적절한 시정조치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따라 (사)대한기관윤리심의기구협의회 (KaIRB) 정책위원회·메디칼업저버는 현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중 보완책이 시급한 일부 문제점에 관해 현장경험에 기반한 문제제기와 전문가 대안을 제시하는 특별 기획 시리즈를 마련했다. 아무쪼록 본 연재물이 현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의 여러 문제점들이 공론화되고 합리적인 대안들이 제안되는 시발점이 돼, 조속한 시간 내에 법률 개정에 적극 반영되기를 촉구하는 바이다. 단 기고문은 전문가 개인 의견이며, KaIRB 및 메디칼업저버의 공식의견이 아님을 미리 독자들에게 밝히는 바이다. (사)대한기관윤리심의기구협의회 (KaIRB) 정책이사 가톨릭의대 백상홍 개념·기준 도입 시 ‘서면동의’와 ‘동의’ 뒤섞여 문제 발생모든 동의과정 면제할 수 있는 기준 마련해야
유소영
서울아산병원
피험자보호센터
특수전문학자
KaIRB 정책 위원
2013년부터 시행된 개정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하, 생명윤리안전법)’은 인체유래물연구뿐 아니라 인간대상연구를 포함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서면동의’를 면제받을 수 있는 기준을 마련했다. 그런데 생명윤리안전법의 서면동의는 그 개념부터 시작해 임상현장에서 적용하기까지 몇 가지 중요한 문제를 지니고 있다.

서면동의 면제와 동의과정 면제의 명시적 구분 필요
첫째, 생명윤리안전법의 ‘서면동의 면제’에 해당하는 법률 제16조 제3항 등은 서면동의와 동의를 혼용해 명시하고 있다. 사실 서면동의 면제와 동의과정 면제는 분명하게 그 개념과 목적에서 주요한 차이가 있다.

생명윤리안전법의 서면동의 면제는 미국 DHHS 산하 임상연구보호국(OHRP) 45 CFR 46.117(c)의 ‘waiver of documentation of consent(waiver of signature)’의 개념을 가져온 것으로, 연구 대상자로부터 서명, 성명 등을 기재해 동의를 받는 것을 면제한다는 의미이다. 즉, 연구자가 연구대상자에게 연구에 대해 설명하고 동의를 받는 과정(예: 구두 동의)은 유지되나, 대상자가 연구에 참여하고자 한다는 것을 증명할 목적으로 성명, 서명, 날짜를 기입하는 것을 면제받는 것이다.

45 CFR 46에서 서면동의 면제의 주목적은 동의서에 서명함으로써 연구대상자의 비밀보장이 침해되는 등 서면동의로 인해 오히려 대상자의 위험이 가중된다고 판단될 경우, 이로부터 연구대상자를 보호하기 위함에 있다.

반면 우리나라 생명윤리안전법에는 없는 개념인 ‘동의과정 면제(waiver of informed consent process)’란, 동의 그 자체를 면제하는 것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이 기준을 충족한다고 IRB에서 판단할 경우 서면동의, 구두동의 등 모든 동의 과정을 면제받을 수 있다.

이때, 동의과정 면제의 주 목적은 서면동의 면제와 달리 동의를 받는 것 그 자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해당 연구의 위험성이 최소 위험에 해당한 경우 동의 없이 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함에 있다. 따라서 생명윤리안전법은 서면동의 면제와 동의과정 면제는 서로 다른 개념과 기준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 단어를 명료하게 명시할 필요가 있다.

현실적인 서면동의 면제 기준 세워야
둘째, 생명윤리안전법의 서면동의 면제 기준은 비현실적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생명윤리안전법의 서면동의 면제 개념은 이 법의 기틀이 된 미국 45 CFR 46.117(c)의 ‘waiver of documentation of consent (waiver of signature)’를 번역해 가져온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 기준은 45 CFR 46.117(c)에서가 아닌 동의과정 면제(waiver of informed consent process) 기준을 명시한 45 CFR 46.116(d)에서 일부 가져왔다. 즉 생명윤리안전법의 서면동의 면제 기준은 45 CFR 46상에서는 동의과정 면제(구두동의 면제 포함) 기준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 기준을 만족시키면서도 구두 동의는 여전히 받을 수 있는 연구는 지극히 한정될 수밖에 없다. 우리 법은 서면동의 면제의 주목적이 연구대상자의 정보보호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이는 반영하되 서면동의면제 수준에 맞는 기준을 재정립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동의과정 면제 기준 도입 필요
마지막으로, 생명윤리안전법은 동의과정 면제에 대한 기준이 없다.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현재 생명윤리안전법에는 서면동의 면제 기준만 존재한다.

그런데 임상연구에는 서면동의 면제만으로는 연구 진행이 불가능한 경우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개인식별정보가 익명화된 자료에 대해 후향적 연구를 진행하고자 할 경우 대상자의 연락 가능한 정보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서면동의뿐 아니라 구두동의를 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현재 생명윤리법에서는 동의 전체를 면제하는 명시적 조항이 없기 때문에 엄격히 법을 적용할 경우, 해당 연구는 동의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진행할 수 없다.

이러한 문제로 인해 국내 다수의 기관에서는 자체적으로 미국 45 CFR 46.116(d)의 동의과정 면제 기준을 적용하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외국법을 준용한 것이기 때문에, 현실적인 연구 수행을 위해 우리 법에서도 동의과정 면제 기준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동의와 관련된 사항은 임상연구에서 동의가 지닌 가치를 고려해 본다면 신중하게 고민하고 규정됐어야 하는 부분이다. 생명윤리안전법상의 불명확한 개념과 기준으로 인해  연구대상자를 적절하게 보호하지 못하거나 필요한 연구를 수행할 수 없게 되는 것은 이 법이 의도한 바가 아니다. 임상현장에서 이 법 상의 규정을 근거해 정합성 있는 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앞서 지적한 문제점을 해결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생명윤리안전법 무엇이 문제인가’ 연재를 마칩니다. 
(사)대한기관윤리심의기구협의회(KaIRB) 필진과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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