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재난의료체계 구축 본격화...민간 참여 활성화 '관건'

#독일 최악의 참사로 꼽히는 1998년 에셰데(Eschede)역 열차사고. 주행 중이던 고속열차가 탈선해 승객 101명이 사망하고 103명이 부상했는데, '놀랍게도' 예방가능한 사망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당시 사고 4분만에 경보가 전파되어, 사고 16분 후 첫번째 의사가 현장에 도착했고, 사고가 난지 2시간이 채 되지 않아 1명을 제외한 부상자 전원이 22개 병원으로 분산, 이송됐다. '갖춰진 재난의료체계'의 효과였다. 세월호 1주기와 맞물려 국가 재난의료체계 구축을 위한 논의가 다시 한번 본격화 되고 있다.앞서 정부는 세월호 사태 이후 국민안전처를 신설하는 한편, 국가재난의료시스템 구축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국립중앙의료원에 재난의료상황실을 설치했고, 재난거점병원의 숫자를 현재 20개소에서 연말 41개로 늘리기로 했으며, 응급의료전용헬기도 2개 지역에 추가 도입키로 했다.그러나 국내 재난의료시스템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하려는 단계. 특히 우리 의료자원의 90% 이상을 담당하고 있는 민간의료기관과 의료진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사업의 성패를 결정짓는 관건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16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국가 재난의료시스템 구축을 위한 다양한 제언을 내놨다. 논의의 핵심은 재난의료컨트롤 타워 구축과 민간자원 유도 필요성에 맞춰졌다.
1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춘진 위원장 주최, 국립중앙의료원 주관으로 열린 '국가재난의료체계 구축을 위한 토론회'.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 윤한덕 센터장은 "세월호 참사를 통해 한정된 의료인력 풀, 비축물품의 고갈, 민·관·군 의료진 간 의사소통 채널 혼선 등 현행 의료지원 체계의 문제점이 드러났다"면서 "특히 재난의료는 경찰·군·소방 등 정부조직과 달리 민간의존이 불가피하나, 준비되지 않은 민간조직과 인력이 재난시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을 남겼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재난의료는 자원봉사가 아니며, 체계적으로 제공돼야 하는 필수요소"라고 강조하고, 미국의 NDMS(National Disaster Medical System)와 같이 공공과 민간자원이 함께 재난상황에 대비해 나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윤 센터장은 "90% 이상을 민간자원이 담당하는 국내 의료 여건상 재난의료에 있어 민간자원의 활용이 필수적인 만큼 이를 조직화·체계화해 나갈 필요가 있으며, 책임있는 콘트롤 타워 강화를 통해 재난의료체계를 전반적으로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응급의료위원회 위원이자 순천향의대 예방의학교수인 박윤형 교수도 '민간자원 이용'을 국내 재난의료체계의 최대 취약점으로 꼽았다.

박 교수는 "재난의료는 의사·간호사·응급구조사 등 전문인력이 필요하나 소방과 같이 국가에서 고용해 업무를 담당하기는 어려운 분야"라고 짚고 "그러나 재난의료는 명백한 공적의료분야인 만큼 국가에서 관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인력을 확보해야 하며 장비와 의약품을 충분히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민간병원의 협조와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예산지원과 함께 민관 거버넌스를 구축해 상호신뢰와 협업체계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며 "우선은 예산을 확보해 필요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기반을 갖추어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인프라 구축과 더불어 '안전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대한재난의학회 왕순주 회장은 민간자원 참여유도 방안과 관련해 "(정부나 공무조직이) 명령을 해서 민간자원을 컨트롤 하는 것이 아니라, 코디네이션해서 함께 간다는 의미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덧붙여 "현재 재난예산의 대부분이 건설 등 하드웨어에 투자되고 있으나, 그보다 중요한 것이 안전문화의 확산"이라면서 "안전문화를 확산, 성숙시키는데 지금보다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국립중앙의료원은 이날 토론회에 앞서, 위기대응단 발대식을 가졌다. 위기대응단은 응급재난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일종의 인적자원으로, 심폐소생술 등 응급처치 및 안전활동에 관한 교육과정을 수료자들로 꾸려졌다.

국립중앙의료원 안명옥 원장은 "작년 한해 경주 마우나 리조트 사건, 세월호 참사 등 다수의 재난이 발생했고, 이런 재난으로 다수의 생명을 잃을때마다 '우리는 과연 안전하고 준비된 나라에 사는가'라는 고민을 했다"면서 "국립중앙의료원장으로 취임하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재난의료를 체계화하는 과업이라고 생각했고, 이번에 출범한 위기대응단이 그 출발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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