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협회장 출신 공단 이사장 다른 결과 기대...원가분석 시스템 첫 도입
만약 올해 협상에서 '원가'에 대한 얘기로 '갑론을박'이 벌어질 경우, 평균적인 요양기관들의 자료를 제공받은 후 해당 시스템을 이용해 경영의 어려움이 원가 때문인지, 아니면 무리한 경쟁, 비효율, 과잉 투자 때문인지를 분석할 계획이다.
공단 관계자는 "협상에서 수년째 공급자-보험자 간 다툼과 갈등이 생긴 것은 적정 원가에 대한 규명이 이뤄지지 않은 점이 가장 큰 원인"이라며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건보 누적 흑자 약 13조원…해석은 각각
건보 재정 상황까지 풍요롭다. 당기 흑자만해도 4조 6000억원을 눈앞에 두고 있고, 누적 흑자가 벌써 12조8000억원을 넘어섰다.
공급자단체 측에서는 이를 두고 "공단의 곳간은 쌓여 가는데, 이는 저수가에 기인한 것으로 공급자의 희생 덕에 만들어진 돈"이라며 "사상 최대 흑자를 ‘적정 수가’로 가는 발판으로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가입자단체 측에서는 "공단의 재정이 쌓인다는 것은 환자들이 아파도 병의원에 가지 않은 데 따른 것"이라며 "환자들이 마음 놓고 병의원을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성 강화에 대거 투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공급자와 가입자가 생각하는 건보 재정의 ‘종착지’는 다르지만, 일단 이 돈을 '써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일치된 의견을 보이고 있다.
특히 수가협상을 앞둔 지금 시점에서 공단의 풍족한 곳간은, 공급자들이 바라볼 때 적정 수가로 가는 더할 나위 없는 '청신호'인 셈이다.
다만 성 이사장은 "아직 들어오지 않은 4조 5000억원을 제외하면 7조원 정도로 약 2개월의 진료비에 불과하다”며 "추후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건보 재정의 적용인구 증가, 보험료 내는 인구 감소 등을 고려할 때 안정적 재정 운영을 해야 한다"며 공급자·가입자의 기대를 누그러뜨렸다.
긍정적 전망…"김칫국 마시기" 비관론도
현재 공단과 보건의료계를 둘러싼 수많은 상황이 올해 수가협상을 희망적으로 바라보게 하지만, 이는 공단의 재정처럼 해석하기 나름인지라 '김칫국 마시기'라는 비관론도 나오고 있다.
일단 차등수가제 폐지, 노인정액제 상향 조정 등 그간 의료계에서 주장해온 부분에 대해 정부가 논의를 시작하면서 수가협상에 영향을 미칠 것 이라는 전망이다.
지난달 의협 정기 대의원총회에서도 대의원들은 이 부분에 대한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진료시간 공개는 먼 훗날 일이라고 치부하더라도, 당장 다음달 수가협상에서 이러한 정치적 이슈를 가지고 나오면 인상률을 깎을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한 대의원은 "사실상 차등수가제 폐지, 노인정액제 상향은 우리에게 별다른 이득이 없다. 모두 일부 특정과의 몇몇 병의원에만 해당되는 소리"라며 "5% 남짓한 의사들이 배부르자고 95%의 의사들이 불리해질 순 없는 노릇"이라고 비판했다. 연준흠 전 보험이사는 "수가협상과 정책 결정은 논외"라는 식으로 정리하긴 했지만, 대의원들의 우려를 불식시키진 못했다.
또 공급자 수가협상단장 출신이 공단 수장으로 왔다고 해서, 공급자에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란 판단은 일차원적이란 의견도 있다. 오히려 발목 잡힐 만한 결과를 만들지 않기 위해 공급자를 더 불리한 방향으로 이끌지나 않으면 다행이란 목소리도 들린다.
성상철 이사장도 "과거의 이력 때문에 이사장 임명에 대해 따가운 우려의 시선이 있는 것을 알고 있다"며 "그러나 공단 이사장으로서 법령에 정해진 직무대로 임하겠다. 국민보건 향상과 사회보장 증진을 위해 건강보험 제도를 더욱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이끌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는 국회에서는 물론 가입자 단체, 시민사회 단체들의 눈초리를 피하기 위한 발언이었지만, 공식적 자리에서의 다짐인 만큼 임기 내 첫 수가협상부터 자기 얼굴에 먹칠할 만한 결과로 이끌지 않을 것이란 게 중론이다. 즉 태도나 소통의 변화는 나타날 수 있지만, 회장 출신이라고 해서 편익이나 이익 봐주는 상황은 연출되지 않을 것이란 주장이다.
한편 여성 인력을 두 명이나 파격적으로 배치한 의협에 대해, 한 보험 관련 전문가는 "이 둘은 그간 보험제도에 대해 많이 관여해왔던 인력도 아니며, 협상에 처음 참여하는 인물"이라며 "분위기야 좋게 이끌 수 있겠지만 배경설명과 주장관철이 핵심인 수가협상에서는 무리수를 둔 것”이라고 분석했다.
수가 인상률 수년째 1%대…병협 협상력도 상승
의원보다 병원이 더 챙겨받을 듯?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갈 '순번'
전반적인 상황을 떠나 각 유형별로 협상의 분위기를 예측해보자면, 의원은 '불리'하고 병원은 '유리'해질 것이란 의견이 나이고 있다.
우선 지난해 진료비 증가폭만 봤을 때 병원과 의원은 치과나 한방 쪽보다는 더 높은 인상률이 나올 전망이다. 특히 병원은 의원보다 더 유리한 상황에 놓여 있다. 지난해 진료비 변동폭을 봤을 때 요양병원을 제외하고 병원급 의료기관의 재정상태는 그리 녹록지 않은 형편이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심평원 진료동향 추이를 살펴보면, 중증환자들이 점차 병원을 찾지 않는 경향이 커졌고, 진료강도 역시 낮아지는 추세였다. 무엇보다 올해 초에는 병의원 진료비가 5000억원이나 감소하는 등 급감 곡선이 멈출 줄 모르는 모양새다.
게다가 상급병실료와 선택진료비 제도 개선도 병원의 발목을 잡고 있다. 공단에서는 3대 비급여 제도 개선에 따라 다른 진료행위나 수술 등의 수가 인상의 보전으로 오히려 병의원에 더 많은 돈이 흘러들어 가고 있다고 분석했지만, 실제 병의원의 경영상황 전반을 봤을 때 전년 대비 수익이 30~40%가량 떨어진 곳이 허다하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과 더불어 보험에 대해 그간 공을 들여왔던 박상근 전 부회장이 병협회장 자리에 앉게 되면서, 그 전망은 더욱 공고해지는 모양새다.
무엇보다도 병원에서 더 유리한 인상률을 거머쥘 확률이 높은 것은 그간 의료계는 2% 후반~3%의 인상률을 받아온 것과 달리, 병원계는 1%대에 수년째 머물러 있었다는 점이다.
병의원이 전체 재정의 70% 정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려운 병원 상황과 집행부 협상력을 기반으로 병원 측이 높은 인상률을 가져가게 되면, 자연스럽게 의원 쪽의 인상률은 떨어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총액계약제' 완화 버전 '진료비 목표관리제' 또 나올듯
한편 지난해 수가협상에서 키포인트는 다름 아닌 '진료비 목표관리제'라는 부대조건의 제시였다.
진료비 목표관리제는 2013~2014년도 유형별 환산지수 연구용역을 맡은 신현웅 박사팀이 2년에 걸친 연구를 통해 제시한 개념으로, 진료비 가격과 진료량을 통합해 총량적인 개념의 수가계약을 하게 되는 방식이다.
수가계약 시 보험자와 공급자가 다음해 목표진료비를 합의하고 이를 기준으로 그 이듬해에 환산지수를 결정하게 된다.
이는 공급자 단체측에서 바라볼 때 사실상 총액계약제로 가는 길목이라고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지난해에는 단 한 곳도 부대조건으로 받아든 곳이 없었다.
하지만 공단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에도 협상장에 모습을 드러낼 전망이다. 수가협상에 정통한 공단의 한 관계자는 "공단이 앞으로의 건보 재정을 고려했을 때 이를 포기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목표관리제를 제안해야 하는 입장"이라며 "공급자측에서도 당장은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공단이 이에 대한 근거와 정당성을 거듭 협상에서 제시하고 설득한다면 공급자측에서도 수용하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어 "지난해 협상에서는 6개 의약단체 모두 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올해는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라며 "최근 공급자 단체에서도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위협받는 건보 재정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고, 지속가능성이라는 대의를 존중하는 추세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의협의 새로운 집행부 명단을 보면, 그간 총액계약제, 주치의제, 포괄수가 강화 등의 의견을 펼쳐왔던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이진석 교수가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조정실장에 임명됐다.
또한 의료계에서는 일차의료기관만큼은 앞으로 '동네의원 주치의' 제도가 점차 확산돼야 한다는 분위기도 형성되고 있는 상태다. 이러한 변화와 맞물려 예견해보면 지난번처럼 목표관리제가 완전한 전면 퇴짜를 맞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