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미용·비만 이어 통합치료 개원학회 창립 '붐'...독 될까, 득 될까?

"한국 개원가에는 통증과와 감기과, 미용건강잡과 세 가지밖에 없다."

우리나라 개원가의 현실을 이보다 더 극명하게 보여주는 말이 또 있을까. 갈수록 심화되는 경영난 타계책의 일환으로 1차의료 중심의 한 학회 창립이 여전히 붐을 이루고 있다.

개원학회 1세대가 미용과 피부 관리, 1.5세대가 비만이었다면, 2세대는 주사제와 비타민·건강기능식품 등 보조치료에 집중되고 있다.

최근 창립된 대한영양약물의학회 학술대회는 주말임에도 400여명의 개원의가 몰려 성황을 이뤘다.

영양약물의학회의 모토는 '환자 중심의 통합치료'다. 주로 다루는 분야는 비타민과 건강기능식품 등 치료보조제와 영양, 그리고 생활습관 관리. 학회는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환자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전인적·통합·맞춤치료'는 개원가의 새로운 화두이자, 신규 먹거리다.

포화상태에 이른 피부미용을 대신해 비급여인 정맥주사와 건강기능식품 등이 블루오션으로 떠오르면서 최근 몇 년 새 대한정주의학회, 대한밸런스의학회 등 관련 학회들이 잇따라 출범했다.

이는 피부미용시장이 태동하던 10여년 전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경영난 타개를 목표로 피부미용 술기를 배우려는 개원의사들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한때 미용성형, 피부미용학회의 창립이 붐을 이뤘다.

대표적인 '난(難) 개원과목'인 산부인과의 움직임을 보면, 이 같은 개원가의 동향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학술대회에서는 불과 2~3년 전까지만해도 필러, 보톡스, 쁘띠성형, 주름성형, 지방흡입 등의 미용성형 강좌가 주를 이뤘으나 최근에는 주사치료, 특히 약물을 혼합해 주입하는 칵테일 요법 치료나 영양관리, 생활개선관리, 식이요법 상담 등을 해주는 강좌가 급속도로 늘어가고 있다. 

'시작은 경영난 타개, 끝은 학문 정립' 순기능 기대

 

이를 바라보는 의료계 내부의 시선은 엇갈린다.

일단 개원의사들 스스로 적극적인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씁쓸하지만, 필요한 노력"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새 시장에 대한 개원의들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한편, 이에 필요한 학문적-기술적 교육을 제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덧붙여 다수 학회가 학문적 기틀 마련을 지향점으로 두고 있는 데 대해서도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실제 관련 학회들은 당장 1차진료 현장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임상술기 교육에 힘을 쏟으면서도, 그간 풍문처럼 전해지던 '통합의학-전인치료'에 대한 학문적 근거 정립에도 노력을 기울인다는 각오다.

경영 개선, 최신의학 지식습득, 그리고 변화하는 시장에 맞춰 의학적 근거를 마련하는 세 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포부다.

영양약물의학회 이승남 회장은 "현대의 의료소비자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약물에 전적으로 의존한 처방보다는 영양치료를 포괄하는, 질병 중심이 아닌 환자 중심의 통합의학적 치료"라고 강조하고 "이에 표준적 약물처방 가이드와 최적의 영양치료, 건강식품의 정보 제공을 통한 치료와 삶의 질 향상을 목적으로 학회를 발족했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비타민이나 영양제, 건강기능식품이 환자의 건강증진을 돕는 보조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그간 학술적인 근거가 약하다 보니 의사들이 자신있게 이를 환자들에게 추천하지 못했다"며 "영양과 운동·건기식의 효과에 대한 학술적 근거와 이를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프로토콜을 마련해 의사들에게 제공해 나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교육의 체계화도 당면 목표다.

밸런스의학회 유승모 회장은 "병은 하나의 원인만을 치료해 쉽게 낫기 어렵다. 몸의 밸런스, 즉 육체적, 화학적, 정신적인 밸런스가 깨질 때 생기기 때문"이라며 "환자가 방문했을 때 육체적, 화학적, 정신적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진정한 건강가치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 회장은 "밸런스의학회는 신체적 밸런스를 위한 교정치료 위주의 각종 통증치료와 화학적 밸런스를 위한 영양치료를 진행하는 것"이라며 "전인치료를 목표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마련, 운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주의학회 최세환 회장 또한 "정맥주사 시장이 외형적으로 급성장하다 보니 기초를 다질 필요가 있다"면서 "제대로 안전 교육을 받지 못해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의사들에게 적절한 대응법 등을 교육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개원의사회 관계자는 "단순한 술기전수를 넘어 항노화제나 건강기능식품 등 그간 제도의학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지지 못했던 분야들에 대해 근거를 모으고, 체계를 정립시키는 움직임으로 이어진다면 바람직할 것"이라며 "이에 대한 학술기반들이 쌓인다면 개원가의 전문성 강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평했다.

"유사 학회 난립" 자성의 목소리도

반면 '유사학회들의 난립'을 우려하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과거 미용성형학회 난립으로 시장포화가 앞당겨진 것처럼 시장의 급격한 성장, 제 살 깎아먹기식 출혈경쟁이 반복될 것이라는 우려다. 

내과개원의사회 관계자는 "개원학회의 난립은 전문과목과 무관하게 소위 돈이 되는 과목으로 모든 의사가 몰리는 영역 파괴 바람을 부추긴다"며 "개원의들 심정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안타깝고 씁쓸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실제 수년 전부터 피부미용학회가 붐을 이뤘고, 술기를 익힌 개원의사가 쏟아지면서 시장 경쟁만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면서 "처음에는 블루오션으로 여겨지던 분야들도 경쟁자가 늘어나다 보면 순식간에 레드오션이 돼버린다"고 했다.

미래에 대한 고민없이 시류만 좇다 보면 장기적으로 개원가의 먹거리는 더욱 더 고갈될 수밖에 없으며, 특히 젊은 의사들의 어려움이 커질 것이라는 지적. 당장의 먹거리를 위해 비급여 시장에 집중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개원가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걱정도 나온다.

또 다른 개원의사회 관계자는 "개원의사는 환자들과 가장 가까이 있는 의료전달체계의 문지기"라고 강조하고 "최근의 상황을 보면 개원의사가 과연 1차진료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전문과목 진료보다는 피부관리와 정맥주사 등 비급여에 집중하는 모습이 개원의사에 대한 신뢰-이미지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는 "피부관리를 하는 의원은 도처에 있지만 정작 피부질환을 치료하는 의원은 없는, 국민들이 간단한 피부질환 치료를 위해 진료가 가능한 의원을 찾아야 하는 지금의 상황이 지속된다면 궁극적으로 개원의사의 존재 이유에 대해 국민들도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의료계의 자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환자단체 관계자는 "최근 중이염으로 고생하다 근처 병원을 찾았는데 '코골이' 전문이라면서 아예 진료조차 해주지 않은 사례부터 시작해, 라식수술 전문을 표방하며 눈의 다래끼나 결막염 등 진정한 1차 진료를 하지 않는 안과의원들까지, 이름뿐인 1차 의료기관이 허다하다"며 "동네의원이라면 환자의 전반적인 상태를 살피고 주치의 기능을 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대학병원이 1차진료 환자를 빼앗아 간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개원가가 '세부 과목' '돈 되는 진료'에만 집중하다 보면, 스스로 의료전달체계 붕괴 속도를 앞당기는 꼴이 될 것"이라고도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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