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윤리안전법 무엇이 문제인가 <3>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 2013년 개정을 기점으로 법적 규율 대상이 인간대상연구와 인체유래물연구 전체로 확대되면서 우리나라 의학연구가 윤리적 및 법적으로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고 있다. 이 법률의 주요 내용은 각 기관에 기관생명윤리위원회(IRB) 설치를 의무화하고, 유전자검사기관과 인체유래물은행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 등이다. 그러나 법시행 2년이 경과된 시점에서 개정법 공고 당시부터 제기됐던 많은 논란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임상연구의 문제점들과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혼돈들에 대한 적절한 시정조치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따라 (사)대한기관윤리심의기구협의회 (KaIRB) 정책위원회·메디칼업저버는 현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중 보완책이 시급한 일부 문제점에 관해 현장경험에 기반한 문제제기와 전문가 대안을 제시하는 특별 기획 시리즈를 마련했다.

아무쪼록 본 연재물이 현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의 여러 문제점들이 공론화되고 합리적인 대안들이 제안되는 시발점이 돼, 조속한 시간 내에 법률 개정에 적극 반영되기를 촉구하는 바이다. 단  기고문은 전문가 개인 의견이며, KaIRB 및 메디칼업저버의 공식의견이 아님을 미리 독자들에게 밝히는 바이다.
 (사)대한기관윤리심의기구협의회 (KaIRB) 정책이사
 가톨릭의대 백상홍


인체유래물은행 정직한 중개자 역할 한계
재정적 뒷받침과 동의면제 규정 필요…윤리적 고민은 법보다 자율에 맡겨야

김백희
고려의대 교수
구로병원 병리과
현재 우리나라의 인간 관련 바이오뱅크(이하 바이오뱅크)는 인체유래물은행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고, 이 이름은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하 생명윤리법)에서 정의된 이름이다. 생명윤리법은 인체유래물은행의 정의 외에도 인체유래물은행의 허가, 신고, 채취 시 동의, 제공, 폐기에 대한 내용과 법 위반 시 벌칙과 과태료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생명윤리법은 2005년 최초로 시행됐고, 이 법에서 바이오뱅크에 관한 내용이 최초로 등장한다. 이때 법에 등장하는 명칭은 유전자은행으로 유전정보를 수집, 보존, 이용 및 제공하는 기관으로 정의된 협의의 바이오뱅크였다. 이 법은 최초로 바이오뱅크를 법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유전자은행을 정의하는 데 필요한 유전정보에 대한 의미 전달이 불명확해 많은 혼동을 주었고, 이해하기 어려운 법정 동의서 서식으로 인해 적절한 동의서 취득에 어려움이 있었다.

2013년 2월 전부개정돼 시행된 생명윤리법은 인체유래물은행을 '인체유래물 또는 유전정보와 그에 관련된 역학정보, 임상정보 등을 수집, 보존해 이를 직접 이용하거나 타인에게 제공하는 기관'으로 정의함으로써 실제 거의 모든 바이오뱅크를 법의 테두리 안에 두게 됐다. 이 전부개정법도 역시 법정서식의 동의서를 사용하지만, 이전 법에서 사용하던 복잡한 선택지 양식을 버리면서 기증자나 동의를 받는 사람이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바뀌었다.

법의 전부개정으로 인해 인간에게서 수집하거나 채취할 수 있는 인체구성물뿐만 아니라 역학정보와 임상정보 또한 인체유래물은행의 영역에 들어오게 됐고, 이와 맞물려 연구중심병원의 신청에 인체유래물은행이 필수요건이 되면서 현재 50여 개의 인체유래물은행이 허가를 받아 운영되고 있다.

개정 생명윤리법은 인체유래물은행에서 검체를 분양받아 연구하는 연구자에게 기관위원회의 심의를 면제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 전반적으로 연구자들에게 인체유래물은행의 이용을 장려하고 인체유래물은행을 활성화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개정 생명윤리법이 시행된 지 2년이 지났지만, 인체유래물은행의 진정한 활성화를 위해서는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보인다.

지속적인 자금 투입 없으면 운영 어려워
첫 번째 문제는 인체유래물은행의 활성화를 위한 재정적 뒷받침이 이뤄질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생명윤리법 제43조 3항에 따르면, 인체유래물은행은 인체유래물 등을 타인에게 제공하는 경우 무상 제공이 원칙이고, 인체유래물 등의 보존 및 제공에 필요한 경비만을 요구할 수 있다. 즉, 은행의 유지를 위한 실비 이상을 분양자에게 요구할 수 없기 때문에, 기관에서 은행을 운영하려면 지속적인 운영자금을 투입해야 한다. 특정 목적을 가진 기획 은행이 아닌 이상, 인체유래물은행은 수집된 자원의 수가 실제 분양돼 사용되는 자원에 비해 월등히 많을 수밖에 없고, 실제 사용되는 자원에 소요되는 비용에 비해 훨씬 많은 운영비가 필요하다.

질 좋은 자원을 모으기 위해서는 인체유래물 기증자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받을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하고, 인체유래물과 연관된 임상정보를 지속적으로 모으기 위한 임상의사의 노력도 요구된다. 병리의사의 노력 없이는 제대로 된 조직자원을 모을 수 없고, 자원의 수집, 처리, 보관, 분석과 질관리를 위한 인력과, 보관 장소와 설비의 유지를 위한 비용 등 하나의 좋은 인체유래물을 얻기 위해서 필요한 금액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이다. 아무리 좋은 시스템을 갖춘다고 하더라도 이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기관들에 적절한 보상이 돌아가지 않는다면, 질 좋은 자원을 수집하고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윤리적 고민이 적법성 판단으로 변질
또 다른 문제는, 생명윤리법의 특성상 윤리적인 문제들을 법이 규제하다 보니 생기는 문제이다. 인체유래물은행에서 다루는 자원들은 '인체유래물등의 기증 동의서'라는 법정 서식이 필요하고, 개인연구자가 검체를 기증받기 위해서는 '인체유래물 연구 동의서'가 필요하며, 폐기나 제공을 위해서는 '인체유래물등 관리대장'이 필요하다. 해야 하는 일들과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 법에 적혀 있고, 서식도 제공된다.

연구에 있어서 인체유래물이나 은행의 문제들은 윤리적인지 고려해야 할 문제들이 적법한지의 문제로 변해버린 느낌이다. 연구자나 은행은 어떤 동의서를 어떻게 표시하고 체크를 받아야 적법한지 고민하고, 기관위원회는 적법한 동의를 받고 적법하게 사용되는지를 고민한다. 윤리에 대한 고민이 법을 지키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으로 변해버린 느낌이다.

물론, 생명윤리법의 순기능도 적지 않으며, 윤리만으로 할 수 없는 많은 일을 단기간에 이루어 왔다. 모든 연구가 원칙적으로 기관위원회의 심의를 받게 됐고, 연구자들이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 검체를 연구에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동의서와 기관위원회의 심의통과에 필요한 요건들을 고려하게 됐다.

그러나 연구자들의 생명윤리에 대한 고민이 과연 늘었는지는 의문이다. 동의서는 적법하게 받고 있을지 몰라도, 동의가 윤리적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동의서를 받는 사람들은 어느 칸을 채워야 하는지는 알고 있지만, 어떤 내용을 설명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는지? 임상 연구의 경우에는 동의를 받을 인력을 고용할 수도 있지만, 은행이나 개인연구자의 경우 기존의 인력에서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많고 진료와 맞물려 동의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동의는 적법하다고 생각되는 정도의 수준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어느 정도 연구자들의 윤리의식이 높아지면 법으로 딱딱하게 모든 사항을 지정하기보다는, 자율성을 높여 연구자와 기관위원회가 고민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법이 윤리의식의 변화나 연구환경의 변화에 속도를 맞추기는 어렵기 때문에, 연구자와 기관위원회가 모두 다양한 환경에서 고민을 통해 상황에 맞는 윤리성을 도출해 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동의 면제 규정에 대한 유연성 필요
마지막으로, 현행 법에서 인체유래물은행은 인체유래물, 유전정보, 역학정보, 임상정보 등을 다루도록 돼 있으나, 동의면제에 대한 규정은 없다. 은행의 본래 목적에는 개인 연구자들이 모으기 힘든 검체나 정보를 수집, 보존해 제공하는 것에도 있지만, 검체에 담긴 개인정보를 개인 연구자들이 접할 수 없게 해 혹시 있을지 모르는 개인정보의 유출로 인한 기증자나 시험대상자들의 피해를 방지하는 '정직한 중개자'로서의 기능도 있다.

많은 연구는 후향적으로 이뤄지고 있고, 거의 대부분의 후향적 연구에서 기증자나 시험대상자에게 유일한 위험은 개인정보의 유출이다. 우리나라 병원의 진료환경에서 모든 환자에게 사전 동의서를 받기는 어렵고, 후향적인 연구에서 다른 심각한 위험을 찾기 어렵기 때문에, 많은 후향적인 연구들은 개인 연구자들의 동의 면제 연구로 이뤄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정직한 중개자로서 은행이 개입해 검체나 임상정보 등을 익명화 처리해 연구자에게 제공할 수 있다면 후향적 연구가 좀 더 안전한 연구가 될 수 있겠지만, 은행은 동의 면제 규정이 없기 때문에 이런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다.

물론 은행은 다양한 연구자에게 검체와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좀 더 엄격한 규제가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로 인해 은행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대상자 보호를 위한 역할을 못하게 된다면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대상자의 인권에 위해가 되지 않는 최소위험도의 연구라면, 기관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기존에 설치된 연구 기반시설인 은행이 정직한 중개자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도록 하는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생명공학과 의학연구의 발전이 국가경제와 산업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고, 예전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고품질, 대규모의 인체유래물 검체가 필요한 연구들이 많아지고 있다. 또한 국민들의 생명윤리에 대한 의식도 높아지고 있으며, 국내외적으로 윤리적인 연구에 대한 요구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인체유래물은행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연구의 기반시설로, 잘 활용된다면 앞으로 우리나라 의학연구와 생명산업의 견인차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생명윤리법과 연구중심병원을 통해 설치가 가속화된 인체유래물은행들이 적절한 경제적, 제도적 지원을 통해, 좋은 질의 풍부한 자원의 윤리적인 제공을 통해, 좋은 연구들의 밑거름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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