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심판·소송 패배 시 손해액 징수 논란

 

지난달 23일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허가특허연계제도를 보완하는 '국민건강보험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의결됐다. 무리한 특허방어로 건강보험 재정에 손실을 끼친 경우 해당 제약사를 상대로 손해액을 징수토록 하는 이른바 '오리지널 제약사 약제비 환수법'이다.

이번 건보법 개정안은 특허심판 또는 특허소송에서의 패소 자체를 '건보재정에 손해를 끼친 부당행위'로 간주하는가 하면, 이에 불복할 경우 제약사가 소송을 통해 무과실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오리지널을 보유한 다국적제약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일고 있다.

또 다국적사로부터 건강보험 재정을 지키겠다는 본래 취지와 달리 국내사도 의약품 특허의 약 26%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한미FTA로 인한 허가특허연계제도가 3월 15일에 시행된 지 약 한 달 보름이 지난 지금, 건보법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했을 때 향후 어떤 형태로 제약업계에 여파를 미칠지 조명해봤다.

다국적사 "정당한 권리행사 침해" 반발

이번 개정안은 오리지널사가 형식적 요건만 충족하는 경우 일괄적으로 판매금지 조치가 가능해 사실상 보호 필요성이 낮은 특허권을 과도하게 보호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판매금지 신청 권한이 있는 오리지널사가 권리행사에 신중을 기하도록 책임을 부여하는 조치라는 것이 정부의 입장.

아울러 재판부마다 손실액과 관련해 다른 판단을 할 가능성을 차단하고 손해액 산정의 형평성과 예측 가능성을 담보하며 장기간 소송으로 인한 자원낭비를 방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는 설명이다.

이에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KRPIA)는 특허법에 따라 등록된 특허를 1심 패소만으로 공단이 건보재정에 손실을 입었다고 간주한 뒤 환수하면 특허권의 정당한 권리행사를 위축시킬 수 있어 위헌 소지가 있다고 반박했다.

KRPIA 관계자는 "특허권 남용을 통한 건보재정의 손실을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당한 특허권을 위축시키고 침해하는 바가 너무 크다"면서 "이는 혁신신약 개발에 대한 의욕저하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현재도 특허권 남용은 공정거래법 및 민법에 의한 제재와 손해배상으로 규제하고 있는데, 건보재정 손실이 있다고 인식했다면 공단이 소송을 통해서도 해결할 수 있는데, 이를 규제하는 것은 '과잉입법금지원칙'에 배치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전 세계적으로도 소송의 패소결과만 갖고 행정청이 관련 재정에 대한 부당이득을 징수하는 유래는 찾을 수 없으며, 구체적 손해 발생 여부 및 손실액은 법원 판단에 의해 결정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런 측면에서 KRPIA는 건보법 개정안이 원안대로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법적 대응도 검토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른 다국적사 관계자는 "물론 건보재정도 중요하지만 특허권을 너무 간과해서는 안 된다"면서 "이를 법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원리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개정안의 근거로 제시된 호주의 오리지널 제약사에 대한 손해배상 제도 또한 국내와 상황이 다르다는 지적이다.

이번 입법 과정에는 오리지널사와 제네릭사 간 특허분쟁 소송에서 연방정부와 주정부(건강보험운영자)가 의무적으로 공동당사자로 참여하는 호주의 사례가 입법 근거로 제시됐다.

이에 대해 다국적사 관계자는 "호주도 패소했다고 행정처가 마음대로 징수하는 게 아니라 법원에서 오리지널사에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인정할 경우 적용한다"고 꼬집었다.

특허 26% 보유했지만…국내사는 '관망태세'

다국적사의 격한 반발과 달리 국내사는 관망태세를 취하고 있다. 문정림 의원(새누리당)이 법안심사 소위에서 "다국적사로부터 건강보험 재정을 지키기 위한 조치라는 정부의 설명과 달리, 국내 의약품 특허의 26%가량을 국내사가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국내사의 피해를 우려했지만 크게 와 닿지 않는다는 것.

한 국내 제약사 특허팀 관계자는 "국내사가 보유한 특허 비율이 어느 정도 될지는 모르지만, 국내 제약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특허 내용을 봤을 때 건강보험재정에 해가 됐다고 판단돼 손실상당액을 징수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라며 "아직 국내 신약이 시장에서 많은 영역을 차지하는 것도 드물어서 우려하기엔 이르다"고 전했다.

다른 제약사 관계자는 "외국계 오리지널을 직접 라이센싱해서 쓰는 회사들은 골치 아플 수 있지만 대부분은 오리지널을 보유한 다국적사의 무분별한 판매금지 신청을 막을 수 있다고 공감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복제약 판매금지 신청을 무분별하게 할 수 없게 되니 최소한 몇 개월이라도 시간을 벌 수 있지 않나. 개인적으로는 허가특허연계제도에 대한 절묘한 법안이라고 본다"고 평가했다.

보건복지부 이선영 보험약제과장도 "법의 취지나 목적을 다국적사로부터 건보재정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 바 없다. 다국적사든 국내사든 약사법으로 보호되는 지적 재산권은 보호되는 부분이고, 나중에 알고 보니 무효였거나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 아닌 것에 고가의 건보재정이 지출된 것을 징수하겠다는 취지"라고 선을 그었다.

 

한편 4월 30일 현재 건보법 개정안은 1일 상임위 의결을 거쳐 6일 본회의에서 논의될 전망이다.

원안대로 통과될 경우 공단은 건보법 제101조 제1항을 위반해 보험자·가입자 등에게 소실을 준 제조업자에 대해 '손실상당액'을 징수한다. 손실상당액은 '판매금지기간 동안 해당 약제의 요양급여 실시량×단위당 요양급여비용(약제 상한가)×약가인하 차액분(30%(100%-70%))'과 같은 방식으로 산정된다.

손실 상당액 부담의 주체는 의약품제조업자가 위법·부당한 판매금지로 인해 반사적이익(초과이익)을 얻은 점을 감안해 공단에 손실상당액을 납부하도록 한 후 그 납부금액에 해당하는 비용 한도에서 등재특허권자 등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구상권)를 행사토록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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