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대한민국 전공의로 사는법] 열악한 수련환경 환자 안전 위협...의료계·국회·정부 공감대 형성

# 하루 평균 13시간, 일주일에 평균 88.2시간을 근무한다. 하루 평균 수면시간은 5.7시간. 일주일에 1~2번, 혹은 3~4번씩 병원에서 밤을 새우는 당직근무를 서고, 3000만원~3500만원 정도의 연봉을 받는다. 쉬는 날은 한 달에 3.8일 정도. 일을 하면서 윗사람이나 환자들에게 욕을 먹는 경우도 허다하고, 때때로 신체적 폭행을 당하기도 한다. 일은 많고, 쉬는 시간은 적고, 폭언에 폭행까지 이어지다 보니 늘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동료들에 물어보니 5명에 1명꼴로 최근 1년간 1번 이상 '자살충동'을 느낀 적이 있다고 했다. 의사이면서 학생이고, 또 노동자인 나는 '대한민국의 전공의'다. 왜 전공의 처우에 주목하는가지난해 말 꽤나 의미있는 법안 하나가 국회를 통과, 새로운 법률로 만들어졌다. 주인공은 '환자안전법'. 환자 안전에 관한 법률이 마련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이는 환자를 단순히 치료해야 할 대상에서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인격체로, 시혜적 대상이 아닌 전인적 존재로 규정한 최초의 법률로서 그 의미가 깊다.환자안전법 논의의 시발점이 된 것은 지난 2010년 있었던 '종현이 사건'이다. 백혈병으로 투병 중이던 아홉살 정종현 군은 2010년 한 병원에서 항암제를 투여받은 후 신체마비 등 이상증세를 보이다 열흘 만에 사망했다.당시 정 군의 사망원인을 두고 설왕설래가 있긴 했지만, 과로에 시달리던 담당 전공의가 두 가지 항암제를 투여하는 과정에서 약물을 착각, 정맥에 넣어야 할 빈크리스틴을 척수강에 잘못 투약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다.이후 빈크리스틴 투약 오류로 인한 사망사고가 외국은 물론 국내에서도 이미 여러 건 존재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고, 해당 내용이 '투약 주의사항'으로서 매뉴얼화돼 있었다면 종현이의 사망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뒤늦은 후회들이 터져나왔다. 환자안전법 제정 논의의 시작이었다.환자안전법 제정 논의와 더불어, 전공의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졌지만, 이에 대해서는 별다른 결론 없이 논의가 마무리됐다. 당시 국회 내부에서도 현장에서 환자들을 가장 많이, 가장 가깝게 접하는 전공의들의 처우를 개선해야 실질적인 환자안전 보장이 가능하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동력을 얻지 못했다.그로부터 3개월이 흐른 지난 3월, 국회에서 주목할 만한 공청회가 열렸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용익 의원(새정치민주연합)과 대한의사협회가 공동 주최한 '전공의 처우 및 수련환경개선을 위한 입법 공청회'가 그것. 김용익 의원은 이날 공청회를 시작으로, 전공의 특별법 제정을 위한 작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이유는 환자 안전과 전공의 인권보호다.김용익 의원은 "지난해 환자안전법이 국회에서 통과돼 의료기관 내 환자 안전관리에 진일보한 결실이 있었다"며 "하지만 환자안전법이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열악한 전공의들의 수련환경과 처우가 개선돼야 한다고 본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전공의 특별법(초안) 주요 내용

전공의 수련환경 도대체 어떻기에

전공의 수련환경의 개선이 환자안전을 위한 길이라니, 언뜻 보아서는 도대체 무슨 상관관계가 있느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실제 전공의들의 삶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쉽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전공의는 우리가 병원에서 가장 '흔하게' 만나 볼 수 있는 의사 인력이다. 현재 전국에 약 1만 5000명의 전공의가 각 병동은 물론 응급실에서 근무하며, 환자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각종 술기에 대한 수련과 진료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숨돌릴 틈 없이 돌아가는 진료현장에 선 전공의들의 삶은 꽤나 팍팍하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최근 발간한 '2014년 전공의 수련 및 근로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공의들의 평균 근무시간은 2014년 현재 하루 평균 13시간, 주당 평균 88.2시간으로 조사됐다. 주당 80시간 이상 근무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전체의 52.2%로 가장 많았으며, 주당 100시간 이상의 살인적인 근무 스케줄을 소화하는 전공의도 30.8%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공의 근무시간은 수련병원의 규모가 클수록, 연차가 낮을수록 길어지는 양상을 보였다.

연속 근무시간이 36시간을 초과하는 경우도 있다. 전공의 대상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39.7%가 36시간 초과근무를 실시한 경험이 있었으며, 인턴은 그 비율이 70%가 넘을 정도로 높았다.

업무가 과중하다 보니 수면시간은 짧기만 하다. 전공의들의 하루평균 수면시간은 5.7시간으로 조사됐다. 6~8시간의 수면을 취한다는 응답자가 45.3%, 4~6시간의 수면을 취한다는 응답자도 34.1%로 많았지만, 하루 2시간 미만의 극도의 저수면 상태에 처해있다는 응답자도 14.5%에 달했다.

휴일도 부족한 것은 마찬가지. 전공의들은 한달에 평균 3.8회 휴일을 갖는 것으로 조사됐는데, 병원별·연차별로 편차가 커 응답자 4명 중 1명가량은 휴일을 전혀 사용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조사에서는 수련과정 중 폭언·폭행 경험 유무, 전공들의 스트레스와 건강 정도에 관한 설문도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이에 따르면 응답자의 65.8%가 수련과정 중 교수와 상급전공의, 환자 등으로부터 폭언, 22%가 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신체적 폭행의 경우 가해자가 환자인 경우가 36.9%로 가장 많았고, 상급전공의 28.4%, 교수가 21.9%로 뒤를 이었다.

일상생활 중 느끼는 스트레스 정도에 관해서도 물었는데 조사결과 응답자의 43.2%가 '대단히 많은 또는 많은 정도'의 스트레스를 느낀다고 답했고, 응답자의 31.4%는 최근 1년 동안 연속적으로 2주 이상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의 슬픔이나 절망감 등을 느낀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최근 1년 동안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다는 전공의도 무려 20.4%에 달했다.

의료정책연구소는 이 같은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근무·수련환경 평가의 독립화와 근로강도 개선을 위한 의사인력 충원 및 정부재정 지원, 수련 중 폭언·폭행 예방 및 금지방안 등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공의 특별법 무슨 내용 담길까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2일 국회 업무보고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메디칼업저버 고민수

의료계와 국회는 이 같은 전공의들의 처우를 개선해야 환자들이 질 높고 안전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전공의 특별법이다.

법안에는 전공의 인권과 교육권 보장에 관한 사항과 수련환경개선을 위한 독립된 수련환경평가기구 운영, 전공의 수련비용 국가 지원 등의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앞서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전공의에 대한 인권과 수련환경을 보장을 위한 대표 단체 설립 △전공의수련환경평가기구 신설 및 평가결과에 따른 수련환경 개선 보장 △수련기관의 지정기준·전공의 정원·전공의의 수련과정 및 기타 전공의 제도에 관한 주요사항 심의를 위한 장관 소속 '전공의수련환경심의위원회' 설치 △ 전공의의 수련시간 및 유급휴일 보장 법률로 명시 △야간 및 휴일수련 가산금 지급 등을 규정한 전공의 특별법 초안을 공개한 바 있다.

만약 병원 측에서 전공의의 비밀을 누설하거나 불리한 조치를 취했을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고, 야간 및 휴일 수련에 관한 부분을 어기면 징역 3년 이하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 처분을 받도록 했다.

김 의원측은 전공의협의회가 제안한 초안을 놓고 현재 법리 검토를 진행 중에 있으며, 일부 수정을 거쳐 늦어도 이달 중 국회에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김용익 의원실 관계자는 "전공의 단체 설립 근거 마련, 수련기관 평가 독립 등 법안의 주요 골자는 유지해 나간다는 계획”이라며 "다만 수련시간의 경우 병원마다 편차가 존재하는 만큼, 법률로 일괄 규제하는 것은 타당치 않다는 의견이 있어 '상한선'을 규정하는 방법 등으로 일부 수정해 나갈 것"이라고 진행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환자안전을 위해서라도 이제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며 "형식적으로 법안을 내놓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법률로서 완성될 수 있도록 하겠다. 관습적인 전공의 수련환경을 개선, 정리해 전공의들이 안정적인 환경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고 질 좋은 의료를 실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도 긍적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다.

보건복지부 문형표 장관은 지난 2일 국회 업무보고에서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필요성을 지적한 김용익 의원의 질에 공감을 표하고 수련환경 개선을 위한 핵심 키로 거론되고 있는 '수련평가기구 독립'은 물론,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을 위한 국가지원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