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윤리안전법 무엇이 문제인가 <1>

 

2013년 개정돼 시행 중인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 법적 규율의 대상을 인간대상연구와 인체유래물연구 전체로 확대하면서 우리나라 의학연구는 윤리적 및 법적으로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고 있다. 그러나 개정법 공고 당시부터 제기됐던 비현실적인 부분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학계는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혼란과 문제점에 대해 시정조치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사)대한기관윤리심의기구협의회(KAIRB) 정책위원회와 본지가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중 보완책이 시급한 문제점에 관해 현장경험에 기반한 문제 제기와 전문가 대안을 제시하는 특별 기획을 마련했다.내용을 입력하세요.

김용진
영남의대 병리학 교수
영남대학병원 IRB 전문위원
영남대 사회과학 IRB 위원장
KAIRB 이사

파라핀 블록을 이용한 연구의 문제
수술 전후의 진단을 위해 병리과로 의뢰된 인체유래물은 포르말린에 고정된 후 파라핀 블록으로 제작된다. 이것을 다시 4 마이크론 내외로 잘라 여러 방법의 염색을 한 후 현미경 검사용 유리 슬라이드 표본으로 만들어진다. 진단 후에는 의무기록과 같은 형태로 최소 10년 이상 보관한다.

이렇게 제작된 파라핀 블록은 필요에 따라 다시 잘라 사용할 수 있으므로, 특수검사, 재검사 등을 위해서 실온에서 거의 영구 보관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최근 발달된 연구 방법들은 수집된 파라핀 블록으로 각종 연구를 가능하게 하고 있고, DNA 추출 및 일부 유전자검사까지 가능해졌다. 과거 수집된 자료를 이용함으로써 새로운 환자를 기다려 다시 조직을 채취 할 필요가 없으며, 연구 결과를 얻기까지의 시간이 단축되는 장점이 있다. 또한 추적된 임상경과 기록을 같이 볼 수도 있어서 귀중한 연구재료가 아닐 수 없다. 맞춤치료를 목표로 하고 있는 최근의 연구를 위해서 더욱 가치가 높아지는 상황이다.

이런 연구에 적용될 현행 생명윤리법은 연구목적으로 취득한 혹은 취득할 인체유래물을 이용한 연구에 국한해 규칙을 정하고 있어, 파라핀 블록처럼 처음에는 치료 및 진단 목적으로 채취돼 보관됐지만 이후 필요에 따라 연구용으로 사용하는 경우에 적용할 구체적 조항이 없다.

오직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제33조(기관위원회의 심의를 면제할 수 있는 인체유래물연구) 나항에서 '의료기관에서 치료 및 진단을 목적으로 사용하고 남은 인체유래물 등을 이용해 정확도 검사 등 검사실 정도관리 및 검사법 평가 등을 수행하는 연구'가 심의 면제에 해당한다는 조항만 있다. 이런 이유로 병리진단 후 남은 조직 혹은 파라핀 블록' 등을 이용한 연구 계획에 대해 기관위원회마다 상반된 심의 결정을 하고 있어서 연구자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

현행법에 의하면 병리과에 보관된 조직 및 파라핀 블록 등은 채취 및 보관이 연구 목적이 아니므로 연구를 위해서는 환자의 동의를 받아야 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연구 내용이 환자와의 접촉이 필요 없거나, 재료를 익명화해 연구결과가 개인과 연관지을 수 없게 보완돼 있다면 동의면제로 시행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완되기를 바란다.

연구참여자 보호를 위한
미국 보건성 장관 자문위원회
(Secretary's Advisory Committee
on Human Research Protection; SACHRP), 2009년
미국은 치료 및 진단을 위해 적출된 조직을 본래의 목적 즉 진단에 사용하고 남은 경우, 개인정보의 보호를 조건으로 동의서 없이 사용하게 하고 있다. 이 사안은 Department of Health & Human Services 산하 기구인 SACHRP (Secretary's Advisory Committee on Human Research Protection)에서 승인하고 있다<그림>.

또한 미국 병리학회의 해석은 ‘수술 후 남은 조직과 연구 목적으로 채취한 조직은 경우가 다르다. 진단 후 남은 조직은 환자가 포기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며, 파라핀 블록을 이용하는 연구를 환자가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고 있지만, 연구 내용에 따라 동의서의 필요 여부는 IRB의 판단을 받도록 권하고 있다.
 
암 돌연변이 유전자검사의 문제
유전자검사는 환자의 동의서를 받도록 하고 있지만, 유전자의 성질 즉 ‘유전하지 않는 유전자’와 ‘유전과 관계하는 유전자’를 구분하지 않아서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종양 돌연변이 유전자는 종양세포에만 있는 것으로 유전과는 상관없다. 또한 약제 감수성 검사를 위한 유전자 등도 약제반응에 관련된 유전자 존재를 확인하는 것으로서 유전과는 전혀 무관하다.

이에 관해 홍영준 등은 우리나라와 미국의 유전자검사 정의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미국은 유전자검사의 목적 또는 범위를  유전성 질환에 국한시켰지만, 한국은 그러한 제한이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즉 유전현상과 무관한, 체세포에 생기는 특정 암유전자 이상 같은 체성 돌연변이(somatic mutation)검출, 유전자검사 또는 항암제 및 호르몬 치료를 위한 특정 유전자 검사 등도 포괄적 의미로 유전자 검사에 포함시키고 있어서 연구자들과 IRB의 혼돈이 있다.

종양조직에서의 체성 돌연변이는 종양조직에서만 검출되는 것으로 정상인이나, 종양을 가진 환자라도 혈액 등 다른 조직에서는 나타나지 않으며 유전적 성향은 전혀 없다(예: 갑상선 암에서의 BRAF 돌연변이 유전자, 종양 조직의 MSI, Her2 등). 그러나 우리의 생명윤리법에서는 단순히 ‘유전자 검사’라고만 지칭하고 있어 종양 적출 후 남은 조직, 혹은 병리과의 파라핀 블록 등을 이용해 후향적 종양 돌연변이 유전자 검사 등에도 동의서가 필요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연구 역시 익명을 전제로 동의 면제로 연구가 될 수 있도록 건의한다.

또한 생명윤리법 시행규칙 제52조(유전자검사의 동의 면제)조항 ①-1에서 '의료기관에서 질병의 진단 또는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것은 충분한 설명 후 동의 없이 시행할 수 있다’고 하나, 조건은 ‘법 제53조제3항에 따라 검사대상물을 즉시 폐기할 것’이라고 명기하고 있다. 이 ‘즉시’는 어느 정도까지를 규정하는 것인지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병원에서의 모든 검사물은 결과의 오류 가능성, 재검사 혹은 다른 특수한 방법이 개발되면 다시 검사해 볼 수 있도록 관례에 따라 일정기간(기준은 없음) 보관하고 있다. 이 가능성을 무시하고 ‘재사용’ 금지의 목적으로 ‘즉시 폐기’라는 조건은 비현실적이다. 현실적인 보관 기간이 제시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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