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위 고시개정에 앞서 전문가 단체와 충분한 사전논의 거쳐야

▲ 안경진 기자

취재를 하면서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 이슈 중 하나는 '의료 보장성', 다시 말해 보험급여에 대한 부분이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이나 유럽의 어떤 가이드라인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급여기준이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의료현실에서는 작은 세부규정 하나하나에도 촉각이 곤두설 수밖에 없다. 그만큼 기자 입장에서는 반가우면서도 동시에 조심스러운 소재다.

최근 지난해말부터 적용된 PET-CT 급여기준 변경으로 인해 유방암 환자들이 곤란을 겪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작성했다.

이와 관련 독자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유방암 환자들과 학계 입장을 잘 대변했다는 긍정적인 여론도 있었지만 한쪽 의견만 듣고 쓴 편파적인 기사라는 날센 비판도 일었다.

한 유방암 전문의는 SNS 댓글을 통해 "명확한 재발 근거 없이 PET을 찍는 것은 의학적으로 근거가 없고, 혹여 조기발견하더라도 이득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기사에 담은 것처럼 PET을 대체하기 위해 유방촬영, 초음파, 뼈스캔, 흉부 CT를 모두 시행해야 한다는 것도 지나치다고도 덧붙였다.

고위험군을 제외하고는 연1회 유방촬영술만이 국제 가이드라인에 명시돼 있는 만큼 PET은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 외 임상의사의 지식과 경험을 인정하지 않고 국가가 법적 규제를 가함으로써 진료자율권이 침해 당하고 있다는 데 대해서는 대부분의 임상의사들이 공감하는 반응을 보였다.

이렇듯 동일한 암종의 추적검사에 대해 임상의들의 반응이 엇갈리는 이유는 뭘까.

진료과간, 혹은 개인의 관점 차이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정기적인 PET-CT의 유용성과 적정 검사시기 및 횟수 등에 대한 명확한 컨센서스가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 미국 AETNA 보험 기준에서도 '치료 후 무증상 환자에서 재발 또는 예후 예측을 위한 추적검사는 실험적 단계'라고 명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취재 당시 인터뷰에 응했던 안세현 교수(서울아산병원 유방내분비외과)는 "유방암 추적검사의 시행기준은 아직까지 완전히 정립되지 않았고, 작업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봐야 한다"며, "개인적인 경험에 비춰볼 때 PET 촬영시기는 수술 후 2~3년과 5년 정도가 적당한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정석대로라면 임상연구를 시행해서 적절한 검사주기에 대한 근거를 마련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현실적인 여건상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보건복지부는 고시시행 이후 6개월 정도 시점에 모니터링을 통해 재검토 여부를 따져보겠다는 입장인데, 이제 남은 2개월 여만에 새로운 데이터가 나올리도 만무한 상황.

환자나 의사는 마냥 심평원의 판결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 걸까?

PET-CT 현행 고시가 타당할지, 어느 정도 선에서 개정돼야 할지에 관한 부분은 전문지식을 가진 의료진들이 논의해야 할 몫이다. 앞서 지적됐듯 적절한 가이드라인 마련을 위해 임상연구를 통한 근거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매번 고시가 개정될 때마다 이 같은 진통을 겪지 않기 위해서는 정책입안자들 또한 충분한 시간을 갖고 진료현장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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