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불균형' 심각…대구서 "지역 심장센터 건립" 목소리

CABG 수도권 점유율 78%...건수부족·질저하 우려

심장수술 서비스의 지역적 불균형을 해소하려면 국가 지원에 의한 심장수술센터가 설립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수도권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심장수술 분야는 유독 심각하다.

2011년 기준 건강보험공단의 시도별 수술통계를 살펴보면, 동일한 심장질환임에도 경피적관상동맥중재술(PCI)이나 스텐트 삽입술의 수도권 점유율은 40.5~42.8%인 데 반해 관상동맥우회술(CABG)과 선천성심장기형수술은 각각 77.7%, 63.8%에 달했다.

이는 같은 해 7월 발표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적정성 평가 결과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심평원은 2009년에 전국 76개 의료기관에서 시행됐던 관상동맥우회술 3526건 중 지방소재 35곳의 수술 건수(771건)를 다 합쳐도 수도권 1개 대형병원(975건)에 미치지 못한다는 충격적인 결과를 보고했다. 기관별 관상동맥우회술 실시 건수 역시 최소 1건~최대 975건으로 편차가 매우 심하다<그림>.

▲ 2014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적정성 평가 결과

문제는 이러한 지역 불균형이 단순히 현상에만 그치지 않고 수술사망률, 수술 후 재원일수 같은 진료의 질로도 연결된다는 것이다. 적정성 평가 결과를 보면 관상동맥우회술 1등급을 받은 10개 병원이 모두 수도권에 편중됐음은 물론이고 전반적인 진료결과 지표 역시 상급종합병원이 종합병원에 비해 우수함을 알 수 있다.

선진국과 비교해봐도 국내 관상동맥우회술 사망률(3.8%)은 뉴욕주(1.58%, 2008~2010년)에 비해 2배 이상, 평균 재원일수(16.4일)는 펜실베이니아주(5.9일, 2008~2009년)의 약 3배에 해당하는 수치다. 갈수록 심혈관질환환자수가 늘어나는 시점에서 이같이 불량한 치료성적은 수도권 쏠림, 흉부외과 전문의 급감과 더불어 악재가 아닐 수 없다.


"국가 주도 지역 심장수술센터 만들자"

▲ 박남희 계명의대 교수

'메디시티 심장센터 설립 타당성 조사연구'의 책임을 맡은 계명의대 박남희 교수(계명대동산의료원)는 이에 대한 근본원인을 '진료량과 진료결과 간의 상관관계(volume-outcome relationship)'에서 찾았다.

수도권 환자 쏠림이 지방 병원들의 수술 건수 부족을 초래하고, 의료 질 저하와 환자의 수도권 이동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게 한다는 지적이다.

박 교수는 "지방 병원들의 연평균 수술 건수는 22건으로 volume-outcome relationship에서 제시하는 기준량(2년에 50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면서 "지방병원의 수술경험 및 시스템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심장수술 서비스 분야의 국가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정부가 해결책으로 제시한 16개의 권역별 심뇌혈관질환센터에 대해서는 긴급상황 시 3시간 이내에 심장내과의 중재시술을 하기 위한 응급의료서비스에 불과하며, 흉부외과에서 담당하는 심장수술은 범위에 포함되지 않아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흉부외과는 인력자원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지역 내 경쟁모델로는 승산이 없다"면서 "지역협력모델로서 특정 병원과 분리된 독립적인 시설이 필요하다. 하이볼륨, 하이퀄리티의 센터가 세워지면 지역사회에 도움은 물론 분초를 다투는 환자들의 생존기회가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구 '메디시티 심장센터'...3년째 제자리걸음만

현재 국가 주도의 심장수술센터 도입이 가장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지역은 대구다.

지난 2009년 대구시 5개 지역병원 흉부외과 의사들이 심장수술과 관련된 의료 불균형을 해소해 보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지자체와 연합해 '메디시티 심장센터(가칭)' 도입을 처음 주장했으나, 한동안 주춤했다가 2013년부터 재논의되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난색을 표명하던 보건복지부가 입장을 바꾼 데는 2013년 대구 전 지역 흉부외과 전공의 지원율 0%라는 초유의 사태로 인한 충격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갈 길은 멀다. 2013년 7월 대구광역시가 계명대학교 산학협력단에 의뢰했던 '메디시티 심장센터 설립 타당성 조사연구' 결과가 나왔지만, 정부가 지난해 10월과 올해 3월 각각 전국 단위 심뇌혈관질환관리 현황 및 모형 타당성조사를 시작하고 그 결과들이 나온 뒤에야 정책시행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

연구책임자인 박 교수는 "대구 지역의 문제로 국한하지 않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정부의 입장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수년째 속앓이만 하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또한 "현재 추세라면 지방병원의 심장수술 인프라가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아까운 국비를 들여 연구를 진행했는데, 시간이 너무 없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지역병원·지자체 연합…60병상 규모 개방병원 모델

심장수술센터 건립의 당위성이 확보된 다음에는 구체적인 사업 모형을 고민해 봐야 한다.

박 교수는 '메디시티 심장센터 설립 타당성 조사연구'를 통해 메디시티 심장센터 사업모형을 답으로 제시했다. 기존 민간-공공 경쟁모델에서 벗어나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민간과 국가 또는 지자체가 상호협력하는 방식의 '신개념 공공의료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콘셉트인데, 쉽게 예를 들자면 대구지역 5개 대형병원이 혁신적인 진료시스템을 도입한 뒤 인력, 장비, 시설 등 심장수술 관련 인프라를 공동 활용하는 개방병원 형태다.

이를 위해 지역 내 흉부외과 의사 14명이 뜻을 모았고, 계명대동산의료원을 비롯한 경북대병원, 대구가톨릭대병원, 영남대병원, 대구파티마병원의 5개 원장도 합의를 이뤘다.

국내 최초로 심장수술에 성공했다는 상징성 외에도 서울·수도권을 제외한 최다 수술지역으로서 풍부한 수술경험과 뛰어난 R&D 전문인력을 보유하고 있고, 일본, 중국, 러시아 등 해외환자 유치 전망이 밝다면서 대구지역 우선설립의 당위성을 피력했다.

박 교수가 롤모델로 삼은 곳은 독일 베를린 심장센터.

우리나라에는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심장수술을 집도한 기관으로 알려져 있다. 1986년 독일 정부가 국민들의 심장수술 적체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국비를 들여 세운 6개 권역심장센터 중 하나인데, 20여 년 만에 세계 5위 안에 드는 심장수술 전문병원으로 성장했다.

중환자실 50병상을 포함 164개 병상만을 가동해 연간 심장혈관수술 2500~3500건, 심장 또는 심장·폐이식수술 60건가량을 소화한다. 국내 실정에 맞게 적절히 수정, 반영한다면 대구에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얘기다.

박 교수는 "의료진 110명, 60병상 규모의 개방병원이 가장 현실적이고 경제적 타당성이 높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독일에서도 설립 당시 초기비용 외에는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들었다. 성과에 따라 단계적 추진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보건복지부 질병정책과 최진수 주무관은 "구체적인 심장수술 현황과 함께 왜 수도권에 집중되고 있는지, 전국 단위로 고르게 분포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지자체와 복지부 차원에서 연구용역을 실시 중"이라고 밝혔다.

최 주무관은 "6월 말이라고 알려진 것은 국회 예산반영을 고려한 지적일 뿐 잘못된 정보다. 8월로 예정된 전국조사와 더불어 올 12월 모형 타당성조사 결과를 봐서 정책적인 부분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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