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등수가제 등 해결 '내부조율' 최대 과제로...이해관계 따라 과목별·지역별 의견 엇갈려

 

정부가 차등수가제 폐지를 목표로 칼을 빼들고 나섰다.

2001년 건강보험 재정안정화 대책으로, 제도가 도입된 지 무려 14년 만의 일이다. 차등수가제는 의료계가 대표적인 불합리 규제로 꼽으며 지속적으로 폐지를 주장해왔던 사안. 오랜 기다림 끝에 고대하던 '밥상'이 눈앞에 차려졌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의료계 내부 의견통일이라는 거대한 숙제를 먼저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너무도 익숙한 숙제, 정부와 국회까지 없애야 할 제도라고 한목소리를 내는데 의료계 내부에서 무슨 이견이 있겠느냐만, 상황은 그리 단순치가 않다. 크게는 과목·지역별로 작게는 각 기관별로, 이해관계에 따라 뿔뿔이 흩어져 버린, 이른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단면이다. 

‘차등수가제 폐지’ 14년 만에 기회 왔는데… 

정부는 최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열어 차등수가제의 폐지를 공식 제안했다. 정부가 그간 제도 폐지에 소극적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는 꽤 의미 있는 변화다.

그간 정부는 차등수가제가 환자 분산을 통한 의료의 질 제고에 기여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제도 폐지에 반대해왔다. 차등수가제 전면 폐지 시 연간 600억원의 건강보험재정이 추가 소요된다는 점도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그간 차등수가제 폐지에 경계심을 갖고 있던 정부가 제도 폐지를 검토하자며 먼저 의료계에 손을 내민 것.

박근혜 정부가 '불필요한 규제 철폐'를 목표로 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데다, 국회의 제도개선 요구가 더해지면서, 무려 14년 만에 물줄기가 다른 방향으로 휘었다.

복지부는 지난달 말 열린 건정심에서 "차등수가제와 관련해 그간 당초 취지인 적정 진료시간 확보 효과가 불분명하고, 진료과목별 특성이 고려되지 않는 점, 병원급은 제외하고 의원급에만 적용되는 점 등이 문제로 지적돼왔다"며 "이에 차등수가제 폐지 등 제도 개편방향을 모색키로 했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건정심 추가 검토를 거쳐, 차등수가제 개편 방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차등수가 삭감, 이비인후과 등 일부과목에 집중

일단 판은 깔렸지만, 제도 개선까지는 여전히 적지 않은 난관이 예상된다. 현재로써는 의료계 내부의 이견들을 조율해 내는 일이 최대 난제다.

 

차등수가제란, 의사 1인당 1일 진찰횟수가 75건을 초과할 경우 진찰료를 차감해 지급하는 제도를 말한다. 현재 의원급 의료기관에만 적용되고 있다.

의사 1인당 1일 진찰횟수가 75건 이하라면 진찰료를 100% 지급받을 수 있지만 △1인당 진찰횟수가 75건 초과~100건 이하라면 진찰료의 10% △100건 초과~150건 이하라면 진찰료의 25% △150건 초과 시에는 절반이 깎여 지급된다.

주로 급여위주로, 환자를 많이 보는 진료과목에 불리한 구조. 2014년 기준 차등수가 삭감액의 71.6%가 이비인후과와 정형외과, 내과, 소아청소년과 4곳에서 발생했을 정도로 특정과목에 손해가 집중되고 있다.

차등수가가 적용되는 기관의 비율도 과목별로 크게 차이가 난다.

2014년을 기준으로, 이비인후과는 전체 의료기관 가운데 63%가 차등수가제에 걸려 진찰료의 일부를 삭감받았다. 정형외과의 절반(49%), 내과와 소아청소년과 등도 전체 의료기관 가운데 30% 이상이 차등수가제에 걸렸다. 반면 성형외과는 차등수가제를 적용받은 기관이 단 1곳도 없었고, 정신건강의학과와 영상의학과, 비뇨기과, 산부인과 등도 90% 이상의 기관이 차등수가의 칼날을 비켜갔다.

"죽을 맛" "남의 일" 이해관계 따라 엇갈린 시선

의료계 내부의 입장이 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비인후과와 정형외과 등에서는 차등수가제 폐지로 인해 당장에 심각한 금전적 손해를 받고 있는 만큼 이를 회복하는 일이 명운을 걸 만큼 중대한 사안이지만, 성형외과 등 다른 진료과목은 제도가 존재해도 해당사항이 없으니, 사실상 차등수가 존폐여부 자체에 크게 관심을 기울일 이유가 없다.

더욱이 복지부가 차등수가제 폐지에 따른 대안으로 '진료시간' '환자 밀집도' 공개 카드를 내놓으면서, 상황이 조금 더 복잡해졌다. 차등수가제 예외지역에 존재하던 전문과목들의 입장에서는 사실상 없던 규제가 새로 만들어지는 셈이니 반감이 크다.

이 문제는 지난 의협 정기 대의원총회에서도 이슈가 된 바 있다.

대구 김은용 대의원은 "차등수가제에 적용받는 기관은 전체의원 중 일부"라며 "환자 수와 진료시간 공개라는 위험을 감수하며, 나머지 기관들까지 족쇄를 차야 하느냐"고 지적했고, 경기 이용진 대의원도 "조건 없는 폐지라면 모르겠지만, 그에 따른 조건이 붙고 그 역기능이 크다면 반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의사협회 또한 입장 정리가 쉽지 않다. 부대 조건 없는 무조건 폐지로 일단 가닥을 잡았지만, 이 경우 정부에게 줄 '가입자 설득 카드'가 마땅찮다. 말그대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애매한 상황이라는 얘기다.

차등수가제 폐지는 유사한 이유로 이미 한 차례 실패의 쓴잔을 맛 본 바 있다. 2010년 개선작업에도 과목 간 이견을 넘지 못해 야간환자를 차등수가 적용대상에서 제외하는 선에서 마무리된 바 있다.

내부 반목이 현안개선 발목...'각자도생' 비애

노인환자 외래정액제 개선과 초재진료 통합 등도 의료계 내부에서 수차례 논의와 검토를 거쳤지만 아직 결론을 보지 못한 과제 중 하나다.

노인정액기준 상향은 지역별로 의견이 조금 다르다.

한 지역의사회 관계자는 "지역 특성상 노인환자의 비율이 높다 보니, 사실상 할인진료를 하는 의료기관들이 많다"며 "수가가 올라도, 수익 인상을 체감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일차의료 활성화와 의원 수익구조 개선을 위해 노인정액 기준을 상향 조정, 의원들이 노인환자들로부터 정당한 진료비를 지급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

반면 수도권 지역 등 일각에서는 그 필요성을 크게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 인천 지역의 한 개원의는 "우리 지역에서는 노인정액제에 대해 별다른 불만이 없다"며 "의사의 실익과 연결되는 부분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의료기관의 수익보다는 노인의 복지와 직결되는 부분이므로, 의사협회가 나서 진행할 사안은 아니라는 반박이다.

초재진료 통합 논의 또한 전문과목별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수년째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재진환자의 비율이 높은 내과는 애매한 초재진료 기준에 의한 삭감 피해를 막기 위해 초진료와 재진료를 통합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반면 초진환자의 비율이 높은 이비인후과와 소아청소년과 등에서는 반대입장이다. 이들은 "초진료와 재진료는 엄연히 다른 의료행위로써 이를 통합하는 것은 불가하며, 진찰료를 단순화하는 경우 다른 수가 조정에도 영향을 미치는 만큼, 신중해야 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각각의 이해관계에 따라 극명하게 엇갈리는 선택. 결국 이 같은 상황이 서로 간의 발목을 옭아매는 족쇄가 되고 있다.

한 시도의사회 관계자는 "어느 순간부터 의료계에 제각기 먹고 살길을 찾아야 한다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번졌다"며 "살기 위해 각자도생을 할 수밖에 없는, 또 살기 위해 같은 의사들끼리도 다퉈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씁쓸해했다.

또 다른 지역의사회 한 관계자는 "과목 간 이해관계 갈등이야 예전부터 있어왔지만, 그 당시에는 다 같이 먹고 살 만하다 보니 남이 내 것을 조금 가져가도 크게 화를 내거나 욕심을 내는 분위기가 아니었다"면서 "개원가의 삶이 팍팍해지다 보니 작은 이해관계에도 민감해지고, 갈등이 표면화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것"이라고 상황을 진단했다.

그는 "의협이 중앙단체로서 적극적으로 의견조율에 나서야 하나, 각자 다 밥그릇이 달린 문제이다 보니 선을 긋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의료계 내부의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하는 상시 논의 테이블을 만들어, 현안 발생 시 상호간 협의를 통해 합의점을 찾도록 하는 시스템이 필요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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