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윤리안전법 무엇이 문제인가 <5>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 2013년 개정을 기점으로 법적 규율 대상이 인간대상연구와 인체유래물연구 전체로 확대되면서 우리나라 의학연구가 윤리적 및 법적으로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고 있다. 이 법률의 주요 내용은 각 기관에 기관생명윤리위원회(IRB) 설치를 의무화하고, 유전자검사기관과 인체유래물은행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 등이다. 그러나 법시행 2년이 경과된 시점에서 개정법 공고 당시부터 제기됐던 많은 논란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임상연구의 문제점들과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혼돈들에 대한 적절한 시정조치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따라 (사)대한기관윤리심의기구협의회 (KaIRB) 정책위원회·메디칼업저버는 현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중 보완책이 시급한 일부 문제점에 관해 현장경험에 기반한 문제제기와 전문가 대안을 제시하는 특별 기획 시리즈를 마련했다. 아무쪼록 본 연재물이 현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의 여러 문제점들이 공론화되고 합리적인 대안들이 제안되는 시발점이 돼, 조속한 시간 내에 법률 개정에 적극 반영되기를 촉구하는 바이다. 단 기고문은 전문가 개인 의견이며, KaIRB 및 메디칼업저버의 공식의견이 아님을 미리 독자들에게 밝히는 바이다. (사)대한기관윤리심의기구협의회 (KaIRB) 정책이사 가톨릭의대 백상홍 생명윤리안전법 주민번호처리 근거 마련해야개인정보 보호와 임상연구 효율성 사이 균형점 찾길
유소영
서울아산병원
피험자보호센터
특수전문학자
KAIRB 정책 위원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으로 주민번호 처리 전면 금지
2014년 8월 7일, 우리는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으로 인해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개정법 시행에 따라 이날부터 모든 공공기관과 민간사업자 등 사회 전 분야에서 주민번호 처리가 원칙적으로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주민번호 ‘처리’ 금지란, 주민번호 수집 금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수집된 정보를 연계, 연동, 기록, 저장, 보유하는 것부터 검색, 출력, 이동, 제공하는 등의 모든 제반 행위를 할 수 없게 된 것을 의미한다.

주민번호처리 금지 조항에 따라 △법령(법률, 시행령, 시행규칙, 법정 서식)에 구체적으로 주민번호의 처리를 요구하거나 허용하는 경우 △정보주체 또는 제3자의 급박한 생명, 신체, 재산의 이익을 위해 명백히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기타 주민번호 처리가 불가피한 경우로서 안전행정부령으로 정한 경우가 아니라면, 주민번호를 대신한 대체수단(생년월일, I-PIN 등)을 도입해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또한 개정법 이전인 2014년 8월 7일 이전 이미 수집·보유하고 있던 주민번호도 사용할 수 없게 되었으며, 기 보유된 주민번호는 법 시행 2년 이내인 2016년 8월 6일까지 파기해야 한다. 만일 이를 위반해 주민번호를 처리했다면, 개인정보보호법 제75조에 따라 5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공공자료연계 이용한 연구 위기 직면
개인정보보호법의 주민번호 처리 금지 원칙은 임상의학연구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개정법 시행 이전에는 ‘생명윤리 및 안전에 대한 법률(이하 생명윤리안전법)’ 제10조, 제16조, 제18조 등에 따라 기관위원회(IRB)에서 승인을 받고 연구대상자에게 동의를 얻었다면 주민번호 수집 및 이용이 가능했다.

그러나 개정법 시행 이후는 주민번호 처리가 더 이상 IRB의 승인과 연구대상자 동의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임상연구에 관한 특별법인 생명윤리안전법에서 △주민번호 처리를 구체적으로 허용하는 조문 또는 서식이 없고 △임상의학연구는 정보 주체 또는 제3자의 급박한 생명, 신체, 재산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로 분류되지 않으며 △안전행정부령에서는 해당 조항을 마련하지 않아 임상의학연구에서 더 이상 주민번호를 처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임상의학 연구분야에 몇 가지 유념해야 할 변화가 있었다. 첫 번째로, 개정된 개인정보보호법 시행으로 인해 공공자료연계를 이용한 연구는 위기에 직면했다.

예를 들어, 연구자는 특정질환을 지닌 환자(연구대상자)의 추적관찰연구의 일부로 통계청, 공단 등에서 구축된 사망정보 또는 사망원인자료를 연계할 경우가 있다. 이때는 반드시 사망정보와 환자인 연구 대상자와의 일대일 매칭이 필요하기 때문에, 개정법 이전에는 연구대상자의 가장 고유한 개인식별정보인 주민번호를 수집해 이용했다.

하지만 개정법의 주민번호 처리 금지 원칙이 적용된 후에는, 이와 같은 의미 있는 연구 진행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해졌다(주민번호 대체수단으로 안전행정부가 권장하는 생명월일이나 I-PIN 등으로는 환자의 사망정보를 연계하는 것은 불가능). 다만, 복지부 보건산업기술과에서  ‘보건의료기술 진흥법’ 시행령[제32조의2(민간정보 및 고유식별정보 등의 처리)]에 법령근거를 발 빠르게 마련해 공공기관의 경우 연구대상자의 주민번호를 처리해 연구에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해당 법령에서 명시한 공공기관에는 민간기관은 제외돼 있고 생명윤리안전법에서 주민번호처리 근거가 없기 때문에 민간기관에서 해당 정보를 법적으로 타당하게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는 민간기관과 공공기관 사이에 의도치 않게 정보의 불균형을 야기하는 것으로, 이로 인해 민간기관과 공공기관의 임상의학연구의 격차는 커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리인 증명서류에도 주민번호…임상현장서 처리 곤란
또 개정 개인정보보호법은 임상연구 관련 규정과 병행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예로 연구자는 생명윤리안전법 제16조제2항 등에 따라 동의능력이 결여된 연구대상자에게는 대리인의 동의를 받고 대리인임을 증명하는 서류(예, 가족관계증명서, 주민등록등본)를 확보하곤 하였다. 이 같은 증명서류는 식약처의 실태조사, 스폰서의 모니터링, 기관의 내부점검의 주요 점검 요소이기도 하다. 또한 생명윤리안전법에 따라 연구자는 개인정보 수집·이용 및 제공 현황을 포함한 인간대상연구의 기록은 연구가 종료된 시점으로부터 3년간 보관해야 하며(시행규칙 제15조 제2항), 이때 가족관계증명서를 수집했다면 이는 개인정보 수집에 해당하여 3년간 보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가족관계증명서에 주민번호가 기재돼 있다는 것이 문제다. 연구자가 대리인 동의 증명을 위해 해당 서류를 수집·보관해야 의무와 개정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증명서류에 기재되어 있는 주민번호는 수집하지 말아야 하고 기수집된 주민번호 또한 2016년 8월 6일까지 파기해야 하는 의무 사이에는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임상연구기관에서는 자체적으로 증명서류는 대리인에게 받되 해당 주민번호는 도려내어 보관하는 등의 지침을 마련하고 있으나 여전히 임상현장에서는 적용의 어려움이 있다.

생명윤리안전법상 주민번호처리 가능한 법적 근거 필요
안전행정부는 이번 개인정보보호법 개정 이유를 주민번호 유출 및 악용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이로 인해 국민들이 불안 가중 및 유출로 인한 2차적 피해의 확산이 우려되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일반법으로서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의 의미는 크다. 그러나 생명윤리안전법이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른 임상의학연구에서의 파급효과를 적극적으로 고려하지 않아 두 법의 간극 사이에 의도하지 않은 중요한 문제들이 발생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따라서 주민번호처리 전면 금지 원칙을 통해 규제하고자 하는 것이 임상의학연구 그 자체가 아니라는 점과 주민번호 처리를 통해 자료원들이 연계됐을 때 창출되는 임상의학연구에서의 가치를 고려해 보면 생명윤리안전법상 주민번호처리가 가능하도록 법정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때에는 필요한 연구의 활성은 도모하면서도 개인정보보호법이 우려하는 주민번호 노출을 최소한 하기 위한 안전망(예, 연구와 이해관계가 없고 정보보안을 담당하는 honest broker를 통한 주민번호 처리 및 외부 자료 연계)을 구축할 수 있도록 임상의학연구와 관련된 각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 사회 합의를 이끌어 내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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